제3화 피터 팬과의 첫 만남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남해안의 해양관광도시 창성시는 경관이 빼어난 크고 작은 많은 섬을 자원으로 한 관광·레저 산업과 조선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10년 전, 나는 이 창성시에 있는 <해경병원>의 부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부원장이었지, 그 직책은 본업인 의사보다 이재에 더 밝아 돈벌레로 소문난 그 병원의 원장이 나를 자기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붙여준 사탕발림이었다. 대외적 직함은 그럴듯한 부원장이었지만, 나는 병원 운영의 실권에는 하등 권한이 없는 월급쟁이 의사였다.
그때 내가 서울의 병원을 그만두고 그 먼 남도의 외진 병원까지 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원장이 제시한 보수가 서울 병원보다 파격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근교의 어느 공립 병원에서 박봉과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나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긍지로 일하던 내가 불행하게도 돈벌레 원장이 제시하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그때 과로로 인해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어디 공기 좋은 시골에라도 가서 좀 쉬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같은 의과대학 선배인 원장이 학연을 고리로 파격적인 보수를 제시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었다.
당시 그 병원은 의사 본업보다는 이재에 더 밝은 원장의 특별한 사업수완에 의하여 서울의 부유한 환자들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정계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원장은 서울의 돈 많은 고급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면서도 오로지 돈만 밝힌다는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는 지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의로서의 실력과 서울 공립 병원에 근무하면서 쌓은 의료봉사활동이라는 공익 경력까지 겸비한 내가 가장 적임자라고 여겼다. 물론 원장의 이런 파격적인 제안에는 내게 투자하는 비용보다 내 경력과 지명도를 이용하여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약삭빠른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이렇게 하여 창성시의 그 병원에서 근무한 지 5개월쯤이 지난 그해 7월 하순, 막 장마가 끝난 뒤 무더위로 푹푹 찌는 금요일 오후였다.
― 서울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의 회장님이십니다. 대단한 재력가이십니다.
― 그래요? 그런데 보호자는 어디 있어요?
― 사모님께서는 자가용으로 따로 오실 겁니다. 오는 도중에 시장에 들러 준비물을 챙겨 오겠다고 했습니다.
― 알겠습니다.
― 우리 병원이 불편하다고 해서, 특별히 김 과장님께서 이곳을 추천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이곳 특별병동 VIP실을 꼭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병실로 올려 보내면 나중에 사모님이 오셔서 입원 절차를 취할 겁니다.
― 그래요. 마침 VIP실 한 곳이 비어있는데, 잘 됐군요. 알겠습니다.
당시 창성시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인 <창성 병원> 구급차에 실려 온 그 환자는 얼핏 보기만 해도 죽음을 목전에 둔 중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눈만 떴다 감았다 하는 것 외에는 의식도 없었고, 몸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비록 자가호흡은 하고 있어 산소호흡기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는 없었지만, 환자는 심한 뇌출혈과 척수를 다쳐 전신마비가 된 식물인간이었다. 너무 야위어 해골 같은 얼굴과 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온 팔다리를 피부라고 표현하기가 무색한 메마른 가죽이 붕대처럼 감싸고 있었다.
2년 전, 창성시에서 조성 중인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에 현장점검을 왔다가 마침 크레인에서 떨어진 철제빔에 깔리는 사고로 창성 병원에서 응급 뇌수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환자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온 창성 병원의 인턴이었다.
서울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의 회장이라는 재력가가 왜 그동안 서울의 좋은 병원으로 가지 않고 2년 동안이나 지방의 작은 병원에 그대로 있었을까? 그렇게 말하는 인턴이 어딘지 모르게 허둥거린다는 인상을 받고 꺼림칙하기는 했다. 그러나 종합병원인 창성 병원에서 인턴까지 딸려 환자를 후송해 왔고, 같은 의대 동기로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그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인 김 과장이 특별히 추천하여 보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마침 비어있던 VIP실에 환자를 수용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해경병원(海鏡病院)은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해안가에 있었는데, 이 해안가 본관 병동과는 별도로 특별병동 하나가 더 있었다. 이 특별병동은 본관 건물 뒤로 난 공원 산책로 같은 아스팔트 도로를 차로 5~6분 정도 올라야 하는 산중턱에 있었다. <해경(海鏡)>이라는 병원 이름처럼 거울 같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능선 중간에 하얀 대리석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지상 4층 건물이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병원이라기보다는 마치 지중해의 여행안내 책자에서나 볼 수 있는 휴양지 별장 같았다. 이곳에서 멀리 바다를 굽어보면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배들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 특별병동의 모든 병실은 서울의 고급 오피스텔 못지않게 세련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이 병실 중 세 개뿐인 <VIP실>은 병원시설이라는 무늬만 입힌 최고급의 휴양시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울의 고급 호텔 수준을 능가했다. 보호자를 위한 별도의 침실은 물론 주방과 사무를 볼 수 있는 별도 공간에다 심지어 각테일 바까지 갖춰져 있었다. 따라서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이 병실을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물론 이 병동에는 일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남도의 따뜻한 관광 휴양도시라는 입지적 조건과 이런 호화시설 때문에 이 특별병동은 특권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대도시 종합병원에 입원할 수 없는 내밀한 사정이 있는 무늬만 환자들인 사람들이 은밀하게 찾았다. 그리고 원장은 입원 환자의 사적인 요청에 따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처방할 수 없는 마약성 주사나 약을 비밀리에 처방해 주기도 하였다.
결국 이 특별병동은 병원시설을 가장하여 탈법행위로 운영되는 돈벌레 원장의 특별한 현금 벌이 수단이었고, 고객으로서는 병원이라는 눈가림용 보호막 뒤에서 탈선행위를 할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뇌졸중 같은 질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거나, 회생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 그때 그 환자처럼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유형의 진짜 환자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김 과장이 추천하여 보냈다는 그 환자가 비록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일지라도 서울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의 회장으로 대단한 재력가이고,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VIP실에 입원하겠다고 하니 병원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특별비용 명목으로 웃돈을 왕창 청구할 수도 있는 돈벌레 원장의 입맛에 딱 맞는 환자였다. 원장이 잘 쓰는 표현대로라면 그 환자는 분명 돈이 되는 고급 환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환자를 보내 준 김 과장에게 고마움까지 느끼며 그 환자를 마침 비어있는 VIP실에 입원시키고 전담간호사까지 배치했다. 소생 가능성이 전연 없어 보이는 그 환자가 제발 오래 생존하여 병원 살림을 두둑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그 인턴이 사모님이라고 말한 환자의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 토요일, 오전 진료만 하고 퇴근하기까지도 환자의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러나 김 과장이 애써 추천하여 보낸 환자인데 설마 무슨 문제가 있을까, 나는 그대로 퇴근했다.
월요일, 집을 나서면서부터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병원에 출근하자마자 가운도 입지 않은 채 제일 먼저 그 병실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재력가의 고상한 사모님 대신 중학교 청색 반소매 하복을 입은 한 소년이 침대 옆 간이의자에 앉아 환자 머리맡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있었다. 꼬박 그렇게 엎드려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온 기척을 느낀 소년이 고개를 들며 일어섰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촌티가 줄줄 흐르는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눈동자의 흰자위만 크게 번들거리는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 난민 아이 같았다.
― 넌 누구야?
나의 위압적인 태도에 소년은 처음에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을 굴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어린 제 생각에도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 이 환자분의 아들이래요. 토요일 저녁에 창성 병원의 김 과장님께서 직접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회진 시간도 아닌 이른 아침 시간에 내가 병실에 온 것을 알고 그 병실의 전담간호사로 지정한 이 간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 그래요? 이것 참 이상한데?
소년의 차림새나 외모로 보아 분명 서울의 재력가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아니었다.
― 어머니가 올 거라고 했는데? 네 어머니는 어디 있어?
― 어머니 대신 왔다고 합니다. 저도 무슨 일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소년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 간호사가 마치 자기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대신 말했다. 나는 그때야 번쩍 의아한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병실을 나와 진료실로 가서 창성 병원에서 환자를 이송하면서 보낸 의료기록철을 살펴보았다.
내 예감이 맞았다. 혹시 기록철에 환자의 신상에 관한 개인정보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 정보는 아예 없었다. 그때 구급차를 타고 온 인턴의 말만 믿고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나는 곧바로 창성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 김 과장님 좀 바꿔주세요.
― 지금 회진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제길! 화가 난 나머지 나는 책상 위 송수화기를 꽝하고 내려놓았다. 김 과장의 전화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연결되었다. 아마도 김 과장은 일부러 내 부아를 돋우기 위해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 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보낸 환자 말이야?
―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시치미를 뚝 떼는 김 과장의 첫마디였다.
― 보호자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 뭐라고? 보호자가 여태 오지 않았어?
― 왔어. 그런데 꾀죄죄한 중학생 한 녀석이 와 있어. 그 촌 녀석, 네가 데려다 놓았다며? 너, 장난쳤지?
― 하하하, 이제야 감을 잡았냐? 그래, 그 돈벌레 원장 정신 좀 차리라고 보냈다. 돈벌레 원장이 그렇게 좋아하는 고급 환자님이시니 그 으리으리한 VIP실에 모셔놓고 자알 모시 거라잉.
자칭 21C 최후의 슈바이처라고 자부하는 김 과장은 해경병원의 원장을 의료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 자질조차 없이 오직 돈만 밝히는 <돈벌레 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원장이 운영하는 해경병원을 아예 병원이 아닌 공장으로 취급했다.
― 야, 이 친구야. 그 양반 정신 차리게 하려다가 내 모가지 잘리게 생겼다.
― 그 모가지 잘리면 우리 공장으로 와라. 여기 의자 하나 비어있다. 아, 속이 다 시원하구나.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앉는구먼. 자, 그럼 끊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니라. 부디부디 잘 모시고 왕창왕창 돈을 벌거래이.
김 과장이 억지 사투리를 섞어 말하고는 껄껄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황당했다. 그렇다고 김 과장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환자를 VIP실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김 과장의 호칭처럼 돈벌레 원장이 아는 날이면 불벼락이 떨어질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