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시가 되어 돌아온 후크 선장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나는 다시 마을 골목길을 되돌아 나와 마을 왼편의 해안 모래사장으로 내려왔다. 후크 선장의 묘소는 이 모래사장이 끝나는 왼편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후크 선장의 묘소가 있는 언덕길을 잡초를 헤치며 올랐다. 혹시 없어져 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무덤은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돌보지 않은 탓에 한눈에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봉분은 무성한 잡초에 덮여 있었다.
나는 봉분 앞에 놓인 납작한 작은 평판 비석을 덮고 있는 잡초를 손으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열기를 뿜어대는 6월의 뜨거운 햇볕에 이내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장갑을 끼지 않은 손에 푸른 풀물이 들었다. 나는 드러난 평판 비석 위에 먼저 소년의 시집을 올려놓고 음식 봉지에서 떡과 과일을 꺼내어 진열했다. 그러고는 막걸리병 하나와 종이컵을 꺼내 한 잔을 따라 올려놓았다. 절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하고 돌아서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섬 주민들이 <토끼머리 바위>라고 부르던 작은 바위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고, 그 바위섬 너머 건너편 매립 해안 신항만 부두에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점차 짙어져 가는 노을 속으로 잠겨 들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해안의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노을이 모래사장까지 내려와 만(灣)으로 굽이진 바다 수면에 붉은 주단을 깔고 있었다. 소년 피터 팬과 마을 아이들, 후크 선장과 여선생, 해적단 아버지들이 함께 어울려 해적놀이를 하던 곳, 나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그들이 해적놀이하는 정경을 그려보았다.
모래사장 중앙에 장작불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불빛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이 깡충깡충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랫소리와 후크 선장 해적단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합창처럼 내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울컥 가슴이 메며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지금까지 체한 것처럼 답답하게 옥죄고 있던 가슴속 울혈이 퍼지는 노을처럼 녹아내렸다. 노을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다가와 손길을 내밀어 내 어깨에 걸려 있는 무거운 짐을 풀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종이컵의 술을 들어 봉분 위에 세 번으로 나누어버리고 다시 한 잔을 따라 비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무덤 앞 잔디 위에 빈 음식 봉지를 깔고 앉아 후크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 후크 선장, 이렇게 늦게 찾아와 정말 미안합니다. 그동안 참으로 외롭고 적적 하셨겠습니다.
― 의사 선생, 이렇게 찾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구려. 그러나 외롭다거나 적적하다는 말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오. 바다가 있고, 바다에 생명이 있고, 하늘이 있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는 한 나는 외롭지도 않고 적적하지도 않다오.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 땅과 이 땅의 모든 물상과 더불어 말이오. 이 섬의 아이들도 그랬지요.
― 후크 선장, 당신의 말은 마치 초월자의 말 같군요. 삼라만상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살아있는 생보다도 오히려 죽음이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의 속성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의사 선생, 광대한 우주의 인과법칙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법이라오. 태어남이 삶의 시작도 아니고, 죽음이 삶의 끝도 아니라오. 삶과 죽음이란 단지 어떤 개체가 어느 순간 어디에 존재하느냐의 문제일 따름이오. 그러므로 우주의 인과법칙에서 삶과 죽음을 구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오. 그것은 단지 살아있는 인간의 관점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 뿐이오.
― 그러나 살아있는 개체는 살아가는 동안의 그 개체 고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그 개체의 올바른 존재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이런 철학적인 얘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당신에게 당신 아들 피터 팬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 의사 선생, 죽은 나에게 살아있는 내 아들의 얘기가 지금 내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거나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이 말하는 개체의 존재론적 삶에 그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시구려.
― 후크 선장. 당신이 그렇게 양해해 주시니 내가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큰 축복을 받는 것 같습니다.
― 모든 개체의 그 어떠한 삶도 축복받지 않은 삶은 없다오. 단지 그 개체가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전생의 내 삶과 현생의 내 아들의 삶도 더없이 큰 축복을 받았지요. 그럼 축복받은 내 아들의 얘기를 한 번 들어봅시다.
― 그래요. 후크 선장. 닷새 전이었습니다. 나는 내 병원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등기우편물 하나를 받았습니다. 서적이 든 우편물이었는데, 놀랍게도 겉봉에 당신 아들 피터 팬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때 목선을 타고 바다로 떠난 그 일로 말미암아 당신 아들이 지금까지도 교도소에 갇혀있는 것을.
그런 당신 아들 피터 팬이 교도소에서 특별히 내게 보낸 우편물이었습니다. 물론 당신 아들이 교도소에 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내 양심과 당신에게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일의 잘잘못은 따지지 말도록 합시다. 그 일 때문에 당신 아들이 10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갇혀 고통받는 것처럼, 나도 지금까지 너무도 큰 고뇌와 자책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나는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당신과 당신 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을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당신들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원죄처럼 내 죄의식도 함께 깨어나 너무도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해 보아도 내면에서 울리는 내 양심의 소리는 지울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 당신들의 낙원이었던 이 섬은 나로 말미암아 낡은 폐선처럼 침몰해 버렸던 것이고, 그 폐선에는 당신과 당신 아들이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의사 선생, 당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오. 그때 당신이 처한 상황과 보편적 인간의 양심에 비추어보면, 지금까지의 당신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그러나 의사 선생, 그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해주고 싶소. 그 일에 대하여 나도 내 아들도 당신을 원망해 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오. 오히려 우리는 당신에게 경건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오.
그 일 때문에 당신이 고통받고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도덕과 양심, 특히 법이라는 굴레에 당신 스스로가 구속되어 버린 까닭일 것이요. 당신의 고통은 이런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보편적 인간의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오. 나는 지금이라도 당신이 그런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라오.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큰 위안이 됩니다. 어쨌든 그 우편물 봉투 속에 당신 아들이 당신을 생각하며 쓴 시를 모은 시집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집 갈피에 특별히 당신 아들이 내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있었고요. 그 편지에 당신을 생각하며 교도소에서 틈틈이 쓴 시가 문단의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되었고, 더불어 첫 시집까지 출판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후크 선장, 이런 아들이 대견하지 않습니까?
― 어느 인간의 독창적인 정신세계와 언어의 미학적 구사 능력에 대한 찬사가 시인이라는 칭호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우주적 언어의 관점에서는 하찮은 것이라오. 인간의 성취적 삶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주적 언어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일은 거대한 폭풍우 속의 빗방울 하나에 불과하다오. 그러나 내 아들이 어린 나이로 인간적 존재의 삶에서 그만한 성취라도 했다고 하니 내 입으로 대견하다고 말하기는 좀 쑥스럽고, 그냥 흐뭇하게 웃고 말지요.
― 하하,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후크 선장 당신은 아직 이곳 생의 세계에 대한 연민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군요. 보십시오. 이것이 당신 아들이 내게 보내온 시집입니다.
나는 후크 선장과의 무언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비석 위에 올려놓았던 소년의 시집을 다시 손에 들었다. <해적놀이>라는 큰 제목 아래에 조금 작은 고딕체 글씨체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낡은 목선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내 살해한 어느 소년범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시집>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노을은 수평선과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르익은 노을 속 바다 위에서 작은 어선 하나가 미끄러지듯 멀리 해안마을의 외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시집의 표지를 넘겼다. 표지 다음 갈피 페이지에 10년 전 그때의 15살 앳된 중학생이 아닌, 이제는 어엿한 20대 청년으로 성장한 소년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와 이지적인 눈매가 깊고 잔잔했다. 그 사진 아래에 시인의 간단한 프로필과 시인의 말이 있었다. 나는 그 사진과 시인의 말을 보면서 다시 후크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 후크 선장, 보세요. 시집 제목이 <해적놀이>입니다. 물론 이 제목은 당신과 마을 아이들이 저 모래사장에서 했던 피터 팬 동화 놀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여기에 당신 아들이 당신에게 쓴 서문이 있습니다. 시집을 내는 시인의 소감입니다. 시집을 받고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데, 이 글은 당신에게 꼭 읽어주고 싶습니다. 10년 전 그날 밤, 당신 아들과 한 약속을 상기하면서 들어보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크 선장의 봉분 앞 비석 앞에 섰다. 그리고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가다듬고 소년의 흑백사진 아래에 적힌 시인의 말을 읽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