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법정에 서다

제1화 토끼섬의 유래

by 임재도

임재도 작가의 법률감성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제1화 토끼섬의 유래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산골 숲 속에 살고 있던 토끼 부부 한 쌍이 남해 해안으로 나들이를 나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다에는 올망졸망 크고 작은 많은 섬이 마치 그림처럼 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섬 중에서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섬 하나가 특별히 토끼 부부의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 섬은 마치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 두 개를 날렵하게 들고 서 있는 앙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끼 부부는 자기들의 모습을 꼭 빼닮은 그 섬의 신기한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습니다. 토끼 형상을 한 그 섬의 모습처럼 그 섬에는 분명 그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풀도 가득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해안에서 가까워 눈앞에 빤히 보이는 그 섬은 헤엄을 치더라도 금방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토끼 부부는 그 섬에 가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토끼 부부는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나무토막을 주워 모아 칡넝쿨로 엮어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뗏목을 바다에 띄우고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앞발을 뻗기만 해도 금방 닿을 것처럼 가깝게 보이던 그 섬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있었습니다. 온종일 노를 저었는데도 섬은 여전히 멀기만 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왔습니다. 토끼 부부는 별빛과 함께 내리는 이슬을 마시면서 노를 저었습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뗏목이 가랑잎처럼 흔들렸습니다. 파도가 큰 입을 벌리고 뗏목을 속절없이 삼켜버릴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토끼 부부는 쉬지 않고 노를 저었습니다.


다음 날은 비도 내렸습니다. 토끼 부부는 빗물로 목을 축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노를 젓고 또 저었습니다. 허리와 팔다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섬을 향하여 계속 노를 저었습니다. 집채보다 큰 파도가 밀려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릅니다. 지쳐 쓰러졌다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몇 날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천신만고, 드디어 토끼 부부는 그 섬에 닿았습니다. 아침 햇살이 축복처럼 비추고 있었습니다. 토끼 부부는 제일 먼저 섬을 둘러보았습니다. 아, 토끼 부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토끼 부부의 고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섬의 산과 들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풀이 지천으로 늘려있었던 것입니다.


토끼 부부는 그 섬에 살면서 새끼 열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 새끼들이 또 새끼 열 마리씩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새끼들이 새끼들을 낳고, 그 새끼들이 또 새끼들을 낳아 이제 섬은 토끼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토끼들의 낙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이 섬을 <토끼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토끼섬에 <피터 팬>이라고 불렸던 한 소년과 <후크 선장>이라고 불렸던 그 소년의 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5시간을 넘게 운전하여 남해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어 30분가량을 더 달리자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드디어 토끼섬으로 가는 도선 선착장이 있는 해안마을이 나타났다. 6월 초순의 태양은 이미 마을 앞바다에 붉은 노을 그물을 드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무더운 바람 속에 짜고 비릿한 바닷냄새가 풍겼다.


이윽고 국도를 벗어나 마을 입구 진입도로로 들어섰다. 그러나 정작 마을로 들어서자 10년 전의 한가롭던 어촌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대신 새로 조성된 마을 중앙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가설건물에 부동산중개소의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마을의 선착장도, 마을 앞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닌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토끼섬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도로변에 주차하고 근처의 한 부동산중개사 사무실로 들어가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나를 서울에서 내려온 부동산 투기꾼쯤으로 보았는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쯤의 소장이 입술에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10년 전,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창성시가 건설하는 신항만 부지에 이 마을 앞바다가 편입되어 토끼섬 안쪽의 내해(內海)는 이미 매립공사가 완료되어 토끼섬은 이제 완전한 육지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일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형 컨테이너 화물선과 호화 크루즈 유람선의 접안까지 가능한 현대식 부두를 건설하기 위한 거대 간척사업이었다고 했다.


나는 투자할만한 좋은 땅이 많이 있다는 소장의 요란한 호객행위를 뒤로하고 부동산 사무소를 나와 다시 차에 올랐다. 옛날 토끼섬으로 가는 도선 역할은 이제는 마을 외항 방파제를 기점으로 섬까지 직선으로 곧게 연결된 방조제 위에 매끈하게 닦아놓은 왕복 2차선 아스팔트 해안도로가 대신하고 있었다.


고향인 이 토끼섬을 조화로운 자연생태 휴양 섬으로 만들어보겠다고 귀향했던 소년의 아버지 후크 선장이었다. 후크 선장이 이제는 육지가 되어버린 지금 이 섬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보다 혹시 지금 찾아가고 있는 후크 선장의 묘소도 이 매립공사로 인해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은근히 걱정하면서 차를 운전하여 방조제 위에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를 천천히 나아갔다. 갓길 보호난간 철판과 방조제 시멘트 축대벽 군데군데에 <생존권 사수, 창성시는 주민들의 생계 대책을 보장하라>, <현실가격 보상 없이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등등의 과격한 문구들이 붉은 페인트 글씨로 혈서처럼 휘갈겨져 있었다. 이미 매립공사를 마친 지금까지도 신항만 공사로 인한 보상 갈등의 상처는 여전히 깊게 패 있는 것 같았다.


해안마을 도선 선착장에서 배편으로 20분 정도가 소요되던 토끼섬 바닷길은 일부러 천천히 운행했는데도 승용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섬에 있던 옛 도선 선착장 자리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닷새 전에 등기우편으로 받은 소년의 시집과 미리 준비해 온 떡과 과일 등 간단한 제수용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마을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10년 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섬마을 민가는 모두 폐가로 변해 있었다. 이미 반은 쓰러져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소년과 마을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분교를 먼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봤을 때, 마을 오른쪽 언덕 위에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학교와 운동장은 무성한 동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평온하게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학교도 마을의 집들과 마찬가지였다. 달랑 작은 교실 하나뿐인 학교 건물은 이미 지붕 한쪽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었고, 그 건물 오른쪽 뒤편에 있던 거실 겸 서재에 방 하나가 딸려있던 교사(敎師) 사택도 서까래가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다. 쓰러져가는 건물 잔해의 틈새와 작은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그 여선생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이 외딴 섬마을 분교에서 혼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그 젊은 여선생을 떠올렸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훤칠한 키에 목뒤에서 질끈 동여맨 기다란 생머리, 앳된 얼굴에 재기 발랄하고 다정다감한 음성, 소년과 이 섬의 아이들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 10년 전 그때, 법정에서 그녀가 절규하며 쏟아내던 눈물이 어른거리며 새삼 가슴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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