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재도 May 12. 2023

나는 시를 본다

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둥치가슴 길 



                                                                  




숨을 쉬는 나무는 바람에도 멍이 들지

작은 바람에 잎사귀 가지 흔들리고 

거센 폭풍우에 뿌리까지 들썩거려 

그 바람 삭이고 또 삭이려고

둥치가슴에 작은 길 하나 만들었지


화창한 어느 봄날 개미병정들 

행진가 힘차게 부르며 그 길 지나가고

여름 소나기 맞은 달팽이 한 마리 

휘휘 휘파람 불며 그 길 지나갔지

가을 도토리 익어 다람쥐 또르르 지나간 뒤  

파란 눈빛 청설모 소리 없이 그 뒤를 따라갔지 

오소리 도망치고 굶주린 승냥이 쫓아갔지


                 



그 작은 길 점점 넓어져 큰길 될수록

둥치가슴은 아프고 또 아팠지 

도토리 낙엽 모두 떨어져 바스러지고

겨울 잠잘 곳 찾아가는 반달곰 한 마리 

고개 살짝 숙이고 어깨 비비며 

그 길 슬쩍 지나갈 수 있을 때

둥치가슴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을까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 

바람에 삭지 않는 가슴 길 어디 있으랴

둥치가슴 길 넓으면 넓을수록 

마음우물 깊어져 맑은 샘 솟아나지

그 가슴 길 지나가는 생의 발자국들 

눈물 젖은 시선에 어른거리지   


           


         


언제나 가슴이 활짝 열려있다면 

세파라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 바람에 멍들거나 상처를 입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을 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살아가는 것은, 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둥치가슴에 난 길을 점점 넓혀가는 일이 아닐까. 

그 길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가슴의 아픔은 줄어들 것이다. 

그래, 그 가슴 길로 덩치 큰 반달곰 한 마리쯤 

고개 살짝 숙이고 지나가게 할 수 있다면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딪히는 세파 넉넉하게 웃으며 맞고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시를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