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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y 26. 2023

모자이크 환상

열두 번째 마지막 환상 // 꿈 · 감사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열두 번째 마지막 환상 

꿈 · 감사


 



    

# 꿈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자 공부하여 중졸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일 년 후 고졸 자격 검정고시도 합격했습니다. 

정규과정을 밟는 또래 아이들보다 2년여나 빨리 고교과정을 마쳤습니다. 


10년 넘게 중풍을 앓아 반신불수로 누워 계신 아버지의 병원 치료비를 벌고

야간대학이라도 가기 위해 어느 조선소의 직업훈련소에 들어갔습니다.

일 년 과정의 직업훈련 과정을 마치고 

조선소의 정규직 현장 기능사원이 되었습니다.

고된 잔업을 한 수당까지 합치면 월급이 꽤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병원비와 야간대학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나이 19살이 되던 유월 어느 날,

그곳 조선소에서 있었던 아주 큰 가스폭발 사고!

그 산재사고로 소년은 전신 95%, 2~3도 화상과 

양쪽 고막이 화마에 완전히 녹아버리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직후,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는 소년이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소년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름에 튀겨진 통닭처럼 전신에 화상을 입고

미라처럼 붕대와 거즈로 친친 감겨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불타버린 피부 상처에서 흐르는 계속되는 출혈로 인한 수혈

붕대 안쪽 온몸이 썩어가는 듯한 상처의 고름에서 풍기는 악취와 소독 냄새 

무엇보다 스스로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의 지독한 갈증과 통증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수시로 엄습하는 40도를 오르내리는 체온


그때 소년이 외부와 차단된 화상 전용 무균 중환자실 병동에서 겪은

눈앞에 다가온 죽음과 직면하고 있을 때의 상태입니다.

그때 소년은 한 번도 믿어보지 않았던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극한의 고통 속에서 보이지 않은 신을 향해 외친 

섬망증(譫妄症) 환자의 안타까운 절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하지만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명성과 명예 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지 남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안정과

내 글을 읽어주는 단 세 사람의 독자만 있어도 

마음 깊이 만족하고 크게 감사하며

가난하지만 소박한 작가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이 사고로 내 몸에 어떤 장애가 오고

지우지 못할 그 어떤 흉터가 남더라도

내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내 생명만은 거두지 마시고 

내게 이런 작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단 한 번만이라도 주십시오.


이것이 그 소년이 죽음 앞에서 하늘을 향해 외친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이것이 그때 열아홉 살, 그 소년의 단 하나뿐인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 감사    

 


소년의 간절한 기도에 하늘이 응답한 것일까요.

소년은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후 3년여 동안에 걸친 피부이식 수술과 

양쪽 고막 이식 수술을 거쳐 

만학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하고, 취직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면서 

바쁜 직장생활 틈틈이 점을 찍듯 소설을 썼습니다.

장년의 나이가 되어 어릴 적부터 꿈꾸던 소설가가 되었고

시인이란 칭호도 덤으로 얻었습니다.


그동안 몇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문단의 중견 시인들과 어울려 시집도 내었습니다.

각종 문학지에 꽤 많은 중, 단편소설과 시도 발표했습니다. 

나름 문단 활동도 열심히 하였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것처럼

얼떨결에 문학상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내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내의 헌신 덕분에 어릴 적 그 기도처럼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경제적 안정은 진작에 이루었습니다. 오히려 남에게 손을 내밀어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상위권에 속할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경제적 안정을 토대로 오직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오랫동안 근속하던 직장을 일찍 퇴직하고 소위 말하는 <파이어(fire)족>이 되었습니다. 




지금 그 소년은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때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보청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모든 세상이 침묵 속에 빠져버리는 심각한 청각장애를 겪고 있고, 양쪽 귀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두 마리 왕매미가 왕왕 울어대는 이명에 시달리고 있으며, 감기나 몸살 등 사소한 병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때의 사고 순간이 악몽으로 재현되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눈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 하늘과 맺은 약속처럼 이 장애와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명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열한 번째 환상 // 콜럼버스의 관)


이제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그 소년도 그렇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집 뒤에 있는 낮은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 그때, 죽음 앞에서 하늘과 한 그 약속을 마음에 새깁니다. 

단 세 사람의 독자만 있어도 마음으로 깊이 만족하고 크게 감사합니다.


열아홉 살 그때, 하늘과 맺은 그 소년의 꿈은 이미 넘치도록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은 교만이고 헛된 욕심일 뿐입니다. 

오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에 소개한 11편의 작품은 지금까지 20여 년 가까이 문단 활동을 하면서 시와 소설이 어우러진 ‘스토리가 있는 시(Story Poem)’ 또는 ‘시적인 소설(Poetic Novel)’ 형식의 글을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각종 문학지에 이미 발표했던 글을《모자이크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묶은 것입니다.      


브런치에 소개하면서 거의 모두 조금씩 다시 고쳐 썼고, 일부는 전면 개작에 가까울 정도로 다시 고쳐 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칫 시도 소설도 아닌 기형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더 앞섭니다.     


이제 다른 작품으로 브런치 작가들과 독자들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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