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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y 01. 2023

모자이크 환상

열한 번째 환상 // 거짓말  ·  살인 (1)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열한 번째 환상

거짓말 · 살인 (1)     

          





#1 엄마의 거짓말 



       

❚ 엄마의 빨간 양산 위에 나풀거리던 노랑나비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여러분도 <섬집 아기>라는 이 동요를 아시죠. 

엄마와 나, 그리고 내 여동생이 살았던 곳은 

이 동요의 가사처럼 바닷가 작은 어촌이었죠.

그 마을 서쪽에 달랑 집 한 채만 뚝 떨어져 있는 

작은 외딴집, 그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죠. 

엄마가 자는 안방과 동생과 내가 자는 왼쪽 곁방, 

그 중간에 좁은 나무마루가 있는 양철지붕 집이었죠.     

그 집 앞 바닷가에 제법 큼지막한 바위섬 하나가 있었죠.


해 질 무렵 녹슨 양철지붕에 드리우던 

바위섬 그늘의 그 서늘한 기억

서쪽 하늘에 선혈처럼 번지던 핏빛 노을의 잔상 


내 기억 속 우리 집과 바다, 그리고 하늘의 풍경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바닷가 마을이 어딘지, 

그 마을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닷가 마을의 여느 엄마들은  

섬 그늘에 굴을 따러 가지요.

굴을 따면서도 아기 생각만 하지요. 

그래서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해변 모랫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지요.

그때 갈매기도 함께 날아오지요.  

   

그러나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릴 위해 굴을 따러 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늦은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헝클어진 파마 곱슬머리를 손가락빗으로 대충 추슬렀죠.

크레용 같은 빨간 막대기로 입술을 붉게 칠하고, 

밀가루 같은 하얀 분을 얼굴에 덕지덕지 발랐죠. 

때로는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거나, 

어떤 날은 팔을 들면 겨드랑이와 젖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울긋불긋한 저고리 한복을 입고 어디론가 나갔죠.

햇볕이 내리쬐는 날은 빨간 양산을 쓰고 나갔죠.      

바닷가 마을 들길을 걸어가는 

엄마의 빨간 양산 위에서 

노랑나비가 나풀거리며 날았지요. 

투명 낚싯줄 같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지요. 

그 아지랑이를 실눈으로 바라보며 

마을 남자들이 음험한 웃음을 흘렸지요. 

마을 아낙들이 수군대며 손가락질했지요. 

그러나 나는 그때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우리 오누이를 송충이 보듯이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피한 이유가 

그런 엄마 때문인 줄도 몰랐습니다.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바다로 들로 

일하러 나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항상 아침 늦게 나가 밤이 늦어 돌아왔죠.

입에서는 언제나 퀴퀴한 술 냄새가 풍기고 

혀 꼬부라진 욕설이 튀어나오기 일쑤였죠.     

     



엄마가 나가고 나면 나와 동생은

텅 빈 집에 단둘이 댕그라니 남았죠. 

마을의 다른 아이들은 학교에 갔지만

우리는 학교에도 가지 않았죠. 

아니, 학교란 것이 있는 줄도 몰랐죠.

엄마는 밥도 챙겨놓지 않고 나갔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배가 고팠죠.

나는 배가 고파 칭얼대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동네 아이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배운

<섬집 아기> 노래를 불렀죠.

엄마가 우릴 위해 바구니 가득 굴을 따서

바닷가 모랫길을 달려오는 상상을 하면서.      

동생은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나뭇가지처럼 빼빼 말랐었죠.

그러나 눈은 유난히도 크고, 깊고, 검었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우리 집에 

바위섬 그늘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면 

동생은 배가 고파서 지친 나머지 

그저 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죠.     

     



나는 배고픈 동생을 데리고 바닷가로 갔지요.

그곳에 갈매기가 있었지요. 

갈매기는 우리의 유일한 동무였지요.

갈매기도 우리처럼 배가 고파 끼룩끼룩 울어댔지요. 

동생은 칭얼대다가도 갈매기만 보면 방긋방긋 웃었지요.

갈매기는 동생의 눈 속에서 날았고

배고픈 갈매기의 눈물이 동생의 눈을 통하여 흘러내렸지요. 

나는 뾰쪽한 돌로 굴을 따고 

얕은 물가 여린 미역을 따서 동생에게 먹였죠.

갈매기도 내가 돌로 찍어놓은 굴을 쪼았죠.      

<섬집 아기> 노래에는 엄마가 굴을 따다가 

아기 생각에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바닷가 모랫길을 달려 집으로 간다고 했죠. 

그 바닷가 마을 양철지붕 집에서 

나와 내 여동생도 섬집 아기처럼 자랐죠. 

    

그러나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릴 위해 굴을 따러 간 적이 없었습니다.               






❚ 녹슨 양철지붕을 때리던 빗소리     

 


햇볕이 따가운 어느 여름날이었죠.

그날도 엄마는 아침 늦게 일어나 어디론가 나갔죠.

오후가 되자, 동생이 갈매기를 보러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죠.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그날, 바람이 없는 바다는 잔잔했지요.

햇빛은 푸른 수면에 부딪혀 잘게 깨어지고 있었지요. 

바다는 생선비늘처럼 은빛 물결로 반짝이고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요. 

우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거친 바람이 먼바다에서 해일 같은 파도를 몰고 왔지요. 

내가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굴을 따던 바위를 

집채만 한 파도가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지요. 

갈매기도 무서웠던지 어디론가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지요.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사나운 물보라가 우리를 덮쳤습니다. 

나는 동생을 안고 가까스로 물벼락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가운 바닷물과 비에 홀딱 젖고 말았습니다. 

체온을 빼앗긴 동생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떨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품에 안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랗게 변해버린 동생의 입술을 뺨으로 문지르며 달렸습니다. 

바위에 부딪혀 정강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쉬지 않고 빗속을 달렸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에 도착하여 동생을 먼저 마루에 뉘고

황급히 안방 문을 연 순간, 

나는 그만 방문 앞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놀랍고도 기묘한 광경 

연체동물처럼 꿈틀거리는 두 개의 알몸뚱이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두 개의 몸뚱이에서 

물기 머금은 비릿한 생선 비린내와 

역한 술 냄새가 확 풍겼습니다. 

아래에 깔려 내지르는 비명 같은 콧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더 음산하고 기묘하게 들렸습니다. 

방안에는 언젠가 마을에서 본 적 있는 구레나룻 남자와 

엄마가 벌거벗은 채로 뒤엉켜 가쁜 숨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눈에서 번쩍하고 불꽃이 일며 

꽝, 하는 천둥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때, 정말 천둥이 울렸는지는 모릅니다. 

천둥과 동시에 벼락이 내려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속절없이 마루 위에 픽 쓰러졌습니다. 

구레나룻 남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뛰쳐나와 

내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쳤던 것입니다.


하얗게 타들어 가는 머릿속

양철지붕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   

  

눈앞의 모든 물체가 부옇게 흐려 보였습니다. 

쓰러진 채로 얼핏 눈을 껌뻑여보니, 

남자의 덜렁거리는 남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징그러웠습니다. 

나는 따귀를 맞은 아픔보다도 

그 남근의 흉물스러움에 꽥꽥,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이 놀라 자지러지는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의 울음소리와 양철지붕 빗소리가 뒤섞여

기묘한 화음으로 내 머릿속을 왕왕 울렸습니다.

이건 또 뭐야, 남자가 소리치며 동생을 걷어찼습니다. 

동생이 가벼운 깃털처럼 날아 마루 구석에 처박혔습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습니다.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웅크린 채 

그 크고 검은 눈이 하얗게 뒤집혀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에게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내 옆구리를 걷어찼습니다. 

나는 다람쥐처럼 또르르 굴러 섬돌에 이마를 찍고 

마당 빗물 웅덩이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마당에는 창대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섬돌에 찍힌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피와 비에 젖은 눈을 껌벅이며 

마루 위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습니다. 

시커먼 털에 뒤덮인 사타구니 사이, 

남자의 남근은 여전히 흉물스럽게 덜렁거렸습니다. 

나는 또다시 캑캑,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옷을 주섬주섬 입은 남자가 섬돌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입만 벙긋해 봐라

모가지를 확 분질러 불기다

남자가 내 옆구리를 다시 한번 걷어차며 소리쳤습니다.

에이재수 옴 붙었네.

남자가 투덜거리며 내 얼굴에 칵, 가래침을 뱉고는 

우산도 없이 대문을 나서 빗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일로 가득 차 있지요.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도 자주 발생하지요.

우리 몸이 우리 의지나 생각에 따르지 않는 이상한 경우도 생기지요. 


그 사건 후, 나와 동생에게도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입만 벙긋해 봐라모가지를 확 분질러 불기다.

구레나룻 남자의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그 소리가 두려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내 혀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더니

종내에는 아예 혀가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참 이상한 바보 같은 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은 내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자, 

동생도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말은 가면과 같아서 거짓과 위선으로 가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빛에는 오직 그 본성만이 투사됩니다.

그때부터 동생과 나는 말 대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동생의 눈빛을 보고 동생은 내 눈빛을 보고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입을 통하여 말을 하지 않고도 

눈을 통하여 마음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 낯선 서울역에 내리던 푸른 바다 달빛      



몹시도 추운 어느 겨울날 아주 이른 새벽,

엄마가 느닷없이 우리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죠.

이 말도 못 하는 웬수 덩어리들아

니들 땜에 못 살겠다

니들 애비 찾아가자.

그날 새벽, 우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집을 나왔죠.

얼음같이 차가운 해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들길을 걸어 나와,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또 기차를 갈아타고, 

날이 어두워진 밤, 드디어 서울역에 도착했죠. 




나는 그때 그곳이 서울역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죠. 

캄캄한 밤인데도 대낮처럼 불빛이 환했죠.

남자들은 말쑥한 양복 옷차림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있었죠. 

여자들은 입술을 붉게 칠하고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바쁘게 오가는 그 사람들은 모두 혼이 빼앗긴 채 

푸른 달빛 바닷가를 부유하는 유령처럼 보였죠.   

이리 온나여 꼼짝 말고 있어라

니 애비 딜꼬 오마

역사(驛舍) 안 어느 모퉁이 벽 아래에서 엄마가 말했죠.

그러고는 엄마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사라졌죠.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나는 동생의 어깨를 안고 벽 아래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동생의 가냘픈 어깨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그 깊은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크고 검고 깊은 눈동자에 

푸른 바다 달빛이 드리우고

해변 조약돌 소리가 재잘대고

자장가 같은 파도소리가 깃들고 

하늘의 수많은 별빛이 내려앉고 

갈매기가 젖은 날개로 날고 있었습니다. 

그 눈이 바다로 가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낯선 서울역에 바다는 없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지친 동생은 내 옆구리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든 동생의 속눈썹 아래에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더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오갔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엄마는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발소리에 깨어난 동생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의 눈은 우물처럼 움푹 패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워 답답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동생도 따라 울 것 같아 억지로 눈물을 참았습니다.     

     



점심때가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두 개로 보이다가, 

한 개로 보이다가, 다시 두 개로 보이다가,

유령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자꾸만 눈이 감겨 왔습니다. 

잠이 들면 안 돼. 

잠든 사이에 누가 동생을 데리고 가버릴지 몰라. 

나는 감기는 눈을 연신 껌벅이며 잠을 쫓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을 품에 꼭 안고 엎드렸습니다. 

혹시나 내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가 동생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엎드려 있는 동안,

나는 기어이 잠이 들어버렸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내가 엎드려 있던 머리맡에 동전이 제법 수북하고, 

천 원짜리 종이돈도 몇 장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알았습니다. 

아! 이렇게 엎드려 있으면 사람들이 돈을 주는구나. 

나는 서둘러 돈을 챙기면서 동생을 살펴보았습니다. 

동생은 차가운 바닥에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러나 깨어난 동생의 눈에 생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갈증에 메마른 입술은 하얗게 부르터 있었습니다. 

동생을 위하여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환하게 불을 밝힌 빵 가게가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그 가게로 갔습니다. 

하얀 세모 모자를 쓴 여자가 우리의 행색을 훑어보았습니다. 

나는 손으로 빵을 가리키며 돈을 내보였습니다. 

여자가 구석진 자리에 우리를 앉히고 

천 원짜리 종이돈 세 장을 빼앗아 갔습니다. 

여자가 물통과 빵 두 개를 탁자 위에 놓고 갔습니다. 

그 사이에 엄마가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동생이 빵을 먹자마자 곧바로 모퉁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손에는 반만 먹고 남은 빵조각이 들려있었습니다. 

나중에 동생에게 주고자 했습니다.     

     



다시 밖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내가 먹다 만 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빵을 동생에게 주었습니다. 

동생은 작은 생쥐처럼 오물거리며 빵을 먹었습니다. 

나는 그때야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엄마는 우리를 버리고 갔을지도 모른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불쌍한 내 동생, 동생은 내가 돌봐 주어야 할 아이였습니다. 

동생을 어떻게 돌볼까? 

바다도 없는 이렇게 낯선 곳에서, 바다에 가면 되는데, 

어디로 해서 어떻게 가야 하나? 

바다는 어느 쪽에 있을까? 

동생의 주린 배를 어떻게 채워 줄까?     

    



그래, 아까 엎드려 있을 때 사람들이 돈을 주고 갔었지. 

그렇게 해보자. 

나는 다시 동생을 품에 안고 두 손을 위로 벌린 채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신경을 손바닥에 모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냥 앉아 있을 때는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렇게 엎드려 있자, 내 손바닥 위에 

동전이며 종이돈을 놓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엎드린 자세로 얼마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 손바닥과 머리맡에 동전 몇 개와 

천 원짜리 종이돈 두 장이 놓였습니다. 

나는 왼손으로는 종이돈을 꼭 쥐고 

오른손은 그대로 편 채 계속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동생은 내 품 안에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동생은 작은 참새처럼 새근대고 있었습니다. 

나도 갑자기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빵 반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내 몸은 몰려오는 졸음에 감각조차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자면 안 되는데……. 

엄마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끝없는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 속에서 보았습니다. 

내가 처음 본 그 낯선 서울역, 

그 서울역에 푸른 바다 달빛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의 눈 속에 내리던 그 푸른 바다 달빛이 

서울역에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 어두운 지하실 공간을 날아다니는 갈매기           



이 새끼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들며 호통을 쳤습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험상궂은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구레나룻 남자였습니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남근이 덜렁거리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나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리 내

남자는 먼저 내 손에 들려있던 종이돈을 빼앗아 갔습니다.

내 머리맡에 놓여있던 동전도 모두 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지레 겁을 먹고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듯 피해 갈 뿐이었습니다.    

  

따라와

남자가 동생과 내 손목을 양손에 하나씩 잡았습니다. 

나는 뻗대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갔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내 혀와 동생의 혀도 굳어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驛舍) 밖에는 수많은 차가 불을 켜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안 되는데……? 

엄마가 올지도 모르는데……? 

동생이 무서워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울고 싶었습니다. 

남자는 길가에 서 있던 검은색 승용차에 우리를 태웠습니다.

수많은 차가 도깨비처럼 눈에 불을 켜고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차도 그 사이에서 곡예를 하는 것처럼 달렸습니다.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차는 도로를 벗어나 숲속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이윽고 차가 어느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 멈췄습니다. 

남자가 먼저 동생을 끌어내고, 나를 끌어냈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커다란 이층 집이 서 있었습니다. 

그 집은 어마어마하게 큰 성채 같았습니다. 

주위에는 다른 집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장승같은 나무들만 서 있었습니다. 

멀리 산 아래로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떠나온 바닷가 외딴 마을의 별밤 하늘이 

그대로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았습니다.      

     



남자가 다시 우리를 집 뒤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 작은 철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자가 벽에 붙은 전등스위치를 올리고 문을 열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지하 바닥에 철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남자가 그 문을 열었습니다. 

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에는 나와 동생 또래의 아이들 십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둥글게 원을 그리듯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다르게 나이 든 파마머리 여자도 있었습니다. 

여자가 우리를 바라보고는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흘렸습니다.

여자는 전기밥통에서 밥을 퍼 공기그릇에 담고 있었습니다. 

상도 없이 빙 둘러앉은 아이들 중앙에는 

김치 그릇 두 개와 된장국 냄비 두 개가 놓여있었습니다. 

남자가 우리를 아이들 틈에 앉혔습니다. 

여자가 퍼주는 밥공기가 순서대로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여자가 우리에게도 밥 한 공기씩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이 솟았습니다. 

이틀 동안이나 굶다시피 한 내 배는 등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밥을 다 먹지 않았습니다. 

내 밥그릇의 밥을 약간 덜어 동생의 밥그릇에 얹어 주었습니다. 

불쌍한 내 동생, 내가 돌보고 보호해주어야 할 내 동생이었으니까요.     

     



밥을 먹은 아이들은 이불을 펴고 누웠습니다. 

여자가 우리에게도 이불 하나를 주었습니다. 

지하실은 우리가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눕기에는 비좁았습니다. 

나는 구석 한쪽에 이불을 펴고 동생을 꼭 끌어안고 누웠습니다. 

그나마 밥으로 배를 채운 동생은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나도 끝도 모를,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 속으로 깊이, 

아주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엄마도 잊어버린 채…….    

  

나는 그 잠 속에서 갈매기를 보았지요.

갈매기는 우리에게 함께 날아가자고 했지요.

갈매기는 그 캄캄한 지하실의 어두운 공간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죠.

나와 동생은 갈매기의 날개에 올라타고 바다로 가는 꿈을 꾸고 있었죠.          


일어나

꿈속인 듯 누군가가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뼈마디가 분절되어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춥기도 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아프면 누가 내 동생을 돌볼까. 

나는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손을 뻗어 

동생의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아! 동생의 이마가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이것들 봐라일어나지 못해.

화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옆구리가 송두리째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가 발로 내 옆구리를 걷어찬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을 새까만 어둠이 가득 채웠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동생을 끌어안은 채로 옆으로 뒹굴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둬요이마에 열이 펄펄 끓고 있어요.

여자의 말소리가 들린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내가 의식을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다시 끝없는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잠은 꿈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지요.

꿈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해체되어 있지요.

어느 시간의 어떤 공간으로도 갈 수가 있지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도 있는 곳이죠. 

꿈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와 유사하죠.

그곳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한데 

그러나 정작 깨어나면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리죠. 

    

그때 동생과 나는 바닷가에 가 있었죠.

바닷가에는 우리처럼 배고픈 갈매기가 끼룩거리고 있었죠.

잔잔한 물결 위에 은빛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죠, 

그때 갑자기 어두워지며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왔지요. 

나는 파도에 휩쓸려 물속에서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비릿하고 짠 바닷물을 토하며 다시 깨어났지요. 

가여운 내 동생! 

불쌍한 내 동생도 파도가 집어삼키고 말았죠.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어푸어푸, 자맥질하다가 

가위에 눌려 다시 의식을 잃고 

더욱더 깊은 어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죠.

끝없는 잠과 꿈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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