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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Apr 04.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열 번째 환상  //  새와 우물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열 번째 환상  

새와 우물   





     

1      


까만 밤의 공간을 뚫고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부도난 건축공사장으로 날아왔다. 

새는 쓰레기 소각로로 사용하던 

녹슨 철제 드럼통 테두리 위에 앉았다. 

     

새의 다리는 가늘고 위태롭다. 

날개는 파란 별빛에 젖어 있다. 

새가 날개를 파닥이자 파란 별빛이 

반딧불처럼 드럼통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의 눈동자에 맑은 밤이슬이 스며들었다. 

새는 꿈을 꾸듯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였다. 

감긴 눈시울을 타고 이슬이 눈물처럼 흘렀다. 

이슬눈물이 드럼통에 쌓인 

파란 별빛을 녹이기 시작했다.



2     


새는 밤새도록 날개를 파닥이며 눈물을 흘렸다. 

새의 날갯짓에 피어난 새벽안개가 

소리 없이 드럼통을 감싸 안았다. 

별빛이 녹은 이슬눈물이 드럼통에 고이고 점차 깊어졌다. 

투명한 새벽빛이 여울처럼 드럼통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드럼통은 깊이를 잴 수 없는 우물이 되었다.

      

새의 지친 날개 그림자가 우물 수면에서 느리게 어른거렸다. 

새가 날개를 접고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가느다란 새의 목에서 튀어나온 마지막 각혈 한 조각이 

아침햇살로 깨어져 우물에서 반짝거렸다.          



3


우물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아지랑이는 나비가 된다. 

나비가 드럼통 수면 위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입으로 광섬유를 뽑아내어 

투명한 거미줄을 치기 시작한다.


빛의 거미줄은 날카롭고 치명적이다.     

 

거미줄에 한낮의 무지개가 걸린다. 

무지개다리에 플래카드 하나가 펼쳐진다. 

노임을 받지 못해 확성기를 들고 농성하던 공사장 인부들이 

무지개다리를 타고 드럼통 속으로 유령처럼 걸어 들어간다. 

거미줄에 인부들의 검은 그림자가 

모자이크처럼 잘려 증발한다.  

    

비명도 없고 

흔적도 없다.          



4     


무지개다리에 걸린 플래카드에 

선혈처럼 붉은 노을이 쏟아진다. 

서쪽 노을로 부는 바람에 

플래카드가 찢어져 날아간다.      


무지개다리가 석양에 녹아 

삼원색을 품은 투명한 수정렌즈가 된다. 

밤의 정령이 소리 없이 다가와 

수정렌즈에 별빛을 덧칠한다.      


드럼통 우물 안에서 

미세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우물 바닥 파랑새의 눈동자에서 

등대처럼 수정렌즈가 빛난다.      


가느다란 다리로 파랑새가 일어선다. 

목을 세운다. 

파닥, 날아오른다. 

함께 튀어 오르는 이슬 눈물방울,

별빛으로 산화한다.     



5     


드럼통 곁에 웅크린 검정고양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상하는 파랑새의 날개를 바라본다.

파랑새의 깃털 하나가 나풀대며 떨어진다. 

고양이가 별빛을 타고 뛰어올라 깃털을 낚아챈다.


까만 공간의 땅으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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