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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Aug 07. 2023

모자이크 환상

열한 번째 환상  // 거짓말 · 살인 (3)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열한 번째 환상

거짓말 · 살인 (3)


 


       

#2 나의 살인(계속)           



❚ 초롱초롱한 별밤 하늘, 꿈결 같은 파도소리     



철문이 닫혀버리면 낮인데도 지하실은 속절없이 어둠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오른손에 붕대를 친친 감아 맨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남자가 말없이 다가와 먼저 내 옆구리를 걷어찼습니다. 

남자는 내가 쓰러져 있는 사이에 동생을 일으켜 안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나타나 내 허리춤 벨트를 싸잡아 쥐고는 

나를 질질 끌고 철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남자가 처음 우리를 태우고 왔던 승용차 뒷좌석에 나를 밀어 넣었습니다. 

큰 수건을 깔아 놓은 그 좌석 위에 동생이 가로로 누워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의 머리를 살짝 들어 무릎 위에 얹히고 앉았습니다. 

운전석 옆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어디론가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뜬 자동차의 숲속으로 남자는 빠르게 차를 몰았습니다. 

형형색색의 불이 환이 밝혀진 건물을 수없이 뒤로 하고 차는 계속하여 나아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창밖을 보니 시커먼 어둠 속으로 큰 나무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휙휙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차가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덜컹거리며 어딘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좋겠어남자가 말하고는 차를 세웠습니다. 숲속 길옆 잡풀이 우거진 조그마한 공터였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차에서 내렸습니다. 남자가 차 문을 열고 먼저 내 멱살을 잡아 끌어내더니 다짜고짜 아랫배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나는 숨이 덜컥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배를 끌어안고 풀숲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습니다. 남자가 다시 차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동생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잡고 끌어내어 내 옆에 팽개치듯 내려놓았습니다.



     

이것들을 아예 죽여 파묻어버리고 가야 해.

남자가 차 뒤로 걸어가 트렁크의 문을 열고 곡괭이와 삽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야그런 천벌 받을 짓을 하겠다는 거야

여자가 달려와 내 앞을 막아서며 말했습니다. 

이것들이 신고라도 하면 어떡할 거야? 

남자가 호통을 치듯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외딴 숲속에서 이것들이 어떻게 길을 찾아

말도 글도 모르는 바보들이 신고는 무슨 신고

어차피 죽을 애들이야제발 그냥 버리고 가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하고, 남자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나는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달아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땅바닥에 얼어붙어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달아나도 남자가 금방 나를 붙잡을 것이었습니다. 

나와 동생의 목숨은 오직 남자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뭐 해빨리 가지 않고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잡아끌면서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습니다. 

아무래도 죽여 버려야 할 것 같은데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누구 미치는 꼴 보고 싶어그래죽이려면 나부터 먼저 죽여

여자가 다시 한번 가시 돋친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남자가 열려있는 트렁크에 곡괭이와 삽을 던져 넣고 운전석으로 갔습니다. 

다시 시동이 걸리고, 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나는 허리를 펴고 앉아 풀숲에 팽개쳐진 동생을 품속에 안았습니다. 

동생은 가냘픈 숨만 간신히 내쉬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안은 채로 꿇어앉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키 큰 나뭇가지 사이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죠.

내가 자란 바닷가 마을, 그 하늘에도 별이 빛나고 있겠죠.

휙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 속 비릿하고 짭짤한 바닷냄새. 

아! 바다! 바닷가에 이어진 어느 숲속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왔던 길 어둠 속에서 차의 불빛이 다시 비쳤습니다. 

그 차는 우리가 있는 장소로 다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 그 남자가 결국에는 우리를 죽이려고 다시 오고 있구나. 

나는 황급히 동생을 오른팔로 안고 왼손으로 엉금엉금 기어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가파른 숲속 내리막이었습니다. 가시에 찔리고 수풀에 긁히면서 기어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바위 아래에서 꿈결처럼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들이 그새 어디로 갔을까? 아까 죽여 버려야 했는데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바위 뒤에서 빠끔하게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았습니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숲속을 비추며 우리를 찾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차피 죽을 애들이야그러지 말고 그냥 가자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하는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손전등의 불빛이 꺼졌습니다. 

다시 차에 불이 켜지고 차는 왔던 길을 내려갔습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여름밤, 이슬이 내리고 있었죠.

수많은 모기떼가 달려들었죠.

나는 동생의 몸을 감싸듯 끌어안았습니다.

동생의 몸이 이슬에 젖지 않도록 

모기떼가 동생에게 달려들지 못하도록

나는 등과 뺨, 팔, 다리, 전신을 송두리째 모기에게 맡긴 채 

오직 동생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밤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희미한 여명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키 큰 해송과 잡목이 빽빽이 우거진 숲이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진한 송진 냄새와 바닷냄새가 함께 풍겼습니다. 

갈증이 났습니다. 

동생에게 물이라도 주어야 할 텐데. 

마침 우리가 몸을 숨겼던 커다란 바위틈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근처 잡목에서 넓은 이파리 하나를 따 깔때기처럼 접어 물을 받아 동생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 물조차 넘기지 못했습니다.      


나는 키 작은 소나무에서 솔잎을 따서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습니다. 

입안에서 우려낸 솔잎 진액을 동생의 입에 입을 맞추고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것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해 사람을 살렸다는 옛날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왼쪽 새끼손가락을 깨물었습니다. 

피가 방울방울 솟아났습니다. 

나는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동생의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입속에 고인 피는 입언저리를 타고 밖으로 흘러내릴 뿐이었습니다.      

     



바닷가로 내려가면 굴이라도 따 먹일 수 있을 텐데. 

나는 바위 아래에서 기어 나와 파도소리가 들리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 그러나 벼랑 끝 아래로는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동생과 함께 그 절벽을 타고 내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젯밤 어둠 속에서 도망치면서 몇 걸음만 더 나아갔더라면 속절없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동생을 업고 숲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젯밤 남자가 차를 세웠던 곳에 가면 길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길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생의 허리가 자꾸만 등 뒤로 꺾였습니다.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동생의 엉덩이를 잡고  

왼손으로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올랐습니다. 

잡목 가시에 얼굴과 팔이 긁혀 피가 났지만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드디어 어제 남자가 차를 세웠던 곳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해는 떠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희미한 여명 속에 좁다란 길이 보였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임도(林道)였습니다. 

그 길은 잡풀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나마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업고 자동차 바퀴 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습니다.

드디어 바위 절벽 끝이 나오고 망망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 나의 살인빛의 근원으로 간 동생    



 

바다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습니다. 

먼 수평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바다는 잔잔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했습니다. 

그렇게 바람이 없는 잔잔한 바다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숲도, 바위 절벽도, 풀도, 나무도, 돌도, 그날 그 바닷가의 모든 물상이 숨을 죽이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수평선에서 시작된 붉은빛이 잔잔한 바닷물결 위에 동심원을 그리며 점점 크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빛은 소리 없는 침묵의 바다에서 자라 

아직 어둠에 감싸인 새벽하늘을 

붉은 아침노을로 장엄하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향하여 걷는 동안 내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업고 있던 동생을 내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동생의 다리 사이에서 다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업혀 오는 동안 내 등에 쓸려 자극받은 동생의 아랫도리가 다시 터졌던 것입니다.


그때 동생의 아랫도리에서 흐르던 피는 

먼 수평선에서 솟아나는 

태양의 붉은빛보다 더 선명했습니다.

타오르는 붉은 아침노을보다 더 진했습니다.


나는 동생을 안고 다시 바다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가, 진한 소금기가 밴 비린내, 소라, 따개비, 연한 갈색 다시마, 하늘거리는 여린 미역 줄기, 그리고 굴……. 

나는 바닷가 편편한 바위 위에 동생의 몸을 뉘고 조용히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이미 입술이 검게 변한 동생의 얼굴은 

붉은 여명을 받아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고요한 바다가 내 울음소리조차 삼켜버렸던 것 같습니다. 

나는 눈물에 잠긴 눈을 들어 붉게 물들어 오는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먼바다 수평선 위

이글거리며 솟아나는 붉은 태양 속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며 날아오르는 

까만 형체의 새 떼!

갈매기

우리들의 유일한 동무 갈매기!


갈매기 떼가 먼동이 터는 붉은 여명의 후광 속에서 

힘찬 날갯짓으로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갈매기 떼의 날갯짓에 바닷물결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갈매기 떼는 수면을 가로질러 빠르게 날아와 

서로 입을 모아 합창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끼룩(함께 가)! 

끼룩(함께 가)! 

끼룩끼룩(우리와 함께 가)!


그때였습니다. 

죽은 듯 누워있던 동생이 반짝 눈을 떴습니다. 

아마 동생도 갈매기 떼의 외침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동생의 그 깊고 검은 눈이 내게 말했습니다.


갈래바다로 갈래

갈매기를 따라갈래.


갑자기 울컥하면서 뜨거운 감자 같은 

뭉클한 덩어리 하나가 가슴을 꽉 메웠습니다. 

폭포처럼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눈물에 흠뻑 젖은 눈으로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그래가자

갈매기를 따라가자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우리를 버린 엄마

이제는 기다리지 말자

엄마는 섬 그늘에 

굴을 따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동생을 안아 들었습니다. 

동생의 몸은 솜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나는 동생을 안은 채 천천히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반쯤 솟아난 태양이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빛 속에서 갈매기 떼가 평화롭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날갯짓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갈매기 떼를 따라 차츰차츰 더 깊은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팔에 안긴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고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감지 않은 동생의 눈망울에도 갈매기 떼가 날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동생에게 눈으로 말했습니다.


그래가자

갈매기를 따라가자

바다로 가자

저 바닷속 어딘가에 

저토록 찬란한 빛이 솟아나는 

빛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생명의 빛

그 빛의 자궁이 있을 것이다

그래그곳으로 가자

어둠이 없는 찬란한 빛의 근원 

그 생명의 자궁 속으로.


나는 온 바다를 물들이는 붉은빛의 근원을 향하여 한걸음 또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발, 또 한 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그리고 허리……. 

드디어 동생의 가벼운 몸이 빛의 근원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의 아랫도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맑고 잔잔한 바닷물에 붉은 잉크가 퍼지는 것처럼 소리 없이 번져나갔습니다.

꼬르륵, 동생의 코에서 솟아난 공기 방울이 잔잔한 수면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나는 계속 걸으면서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었습니다.


동생은 죽지 않았어

바다로 간 거야

갈매기를 따라간 거야

갈매기를 따라 저 빛 속으로 간 거야

찬란한 저 빛의 근원으로.

생명의 빛을 찾아간 거야.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여전히 그 대상과 함께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갈매기를 따라간 내 동생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때 동생은 갈매기 떼를 따라갔지만, 

나는 여전히 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나는 지금도 가끔 「섬집 아기」라는 이 동요를 부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우릴 위해 굴을 따러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항상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거짓말거짓말

꼼짝 말고 있어라

니들 애비 델꼬 오마.

아버지를 데려오겠다던 

어머니의 그 찬란한 거짓말

이것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한 

그 찬란한 거짓말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내 나이 열다섯 살

동생의 나이 열세 살이었던 그날 새벽

먼동이 터는 여름 바닷가에서 일어난

환상 같은 나의 살인입니다               



* 저자 후기


이 작품은 저자의 장편소설 <코리아타워>의 한 단락(나의 첫 번째 살인)을 독립한 시소설 형식으로 재창작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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