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재도 Jun 09. 2023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제26화 피터 팬, 존속살인죄로 기소되다

임재도 작가의 법률감성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곧 돌아오겠다던 강 검사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소년의 얘기가 막 끝났을 때, 마치 그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문이 열리며 강 검사가 들어왔다. 의외로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강 검사의 표정과 태도가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 이 지갑, 박 과장님 것이 맞습니까?


이미 소년으로부터 언질을 받은 뒤였다.


―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지갑이? 

― 이 녀석이 이 지갑을 훔쳤다고 하는데요. 잃어버린 것이 맞습니까?


이상하게도 강 검사는 추궁하지 않았다. 말투도 온화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했다.


― 예, 이애가 병원에서 사라지기 이틀 전쯤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 다른 곳에서 분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애가 훔쳤던 모양이군요.

― 이 녀석 말로는 박 과장님의 이 지갑을 훔쳐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고 하는데, 없어진 현금이 얼마인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강 검사는 추궁하지도 않고 오히려 소년이 한 진술을 확인하는 정도로 내게 묻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지갑에 든 돈을 헤아려 보는 시늉을 했다. 지갑은 그대로였다. 현금도 신용카드도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 글쎄요. 당시 현금이 얼마나 들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 오륙만 원 정도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얼버무렸다. 지갑이 그대로라는 말을 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는 소년의 말이 거짓말이 될 것이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강 검사가 다시 추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야 인마. 고개 들어. 얼마 꺼내 썼어?


강 검사가 그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소년의 이마에 꿀밤 한 대를 먹이며 말했다.


― 육만 원요.

― 무슨 용도로? 어디에서?

― 택시비와 뱃값으로 썼다고 했잖아요. 몇 번이나 더 말해야 해요?


소년이 왜 자꾸 귀찮게 묻느냐는 투로 큰소리로 검사에게 대들었다. 그것은 소년이 내게 보내는 또 다른 암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를 쳐?


강 검사가 다시 한번 소년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말했다. 소년은 자신이 경찰에 체포될 줄을 이미 예상했다. 그런데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를 데리고 병원에서 빠져나와 어떻게 섬까지 갔는지 추궁당하면 변명 거리가 있어야 했다. 내 지갑을 훔쳐 그 돈으로 병원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택시비를 내고, 선착장에서 섬에 가는 여객선의 뱃삯을 냈다고 해야 앞뒤가 맞는 셈법이었다.


― 이 녀석 말이 맞네요. 사실 혼자서 병원을 탈출하여 택시를 타고 갔다는 이 녀석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빼내는 데 분명 누군가 공범이 있고, 그 사람은 분명 박 과장님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박 과장님이 만약 이 녀석과 함께 환자를 빼돌렸다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지갑을 송두리째 주지는 않았겠지요. 신분증이랑 신용카드가 든 그대로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괜한 의심을 해서.


강 검사가 말했다. 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보고 가볍게 입술을 비틀며 빙긋 웃었다. 강 검사가 눈치 못 챌 극히 짧은 찰나였다. 소년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거 봐요, 제가 신분증이란 카드가 있는 그대로의 선생님 지갑이 필요할 거라고 했잖아요?


― 이 지갑 증거물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강 검사가 말했다. 나는 그제야 겨우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만약 소년에게 지갑을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 피터 팬, 어린 너의 생각이 어른인 나보다 훨씬 더 치밀했구나. 후크 선장, 이게 당신 계획이었소?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당신 계획 말이오? 나는 속으로 후크 선장에게 물었다.


―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 검사에게 물었다.


― 휴우! 그만 가셔도 좋습니다.


강 검사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소년의 어깨를 잠시 다독거려 주고는 일어섰다.


― 죄송해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소년이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이 찡하니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조사실을 나왔다. 조사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추궁하던 강 검사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렇게 싱겁게 일을 끝냈을까. 내가 청사 복도 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복도를 걸어 나오고 있을 때였다.


― 박 과장님, 잠깐만요.


나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언제 뒤따라 나왔는지 강 검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 아, 저 녀석 참, 영악한 건지, 아니면 꽉 막힌 건지……?


강 검사가 혼잣말인지, 내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다가왔다. 그곳 복도 오른쪽 창가에 작은 휴게실 겸 흡연실이 있었다. 커피 자판기 한 대와 작은 소파가 마주 보고 두 개 놓여 있고, 그 사이 탁자 위에 재떨이가 있었다. 그곳으로 먼저 들어간 강 검사가 손에 들고 나온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물며 말했다.


― 아, 저 녀석이 일 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만드네요.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강 검사가 내게도 담배를 권했다.


― 아닙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 그럼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강 검사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지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자판기 투입구에 넣었다. 자판기에서 먼저 나온 커피를 내게 권하고 다시 한 잔을 더 뽑은 강 검사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 여기 앉아 잠시 얘기라도 하고 가시죠. 

― 예.


나는 강 검사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강 검사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 박 과장님,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예, 그렇지요.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강 검사의 의도를 몰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강 검사가 내 눈빛을 의식하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 저 녀석 말입니다. 어머니도 없이 혼자 아버지를 간호하며 오죽했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영 불쌍한 겁니다. 그래서 좀 무리해서라도 가장 중한 존속살인만은 면하게 해 줄 방법이 없을까 하는데, 아, 녀석이 남의 속도 모르고 끝까지 박박 우깁니다. 하도 속이 타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강 검사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강 검사가 말했다.


― 박 과장님도 의사라서 잘 아시겠지만, 왜 안락사나 존엄사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 예, 정확한 법적 요건은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듣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강 검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 검사가 말했다.


― 녀석이 하도 불쌍해서 어쨌든 존속살인만은 면하게 해 주려고, 억지로라도 존엄사 요건에 맞춰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남의 속도 모르고 끝까지 박박 우깁니다. 존엄사가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무엇보다도 환자의 생존가능성이 없어야 하고, 또 환자가 자신의 명시적인 의사로 사망에 이르게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망에 이르게 해 달라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만한 객관적인 증거라도 있어야 합니다.


― 그런 전문적인 법률요건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 예, 그렇겠지요. 검사인 나도 이제까지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강 검사가 말하고는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재떨이에 꽁초를 눌러 껐다. 강 검사가 말했다.


― 그래서 내가 저 녀석에게 물어봤습니다. 혹시 병원에 있을 때, 아버지가 단 한 번이라도 의식을 차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다거나 뭐 그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었나 하고요. 박 과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녀석이 병원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올 때만 해도 전적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지도 않았고, 자가호흡을 하고 있어 생존가능성이 전연 없었다고 할 수도 없지만…….


강 검사가 말을 멈추고 답답한지 담배 한 개비를 새로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나는 그때 말하고 싶었다. 그 환자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생존가능성이 전연 없었다고. 그러나 나는 하지 못했다.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형사가 내 말을 가로막아 못했지만, 그때는 자유로운 상태였는데도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강 검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강 검사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 생존가능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뭐 그렇다더라도, 조금 전에 말한 존엄사의 법적 요건에 맞추기 위해서는 환자가 단 한 번이라도 깨어나, 차라리 죽여 달라거나 뭐 그런 취지의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 그런데 녀석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나 참, 녀석이 멋도 모르고 끝까지 아빠가 눈으로 말했다는 겁니다. 아니, 눈으로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다는 말입니까? 아버지가 깨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뭐, 아버지와 함께 해적놀이를 했다나. 아니, 의식도 없는 전신마비 아버지와 해적놀이를 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로 박박 우기니. 아니, 제 녀석을 봐주려고 하는데, 설사 거짓말이라도 아버지가 깨어나 그런 말을 했다고 하면 어디 덧납니까? 자식이 남의 속도 모르고……. 


강 검사가 새삼 화가 나는 듯 ‘녀석’이라는 그나마 온순한 말을 ‘자식’이라고 바꾸어 말하면서 담배를 거칠게 벅벅 빨아 연기를 내뿜었다. 강 검사가 다시 말했다.


― CCTV를 피해 산책길로 나와 큰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갔다고 하는데, 자식을 태워 준 택시도 수배되지 않고…….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강 검사가 계속 말했다.


― 자식이 이런 짓을 하려거든 좀 더 일찍 하든가. 불과 범행 일주일 전에 만 열네 살이 되었어요.  

― ……?


이건 무슨 소린가? 나는 강 검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일주일 전에만 그랬어도 형사미성년자*라 형벌은 받지 않는데, 자식이 재수도 더럽게 없지.


가슴이 덜컥했다. 강 검사가 계속 말했다.


― 어떠하든지 존속살인만은 면하게 해 보려고, 그날 밤 아버지를 배에 태울 때, 그전에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느냐고 넌지시 구슬려도 봤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또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아, 나 참, 이 자식이 정말 멋도 모르고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고 끝까지 박박 우깁니다. 그때 아빠의 가슴에 귀를 대보았는데, 그때까지 분명 심장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박 과장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가만있어도 죽게 될 아버지를 왜 배에 태웠을까요? 이미 숨을 거둔 아버지를 배에 태웠다면 다소 무리해서라도 단순 사체유기로 해볼까 했는데, 아, 그러니 내가 아무리 봐주고 싶어도 봐줄 방법이 없는 겁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도 도대체 방법이 없단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중한 존속 살해가 될 수밖에요. 며칠 후 존속살인죄에다 박 과장님의 지갑을 훔친 절도죄로 기소할 겁니다.


강 검사가 다소 언성을 높여 말하고는 여전히 화가 나고 속이 타는지 담배꽁초를 거칠게 재떨이에 꾹꾹 눌러 껐다. 그리고는 이미 차게 식어버린 종이컵의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강 검사가 다시 말했다.


― 사실 저 어린애보다는 환자를 내보낸 병원의 처사에 더 분개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뻔히 죽게 될 환자를 입원비가 좀 밀렸다고 강제로 내다 버리는 그런 병원을 용납하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물론 수사의 초점은 박 과장님과 원장에게 맞춰져 있었고요.


나는 다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 내가 아까 왜 자리를 비웠는지 아십니까?

― 청장님께서 찾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허허, 그것은 핑계지요. 아무도 없는 방에 피의자 두 사람만 달랑 남겨 둘 검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 ……? 


강 검사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사실 일부러 두 사람만 남겨 놓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TV 모니터로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만 남겨 놓으면 서로 입을 맞추든지, 아니면 그애가 박 과장님에게만은 실토할 거라고 짐작했지요. 그런데 그애는 박 과장님에게도 제 발로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지갑을 훔쳤다고 했고요. 이제까지 그애가 진술한 내용과 같았습니다.

― ……? 


숨이 막히는 듯했다. 강 검사가 다시 말했다.


― 사실 병원의 간호사나 원장, 원무과장 모두가 박 과장님이 환자를 내보내지 않았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서로 입을 맞춰 놓은 거라고 짐작했지요. 그런데 원무과장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를 내보내는 일로 원장과 다퉜다고 하더군요. 환자를 내보내려면 나를 먼저 내보내라고 대들었다면서요. 그런 원무과장의 진술과 박 과장님의 지갑, 오늘 모니터로 본 정황을 보고 박 과장님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사실 그때 나는 그렇게 원장에게 대들었지만, 원장이 정말 나를 내쫓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도 않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덜컥 실직 상태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이렇게 나를 구원해 주는 결과로 나타날 줄이야.


― 그런데 TV나 신문 보도에는 마을 아이들도 함께 있었다고 하던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 아, 그 아이들은 다행히 직접적인 범죄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았더군요. 그리고 너무 어린애들이라 처벌 대상도 아니고. 범죄라는 인식도 못 하는 아이들이 한 일을 어떻게 처벌하겠습니까?

― 예, 그렇군요.      

― 그런데, 박 과장님……?

― 예?

― 저 녀석이나 마을 아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해적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누가 시켜 입을 맞췄어도 그 어린애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박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애들이 정말 해적놀이를 했을까요?

― 해적놀이라고요? 글쎄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가슴이 찌르르했다. 혹시 강 검사가 눈치챌까 봐 모르는 척해야 하는 내 처지가 참 딱했다.


― 박 과장님은 혹시 스미 갑판장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 스미 갑판장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 

― 그애들이 말입니다. 스미 갑판장이 그 환자, 아니 후크 선장을 죽였다고 하더군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들과 하도 이상한 실랑이를 하느라 내 머리가 오히려 멍멍해집디다. 어쨌든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저는 그만 들어가서 저 영악한 놈과 좀 더 실랑이를 해봐야겠습니다. 


강 검사가 먼저 일어나 검사실로 들어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냥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강 검사가 우리 두 사람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소년이 알았을까? 소년이 정말 그것을 알았을까. 그래서 강 검사가 눈치 못 채게 일부러 엎드려 비는 척하면서 내게 메시지를 보냈단 말인가? 소년은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탄복할 일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전에 열네 살이 되었다니, 그래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니, 그것도 존속살인이라는 가장 중한 죄로……. 강 검사님, 그애들은 정말 해적놀이를 한 겁니다, 당신은 왜 믿지 못합니까, 소리치고 싶었다. 가슴이 꽉 미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 형사미성년자 ;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9조). 다만, 소년 범죄에 있어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아이는 범죄소년,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아이는 촉법소년, 10세 미만의 아이는 범법소년으로 구분한다(소년법 제4조). 촉법소년과 범법소년은 형사책임 무능력자로 형사처벌은 하지 못한다. 촉법소년은 소년사건으로 하여 보호처분을 할 수 있지만, 범법소년은 너무 어려서 아무런 법적 제재를 할 수 없다. 14세 이상의 범죄소년의 경우 형사책임 능력자이므로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이전 05화 피터 팬, 법정에 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