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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Jul 31. 2023

모자이크 환상

첫 번째 환상  불가살이(2)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첫 번째 환상

불가사리(2)

(不可殺伊, Starfish, Seastar)  






             

5     


화가는 서둘러 집에 쌓아둔 별 그림 화선지를 목선에 옮겨 싣기 시작했다. 

화선지를 목선에 싣고 바람이 불어오는 먼바다로 나가야 했다. 

별이 떨어져 잠겨 꿈을 꾸는 먼 별바다로 나가야 했다. 

그곳에서 그가 그린 화선지의 별들을 바람에 실어 

은하수가 흐르는 별나라로 날려 보내야 했다. 


유성우가 그치기 전에 화선지를 모두 목선에 옮겨 실어야 한다. 

언제 유성우가 그쳐 버릴지 몰랐다. 

늙고 쇠약해진 몸이지만, 화가는 불끈 힘이 솟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는 기대와 환희에 

화가는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아픈 줄도 모르고, 

힘든 줄도 잊은 채 바쁘게 화선지를 날랐다.      


집안에 쌓여있던 화가의 별 그림 화선지가 모두 목선에 실렸다. 

가득 실린 화선지의 무게 때문에 목선의 뱃전까지 물결이 찰랑거렸다. 

화가는 유성우가 쏟아지는 별바다로 노를 저어 나갔다.      


그러나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화가는 계속 노를 저어 나갔다. 

쏟아지는 유성우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별빛도 흐려졌다.      


그러나 아직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이제 하늘은 캄캄하게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유성우도 그쳐 버리고, 

시커먼 먹구름이 별빛조차 삼켜버리고 있었다. 

화가는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그러나 여전히 바람은 불지 않았다.


대신 우두둑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화선지가 비에 젖으면 바람이 불어와도 소용없을 터, 

비에 젖은 화선지가 바람을 타고 날 수는 없을 것이다. 


빗방울이 점차 굵어졌다.

화선지가 비에 젖지 않도록 몸으로라도 비를 막아야 했다.

화가는 다급한 마음에 노를 버리고 

화선지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화가의 등에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은 불지 않았다.


화가는 속절없이 소나기를 맞으며 화선지 위에 엎드려 있었다.

화가의 야윈 몸이 가득 쌓인 화선지를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화선지는 화가의 몸이 가리지 못한 위에서부터 젖어들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줄기차게 내렸다.

목선의 바닥에도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화가의 몸에 가려진 화선지도 아래서부터 젖어들기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어가는 화선지의 무게 때문에 점차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가는 꼼짝 않고 화선지 위에 엎드려 있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여명이 밝아왔다. 


그러나 동트는 새벽바다 위에, 

화가의 목선은 보이지 않았다.

흔적조차 없었다. 

새벽빛을 받아 별이 스러진 바다에,     


드디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화선지는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6     


일 년이 지났다.

어느 날 화가의 목선이 사라진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의 그물에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한 어종(魚種) 하나가 잡혔다. 몸체가 나선형으로 생긴 대부분의 물고기처럼 뼈와 육질을 감싼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갑각도, 패각도 아닌 다섯 개의 뾰쪽한 각이 방사체로 퍼진 고형(固形)의 이상한 어종이었다. 


어부는 평생 처음 잡아보는 이 이상한 어종에서 행여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있나 하고 그 몸체를 잘라 속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나 그 몸체는 게나 가재 등 갑각류 어류처럼 딱딱한 갑옷 속에 속살을 감추고 있지도 않았고, 조개 등 패각류 어류처럼 석회질의 껍질로 제 살을 보호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은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만약 살아 움직이는 생물만 아니라면,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별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화가 난 어부는 먹지도 못하는 이 이상한 어종이 다시는 잡히지 않도록 칼로 잘게 토막 내어 바다에 뿌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분명 잘게 토막까지 내어 죽여 바다에 뿌렸던 이 이상한 놈이 점점 더 많이 그물에 잡혔다. 그때마다 화가 난 어부는 그것을 더 잘게 토막 내어 바다에 뿌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 이상한 놈은 더욱더 많이 잡혔다. 마치 토막 내어 뿌린 이 이상한 놈의 각 토막들이 모두 어미 성체(成體)로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사실 그랬다. 


어장에서 이 이상한 놈이 더 많이 잡히면 잡힐수록 다른 물고기는 더 잡히지 않았다. 다른 물고기들이 이 이상한 놈에게 모두 잡아먹혀 버렸거나, 아니면 이놈을 피하여 모두 먼바다로 도망가버린 것 같았다. 


섬마을 연해어장은 이 이상한 놈 때문에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부들은 먼바다까지 나가지 않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먼바다에서도 이 이상한 놈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다른 고기의 어획량은 줄어들었다. 이 이상한 놈은 이제 연해어장뿐만 아니라 먼바다 어장까지 파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부들은 이 이상한 놈을 ‘토막을 내어 죽여도 다시 살아나 어장을 파괴하는 도저히 죽일 수 없는 괴물 같은 놈’이라는 뜻으로 <불가사리(不可殺伊)>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놈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아는 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이상한 놈이 별을 닮았다고 하여 <Starfish(별을 닮은 물고기)>라고 불렀다. 또 스스로 예술가인 척 거드름 피우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바다에서 자라는 별이라고 하면서 <Seastar(바다의 별)>라고 불렀다.           



7     


이 이상한 놈에게 이런 이름이 붙여진 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이 이상한 놈은 세계 어느 바다에서도 흔히 잡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섬사람이거나, 다른 어느 누구도, 

바로 그날, 그 화가가 홀연히 그 섬에서 사라져 버린 이유를, 

궁금해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섬은 사람들을 품고 있었지만, 

섬을 품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평생토록 별을 그렸던,

그 화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어장을 망쳐놓은 이 이상한 놈들이, 

바로 그날

바다에 가라앉은 그 화가의 목선에 실려 있던,  

수많은 화선지에 그려져 있던, 

아기별, 형제별, 엄마별, 아빠별과,

이 세상 모든 생명체와 물상의 이름을 가진 은하수의 별들이,

무한한 생명의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다만, 이놈 때문에 어장이 황폐해져 생계가 막막해져 버린, 

맨 처음, 이 이상한 놈을 잡았던 그 어부가,

가끔, 한밤중에 별이 쏟아지는 바닷가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고 한다. 


― 휴, 어쩌면 그놈은 저 하늘에서 깜빡 졸다 떨어진 아기별이었을지도 몰라.          



8     


불가사리(不可殺伊)


그것은, 

평생 희망의 별을 그렸던 

어느 화가의 슬픈 영혼

바다의 별로 피어난 그 화가의 붉은 열정


비록 육체는 소멸하였지만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不可殺) 

어느 화가의 아름다운 영혼


별을 닮은

바다의 푸른 생명  

    

어느 날 밤, 

엄마별의 얘기를 듣다 깜빡 졸다 떨어진

아기별, 


불가사리(不可殺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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