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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r 07.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첫 번째 환상  불가살이(1)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첫 번째 환상 

불가사리(1)

(不可殺伊, Starfish, Seastar)           





1

 

섬 하나가 있었다. 

이 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섬은 사람들은 품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섬을 품지 못했다. 

    

사람들은 섬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이 내쉬는 맑은 숨결을 느끼지 못했고, 

금빛 모래 해변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바람의 속삭임도 들을 줄 몰랐다. 

동쪽 바다심연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의 환한 웃음에도 기뻐할 줄 몰랐고,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스러져가는 석양의 눈물에도 슬퍼할 줄 몰랐다. 

잠든 모든 물상의 영혼에 축복처럼 내리는 밤하늘 별빛의 의미도 알지 못했고, 

그 별빛이 은총으로 내려앉은 바다의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도 몰랐다. 


사람들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거나 

단지 연명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을 뿐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조금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싸우고 뺏고 속이는 것은 물론 서로 죽이는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화가도 이 섬에 살고 있었다          



2     


화가는 슬펐다. 

섬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들에게 섬의 숨결과 영혼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섬에서 어우러지는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섬이 사람들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섬을 품게 하고 싶었다.      


화가는 먼저 섬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숲을 그렸다. 

숲에서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들뿐만 아니라 새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와,

그 바람에 실려 번지는 숲속 맑은 향기도 그려 넣었다. 

그것은 단순한 숲의 풍경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숲의 생명을 그려낸 것이었다.     


화가는 그림을 가지고 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중앙에 연단 하나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 여러분,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이 섬의 숲을 없애고 공장을 세워야 합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사람이 연단에서 내려오자 화가가 연단에 올랐다. 


― 여러분, 이 그림을 보세요. 이 숲을 보세요.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어보세요. 숲의 향기를 맡아보세요. 숲의 숨결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화가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저자는 누구야? 빨리 끌어내려. 


연단 제일 앞줄에 선 남자가 화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건장한 청년 몇몇이 연단으로 올라와 화가를 끌어내렸다. 

그중 한 청년이 화가의 그림을 뺏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화가는 안타까웠다.     




이번에는 화가는 섬의 해안선을 그렸다. 


천년의 시간을 씻어 금빛 모래해변을 만들어 낸 물결의 인내를 선으로 옮기고,

그 모래 속 생명체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바람의 자장가를 색으로 녹였다. 


만년의 시간을 깎아 해안 바위절벽을 조각한 파도의 고통을 물감에 녹이고,

그 절벽 꼭대기에 앉아 쉬고 있는 갈매기의 숨소리를 바람에 띄웠다.      


화가는 그림을 가지고 섬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으로 가서 말했다. 


― 여러분, 이 그림을 보세요. 우리는 물결의 인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람의 자장가를 들어 보세요. 파도의 고통을 위로해 주세요.


― 장사 방해 말고 저리 비켜.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시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성을 내며 화가에게 소리쳤다.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도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 화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화가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화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섬의 풍경뿐만 아니라 섬이 품고 있는 

소리와 색깔과 향기와 맛과 감촉을 그렸다.


아침, 태양의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고,

저녁, 석양의 눈물에 정화된,

섬의 생명을 그렸다.      


그때마다 화가는 그림을 가지고 이곳저곳 섬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가의 그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돈이든 물건이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물질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이제 화가를 아예 정신이상자로 취급했다.      


화가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여 눈물을 흘렸다          



     


섬은 사람들을 품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섬을 품지 못했다.

 

이 사람들의 영혼에 섬의 생명을 불어넣어 줄 방법은 없을까? 


화가는 고민에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화가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얼굴은 수척해지고,

눈은 동굴처럼 깊어졌다.

     

어느 날 밤, 화가는 바닷가로 나갔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바다에 잠기고 있었다. 

화가의 가슴에도 별이 쏟아졌다. 

갑자기, 별이 화가의 가슴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우러르며 외쳤다. 


― 그래! 저 별은 희망이고, 생명이고, 영혼이다. 저 별을 그리자. 저 별빛을 사람들의 가슴에 비춰주자. 그러면 사람들의 가슴에서 희망과 생명이 자라날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에서 영혼이 깨어날 것이다.     


다음 날, 화가는 시장에 나와 있는 화선지란 화선지는 모두 샀다. 

물론 화선지는 별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늘의 수많은 별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화선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닷가 마을에서 튼튼한 목선 한 척을 샀다. 

그 목선은 화가가 생각했던 바로 그날이 오면 사용할 것이었다.      


화가는 먼저 시장에서 사 온 화선지를 집 안에 들여놓았다. 

너무 많아 방과 거실은 물론 창고에도 겹겹이 쌓였다. 

목선은 창문에서 바라보면 빤히 보이는 집 앞 바닷가에 매어 두었다. 

화가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창문에서 바라보면 하늘과 땅, 바다가 모두 보였다. 

어느 한 곳도 막힘이 없었다.      


별을 그릴 준비를 마친 화가는 창가에 앉아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붉은 노을이 부드럽게 스러지고 

서쪽 하늘에서 맨 먼저 샛별 하나가 수줍게 웃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화가는 그 샛별의 웃음부터 화선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맨 먼저 화선지에 옮겨 앉은 샛별이 까르르 웃었다.

샛별의 웃음소리가 자명종 소리처럼 서쪽 하늘가에 울려 퍼졌다.

샛별 주위에서 잠들어 있던 수많은 아기별들이 다투어 깨어나기 시작했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아기별들이 재잘대고, 

웃고, 노래하고, 장난치고, 뜀박질하고, 까불대고 있었다. 


이제 서쪽 하늘은 수많은 아기별들이 깡충거리며 즐겁게 뛰노는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화가는 그런 아기별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화선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화가는 꼬박 밤을 새워 별을 그렸다. 

어느새 아기별들은 점차 밝아오는 여명을 받으며 하나둘 잠들기 시작했다. 

화선지에 더 이상 별을 그려 넣을 여백도 없었다. 

그때서야 화가도 붓을 멈추고 피어나는 아침햇살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저녁이 찾아오고, 별들이 깨어났다. 

어제 미처 그리지 못한 아기별들이 몰려와 자기들도 그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화가는 새 화선지를 꺼내어 다시 아기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려야 할 아기별은 너무도 많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기별이 내려앉은 화선지가 한 장, 또 한 장, 또 한 장씩 늘어가고,

화가는 여전히 아기별에게 매달려 있었다.  

   

이때 시간은 화선지에 묻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드디어 화가가 눈에 보이는 아기별을 모두 그렸을 때, 

이번에는 아기별을 지키고 있는 형제별이 깨어났다. 

형제별이 자기들은 왜 그려주지 않느냐고 떼를 섰다. 

화가는 다시 형제별을 그리기 시작했다. 

형제별도 아기별만큼이나 많았다. 

형제별 다음에는 엄마별이, 그다음에는 또 아빠별이, 

엄마별이나 아빠별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서쪽하늘 샛별 하나에서 시작된 별무리는 씨앗, 열매, 뿌리, 나비, 잠자리, 파랑새, 참새, 개미, 개똥벌레, 사자, 코뿔소, 물개, 하마, 원숭이, 전갈, 매미, 사과, 무화과, 복숭아, 소나무, 구름, 풀, 들꽃, 무지개, 초원, 산, 바위, 등등 이 세상 모든 생명체와 물상들의 이름을 하나씩 달고 은하수로 번져 나갔다. 


화가는 이제 은하수의 별들을 하나씩 하나씩 화선지로 나르고 있었다. 

이때 은하수는 흐르고 있었지만,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그리는 화가도, 그려지는 별도,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시곗바늘은 그때까지 화가가 그린 무수한 별의 수만큼 빠르게 돌아갔다. 

어느새 화가의 얼굴에는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었다. 

그러나 화가는 여전히 은하수의 별들을 화선지에 옮기고 있었다. 


오늘 저녁, 별이 깨어나, 

내일 아침, 별이 잠들 때까지,

화가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4     


화가의 집에는 이제까지 화가가 화선지에 옮겨놓은 별들이 층층이 쌓였다. 

집과 창고까지 겹겹이 쌓여있던 그 많은 화선지에는 모두 별들이 둥지를 틀었고, 

이제 여분의 화선지는 한 장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화가가 화선지에 옮긴 은하수의 별만큼, 

은하수의 별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화가가 아무리 많은 별을 화선지에 옮겨 놓아도 

별은 여전히 강물처럼 흐르고, 

강물은 별바다 은하수로 흘러들었다.       


화가는 늙어갔다. 

허리는 구부러지고 다리와 팔도 점차 쇠약해졌다. 

얼굴에는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은 움퍽 꺼져 들어가고, 

이빨도 숭숭 빠져 그 사이로,

별빛을 스쳐가는 바람이 넘나들었다. 

바짝 야윈 팔다리는 나무젓가락 같았다. 

이제, 초롱초롱한 아기 별빛조차 가끔씩, 

화가의 눈에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시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는 것 같았지만, 

화가도 별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화가를 노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화가는 이제 별을 그리지 않고,

오직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도, 별이 떠오르자 화가는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로 나갔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여전히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수한 별들이 꼬리에서 푸른빛을 내뿜으며, 

여름날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성우(流星雨)!      


화가의 가슴에도 푸른 꼬리를 문 찬란한 별똥비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화가의 심장이 크게 울렸다. 

그 순간, 화가는 깨달았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을. 

바로 그날이 왔다는 것을.      


이 유성우와 더불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이제까지 그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린, 별이 그려진 화선지들을 저 먼 별나라까지 올려보낼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별나라까지 날아 올라간 화선지의 별들은 섬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 푸른 유성우로 내려, 그 가슴, 가슴에서, 아기별이 되고, 형제별이 되고, 엄마별이 되고, 아빠별이 될 것이다. 새싹을 틔우는 씨앗별이 되고, 열매를 맺는 꽃별이 되고, 꽃잎을 애무하는 나비별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물상들이, 

그 가슴에 내린 별과 함께 

태초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화가가 지금까지 기다려 온 바로 그날이 도래한 것이다.

 

화가는 바로 이날이 순간을 기다려 바닷가에 매둔 목선을 끌어당겼다. 

노인이 된 화가처럼, 목선도 퇴색되고 삭았지만, 물이 새지는 않았다.

뱃전에 걸어둔 노도 아직은 튼튼했다.

드디어 섬이 사람들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섬을 품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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