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재도 Feb 14.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세 번째 환상 //  말미잘(1)  초록호수별의 전설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세 번째 환상 

말미잘(Sea Anemone)(1)

초록호수별의 전설

  


  

       


1     



Anemos!

사랑은 머물지 않지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조각처럼 준수한 청년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되지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지

아네모스(Anemos),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지

연인 아도니스의 가슴 피로 피워낸

속절없는 애모(哀慕)의 바람꽃

봄에 잠깐 피었다가 바람결처럼 져버리는  

화려하지만, 가냘픈

덧없는 사랑의 눈물꽃

아네모네(Anemone)    

 

*     

 

국어사전에 의하면, 말미잘은 해변말미잘과의 강장(腔腸) 동물로써 대개 암수딴몸으로 바위틈이나 모래땅에 묻혀 사는데, 몸은 원통 모양이며, 체벽(體壁)은 암흑색, 흡반은 선녹색, 구반(口盤)은 녹갈색이라고 나와 있다. 이처럼 말미잘은 바위틈이나 모래땅에 묻혀 사는 부착생물로 움직일 수 있는 다리가 없다. 또 항문이 따로 없어 먹고 난 찌꺼기는 입으로 다시 토해낸다. 

 

말미잘이란 우리말 어원은 말(馬)의 항문이란 뜻이라고 한다. 즉 항문을 이루고 있는 창자 끝부분을 지칭하는 미주알에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기 곤란하거나 다소 또는 아주 크다는 의미의 접두사 말(馬)이 붙여져 말미잘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우리말 어원은 촉수를 오므리고 납작 웅크려 있는 말미잘의 모습을 포착하여 붙인 이름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다소 고약한 이런 어원을 가진 말미잘을 영미권에서는 Sea Anemone, 즉 바다의 아네모네라는 제법 품위 있고 그럴싸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말미잘은 화려하게 촉수를 펼치고 있다가 외부로부터 어떤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재빠르게 오므리어 감춘다. 이런 생존 보호 본능이 봄에 잠깐 피었다가 바람결(Anemos)처럼 순식간에 져버리는 화려하지만 연약한 아네모네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름은 바닷속에서 화려한 촉수를 활짝 펼치고 있는 말미잘의 모습을 다소 과장하여 붙인 이름이라 하겠다.


말미잘은 촉수를 활짝 펼쳐 바람결 갈대꽃처럼 물결에 하늘거리고 있다가 작은 물고기나 게, 새우 등 먹잇감이 가까이 다가오면 가시가 있는 속이 빈 섬유세포인 자포(刺胞)로 독을 쏘아 마비시켜 잡아먹는다. 작은 바다생물 대부분은 말미잘의 자포에서 뿜어 나오는 이 독에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 마비되어 기절하고 만다. 이때 말미잘이 그 촉수를 뻗어 정신을 잃은 먹잇감을 잡아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포가 쏘는 독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물고기가 있다. 바로 Anemone fish라고 불리는 흰동가리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붉은 바탕에 흰 줄무늬로 그려진 영리하고 모험심 강한 주인공 물고기 니모가 바로 그것이다. 흰동가리는 처음부터 이 독에 면역되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죽은 말미잘 세포를 자기 몸에 칠해 보호막을 형성하여 촉수에서 나오는 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이 다수 생물학자의 견해다. 이 영리한 주인공은 오히려 하늘거리는 말미잘의 촉수를 제집처럼 삼아 그 속에 숨어 살면서 다른 큰 바다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흰동가리는 제 몸을 미끼로 삼아 근처 작은 물고기나 새우 등 말미잘의 먹잇감이 될 만한 바다생물을 살살 꼬드겨 화려하게 펼쳐진 말미잘의 촉수 근처까지 유인해 온다. 그리하여 그 생물이 막상 자신을 덮치려는 순간에 그는 재빠르게 촉수 속에 쏙 숨어버리고, 거꾸로 말미잘이 그 생물에게 자포로 독을 쏘아 잡게 한다. 흰동가리는 말미잘이 이렇게 잡은 먹이를 먹고 입으로 다시 뱉은 찌꺼기를 제 먹이로 먹고 살아간다. 이처럼 말미잘(Sea Anemone) 흰동가리(Anemone fish)는 기발한 공생관계로 서로를 보호해 주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아네모네꽃을 피워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청년 연인 아도니스 사이의 바람결 같은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로 불리는 말미잘과 아네모네 물고기(Anemone fish)라 불리는 흰동가리 사이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전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2



우리가 바라보는 은하수 너머에 또 다른 은하계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수많은 은하계의 수많은 별 중에서 태양계의 태양에 해당하는 엄마별 항성(恒星)으로 백색거성(白色巨星) 하나가 있고, 이 하얀색 큰 별은 일곱 개의 자식별 행성(行星)을 거느리고 있다. 이 행성들은 각자 항성에 가까운 순서대로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개 색깔 하나씩을 띠고 있다. 

  

이 백색거성은 우주의 모든 종류의 빛이 블랙홀처럼 응축되어 거대한 하얀색 별로 자라난 것이다. 따라서 비록 표면은 백색으로 빛나는 큰 별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 응축하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빛으로 스펙트럼을 투사하여 무지개색 일곱 개 위성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항성인 태양의 이름을 따서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백색거성과 이 항성에 딸린 별들을 총칭하여 백색거성계라고 부르고, 특히 무지개처럼 보이는 일곱 개 행성의 특징을 따서 무지개행성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백색거성계에 속한 일곱 개 행성 중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은 네 번째 행성 초록호수별과 다섯 번째 행성 파랑바다별이다. 태양계의 태양에너지와는 다른 엄마별 항성 백색거성에서 투사되는 백색광에너지가 생명의 원천이다. 초록호수별에는 지구처럼 진화된 생명체가 이룩한 고도의 지적 문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파랑바다별에는 아직 문명다운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행성 전체 표면적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에 지적 수준이 아주 낮은 수중 생명체만이 존재한다. 


초록호수별과 파랑바다별 모두 다시 두 개의 아기별 위성(衛星), 즉 달을 거느리고 있다. 각 행성에 딸린 두 개의 달 중 하나는 초록빛이고, 다른 하나는 파란빛이다. 두 행성이 각자 서로 더 먼 곳에 있는 다른 행성의 달 하나에 제 고유한 초록빛과 파란빛을 교차하여 투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색거성계를 구성하는 일곱 개 무지개 행성에 딸린 위성은 모두 18개이고, 이들 위성의 둘레를 다시 총 67개의 더 작은 아기별 위성이 돈다. 


생명체가 존재하는 초록호수별과 파랑바다별은 그 고유한 행성궤도를 따라 운행한다. 그리고 두 행성의 일 년 공전주기(公轉週期) 중에서 특별히 두 행성의 자오선(子午線)이 겹치는 어느 순간이 있고, 지금까지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천년에 한번 두 행성이 거느린 위성을 포함하여 여섯 개 별의 자오선이 모두 겹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이때 놀라운 우주의 신비가 펼쳐진다. 이 순간, 생명체가 존재하는 초록호수별과 파랑바다별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이 해체되는 것이다. 여섯 개 별의 자오선이 모두 겹치는 아주 특별한 그 찰나의 순간에 두 별에 사는 생명체의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놀라운 우주의 신비라고 했지만,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도 짧은 찰나이기 때문에 아직 관측하지 못했을 뿐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속한 태양계를 포함한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다른 행성 간에도 이런 현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미잘(Sea Anemone)흰동가리(Anemone fish) 사이의 사랑 전설은 이러한 우주의 신비를 품은 두 개 행성 중 먼저 초록호수별에서 시작된다.



3


     

초록호수별 기원전 이억 년에 대분화(大噴火)가 있었습니다. 

이 대분화로 초록호수별 북반구에 큰 대륙 하나가 생겨났고, 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아버지바위산이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이 바위산 정상 분화구 초록호수에서 발원하여 거대한 뱀처럼 구불구불 대륙의 산맥과 평원을 휘감고 흘러 어머니바다에 이르는 큰 강 하나가 생겼으니, 바로 위대한 뱀강입니다. 초록색 강물이 흐르는 이 강은 곧 초록호수별의 젖줄입니다. 이 위대한 강의 줄기는 하구에서 다시 동쪽을 흐르는 동 뱀강과 서쪽을 흐르는 서 뱀강으로 갈라지고, 이 두 강 사이에 유구한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반복된 홍수와 범람으로 쌓인 모래 삼각주(三角洲) 델타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초록호수별에는 위대한 뱀강을 국경선으로 하여 동쪽의 붉은 하마제국과 서쪽의 하얀 악어왕국이 있습니다. 원래 동쪽의 붉은 하마제국은 초록호수별의 유일한 제국이었고, 이천 년 동안 평화 시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록호수별 기원전 어느 해 붉은 하마제국에 두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두 왕자가 성장하여 원래 첫째 황후가 낳은 형이 왕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시기심 많고 성격 또한 난폭한 둘째 황후가 낳은 동생이 반란을 일으켜 불법으로 왕좌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반란으로 뺏은 권좌를 지키기 위하여 무자비한 독재자가 되었고, 이에 신민들은 폭정을 피해 위대한 뱀강을 건너 미지의 서쪽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왕위계승자였던 형을 왕으로 옹립하여 하얀 악어왕국을 세웠습니다. 


초록호수별의 역사는 이때를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게 됩니다. 그 후 두 나라는 천년에 걸친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거치면서 4 조항의 불변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1. 붉은 하마제국과 하얀 악어왕국의 국경선은 위대한 뱀강으로 정한다.

1. 위대한 뱀강 하구 동 뱀강과 서 뱀강 사이 텔타아일랜드는 중립지대로 한다.

1. 두 나라 사이의 공, 사적인 교역 일체를 금한다. 두 나라 신민과 국민 사이의 어떠한 왕래와 접촉도 금한다. 다만, 중립지대 델타아일랜드는 예외로 한다. 

1. 만약 이를 어기는 자는 극형에 처하거나 초록호수별에서 영구추방 한다. 

      


4   

  

저는 초록호수별 붉은 하마제국 기원후 천년에 태어난 아프로디테 공주입니다. 

제가 태어난 천년 봄날 아침, 붉은 하마제국에는 오랜 겨울 가뭄 끝에 파란 실비가 내렸습니다. 아침부터 내린 파란 실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자, 차가운 겨울 땅속에 웅크려 있던 수많은 씨앗에서 파란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아버지바위산 정상 초록호수가 투명하게 녹아 위대한 뱀강으로 흘러들고, 강물은 생명을 가득 품고 어머니바다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의 모든 신민이 새천년 벽두에 내린 파란 실비를 성스러운 길조라고 하면서 저의 탄생을 축복했습니다. 

 

저는 모든 신민의 사랑과 선망 속에 자랐습니다. 저는 건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제 얼굴은 어머니별 백색거성처럼 밝게 빛나고, 목소리는 백색광에너지로 빚은 투명구슬처럼 맑고 상쾌했습니다. 목과 허리는 스치는 유성 꼬리처럼 길고 가늘었고, 머리카락은 백색거성계를 이룬 무지개 행성 빛처럼 황홀한 일곱 색깔 머릿결로 출렁거렸습니다. 제 눈빛은 부드럽고 손길은 다정했습니다. 제국의 모든 청년이 다투어 저를 애모했지요. 

 

아! 그러나 제 가슴은 왜 항상 갈증으로 차오를까요. 

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 

    

나는 초록호수별 하얀 악어왕국 기원후 천년에 태어난 아도니스 왕자입니다. 

내가 태어나던 천년 겨울날 아침, 하얀 악어왕국에는 초록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초록 눈이 따뜻한 솜이불처럼 대지를 포근하게 감싸 안자 겨울 들판에서 떨고 있던 새 생명을 잉태한 초록 씨앗이 겨울잠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바위산 초록호수가 맑은 초록 얼음으로 결빙되고, 위대한 뱀강도 뭇 생명의 겨울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얼음 아래에서 어머니바다로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왕국의 모든 국민이 초록 함박눈을 성스러운 길조라고 하면서 나의 탄생을 축복했습니다. 

 

나는 모든 국민의 존경과 신망 속에 자랐습니다. 나는 튼튼하고, 씩씩했습니다. 제 얼굴은 언제나 어머니별 백색거성처럼 눈부시게 밝았고, 목소리는 백색광에너지를 품고 그윽하고 깊게 울렸습니다. 가슴은 위대한 뱀강이 만들어 놓은 푸르고 넓은 평야처럼 풍성하고, 팔과 다리는 아버지바위산처럼 단단했습니다. 내 눈빛은 온유하고 손길은 자애로웠습니다. 왕국의 모든 처녀가 다투어 나를 흠모했지요. 

  

아! 그러나 내 가슴은 왜 항상 불길처럼 타오를까요.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5     



초록호수별에는 오랜 전설 하나가 전해오고 있지요. 

초록호수별과 파랑바다별의 일 년 공전주기 중 두 별의 자오선이 서로 겹치는 특별한 순간이 있지요.

이때 아버지바위산 초록호수에 파란빛과 초록빛 두 개의 달이 잠기지요.

달이 거울처럼 서로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비춰주지요. 

달에 비친 두 연인이 서로 만나면 완전한 사랑을 할 수가 있지요. 

이 사랑은, 아네모스(Anemos), 바람결처럼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완벽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두 개의 달을 보았다는 연인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지요.

그달은 달빛위성연못에서 몸을 정화하고, 무지개행성숲에서 마음을 정화하고, 백색항성얼음동굴에서 영혼을 정화해야 보이지요. 그러나 이 세 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하여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정화한 연인이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던 것이지요.  

    

*     


붉은 하마제국의 수많은 청년이 아프로디테 공주를 애모하지요.

하얀 악어왕국의 수많은 처녀가 아도니스 왕자를 흠모하지요.

그러나 공주와 왕자는 초록호수별의 전설로 내려오는 완전한 사랑을 꿈꿉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벽한 사랑을 갈구합니다. 

이 사랑을 함께 할 그들의 연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초록호수별과 파랑바다별의 자오선이 겹치는 우주의 신비

초록호수별의 전설이 이루어지는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이제 그날이 꼭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프로디테 공주는 동쪽 루트를 통하여,

아도니스 왕자는 서쪽 루트를 통하여,

아버지바위산 정상 초록호수를 향해 길을 떠납니다.

시공을 초월한 완전한 사랑을 찾아갑니다.

 

동쪽 초록빛 달이 공주가 가는 길을 비추고,

서쪽 파란빛 달이 왕자가 가는 길을 비춥니다. 

교차하는 두 개의 달빛은 밝고 투명하고 정갈합니다.

달빛이 호화롭고 안락한 궁전 생활의 기억을 깨끗하게 지웁니다.


*   

  

초록호수별의 대분화와 함께 수천 개가 넘는 작은 분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바위산 기슭에 작은 분화로 만들어진 두 개의 아기오름이 있습니다. 

동쪽 아기오름에서 초록빛 달이 떠오릅니다.

서쪽 아기오름에서 파란빛 달이 떠오릅니다. 

아기오름 정상에 있는 작은 분화구에 달빛위성연못이 있습니다.

 

공주가 초록 달빛 속에서 옷을 벗습니다.

공주는 완전한 나신이 되었습니다.

공주의 나신이 달빛을 받아 초록 은빛으로 빛납니다.

공주는 동쪽 초록위성연못으로 들어갑니다.

  

왕자가 파란 달빛 속에서 옷을 벗습니다. 

왕자는 완전한 나신이 되었습니다. 

왕자의 나신이 달빛을 받아 파란 은빛으로 빛납니다. 

왕자는 서쪽 파랑위성연못으로 들어갑니다.

 

연못의 물은 뼈까지 얼어붙을 듯 차갑고 정갈합니다.

공주와 왕자는 각자 이곳에서 몸을 정화해야 합니다.

월광참(月光斬), 온몸이 달빛 칼날에 얇게 베어져

그 틈새로 달빛의 정수(精髓)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이때 몸은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33일간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형극의 시간이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공주의 몸이 스며드는 달빛에 초록 달빛의 정수로 물듭니다. 

왕자의 몸이 스며드는 달빛에 파란 달빛의 정수로 물듭니다. 

달빛위성연못에서의 육체정화의식입니다.


이제 정화된 두 개의 몸은 달빛의 정수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두 개의 육체는 두 개 달의 영기(靈氣)로 충만해졌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아기별 위성과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

  

아버지바위산 동, 서쪽 중턱 나무들의 요람

두 개의 무지개행성숲이 있습니다.

숲 전체가 하나의 무지개로 보이는 신비한 빛의 숲입니다. 

백색거성의 백색광이 일곱 개 행성을 프리즘처럼 통과하여

일곱 가지 다른 수종의 나무군락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공주와 왕자는 각자 이 숲에서 마음을 정화해야 합니다. 

백색거성계를 이루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행성의 빛으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일곱 감정을 정화해야 합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과 사랑과 미움과 욕심

이 일곱 가지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요?

뇌세포가 이 감정을 인지하고 마음이 이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지개행성숲에서 공주와 왕자는 매일 숲을 비추는 

일곱 색깔 빛으로 오염된 뇌세포를 태워야 합니다.


빨강 행성 빛으로 기쁨의 뇌세포를 태우고

주황 행성 빛으로 노여움의 뇌세포를 태우고

노랑 행성 빛으로 슬픔의 뇌세포를 태우고

초록 행성 빛으로 즐거움의 뇌세포를 태우고

파란 행성 빛으로 사랑의 뇌세포를 태우고

남색 행성 빛으로 미움의 뇌세포를 태우고

보라 행성 빛으로 욕심의 뇌세포를 태워야 합니다. 


이때 감정은 격렬한 저항을 합니다. 

뇌에 각인된 감정 하나하나에 집착하려 합니다. 

하나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고통이 뒤따릅니다. 

머리가 깨어지고 부서질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이 찾아옵니다.

또 한 번의 형극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공주와 왕자는 33일 동안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무지개행성숲에서의 마음정화의식입니다.  

    

이제 정화된 두 개의 마음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두 개의 마음은 일곱 개 행성의 혼기(魂氣)로 충만해졌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자식별 행성과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 


아버지바위산 동, 서쪽 정상에 오르려면 

그 아래 수직으로 깎아지른 꿈의 빙벽을 거쳐야만 합니다.

이 꿈의 빙벽 중앙에 백색항성얼음동굴이 있습니다.

백색거성의 순정광(純正光)이 이 병벽에 투사되고 

빙벽 동굴에는 어머니별 항성의 생명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이 얼음동굴에서 영혼을 정화해야 합니다.


얼음동굴 속 수정관에 갇혀있는 자신의 참자아를 찾아내어 

응축된 생명에너지로 수정관을 녹여 자아를 해방해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인 뇌간(腦幹)을 태워야 하는 고난도의 수행입니다.

뇌간을 태우는 것도 견디기 힘든 극한의 고통이지만,

이때 이 고통보다 더 질긴 관능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관능이 달콤한 말로 유혹합니다.

포기하라고, 그 순간 고통은 사라지고 열락(悅樂)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관능의 유혹이 모든 뇌세포를 집어삼키고 영혼까지 흔들어댑니다.

이 유혹이야말로 죽음보다 더한 갈등의 시간입니다.

이 유혹을 뿌리치고 백색거성의 자력(磁力)으로 세워진 

신성한 빛의 신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신전에 백색거성의 신성(神性)을 품은 투시 거울이 있습니다.

이 거울에 비친 참자아를 영혼의 황금꽃으로 피워야 합니다. 

백색항성얼음동굴에서의 마지막 33일 동안의 영혼정화의식입니다. 

    

이제 정화된 두 개의 가슴에서 영혼의 황금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영혼은 한 개 항성의 백기(魄氣)로 충만해졌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어머니별 항성 백색거성과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전 03화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