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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r 02.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네 번째 환상  따개비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네 번째 환상

따개비     


     




1     


시인의 언어가 비가 되어 내렸다. 

바람 속에 깃든 눈물이 새들의 눈동자에 묻혀 왔다. 

낮은 풀들이 일어나 걷기 시작하고, 

나무 잎사귀들이 목향木香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풀들의 이마 위에서 나비가 젖은 날개로 날았다. 

나비의 날갯짓에 반사된 투명한 빛은 푸르게 대지를 감싸 안았다. 

대지의 입김이 바다의 혈관으로 흘렀다. 

해일로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사자와 얼룩말이 교미를 하며 뒹굴고, 

상어가 하늘에 떠서 하얀 배를 드러내고 웃었다.     


모든 생물들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했다.     



2     


태초부터 그 바닷가에 바위 하나가 있었다. 

시인의 언어비는 그 바위에도 내렸다. 

그러나 바위는 말이 없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위의 혈관에는 무심無心의 검은 이끼가 자라 혈전血栓을 이루고, 

혈관과 심장 사이에는 드라이아이스보다 더 차갑고 단단한 

자폐自閉의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시인의 문장文章은 바위의 혈전을 녹이지 못했다     


시인은 슬펐다. 

시인은 길을 떠났다.


바위의 동맥에 띄울 문자文字의 배를 찾아서,

바위의 혈전을 녹일 문장의 용해제를 찾아서,

바위의 자폐벽을 깨뜨릴 언어의 종소리를 찾아서



3     


시인은 벌거벗은 채 바다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발가락 조약돌이 되고, 

큰 물고기들이 발바닥 징검다리가 되었다. 

수평선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고래가 내뿜는 하얀 입김에 무지개사다리가 걸려 있었다.

시인은 무지개사다리를 타고 고래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난파한 문자의 배 한 척이 있었다     


시인은 발가락뼈를 잘라 못을 만들어 배를 수리했다.


시인은,

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4     


사막, 낙타도 오아시스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쏘아 올린 전갈의 독화살을 맞은 

한낮의 별들이 밤의 유성으로 떨어지고, 

전갈의 푸른 독에 젖은 푸른 달빛이 

물기 하나 없는 사막에 푸른 안개를 뿌리고 있었다. 

푸른 달빛 안개에 잠긴 푸른 모래 언덕

그 언덕 아래 동굴에서 푸른 밤의 전갈들이 기어 나왔다. 

전갈 세 마리가 시인의 코와 귀와 입속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시인의 코와 귀와 혀가 전갈의 푸른 독에 녹아내리고, 

시인의 혈관에 푸른 독이 흘렀다. 

이제 그 푸른 독은 시인의 심장에 고여 

바위의 혈전을 녹일 용해제가 될 것이었다. 


시인은 푸른 우수憂愁가 흐르는 

달빛 강물에 누워 눈을 감았다. 

별이 죽어간 여명의 사막에 

투명한 금속 화살이 무차별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인은 눈을 떴다. 

시인은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무릎으로 팔꿈치로 

기고 또 기어갔다. 


시인은, 

드디어 사막을 건넜다.           



5     


열대의 숲, 코끼리와 하마가 물구나무로 서서 

악어의 턱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악어의 잇새마다 조각조각 깨어진 

언어의 종鐘의 파편들이 끼어있고, 

악어가 부채숨을 쉴 때마다 

그 잇새에서 양철 꽹과리소리가 울렸다. 

시인은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 

그 잇새에 박힌 종의 파편들을 빼내어 맞추고, 

손가락뼈와 갈비뼈를 녹여 만든 아교로 

틈새를 이어 붙여 종을 복원했다. 


시인은 그 종을 악어의 앞니에 매달았다. 

악어가 노래하듯 긴 하품을 했다. 

저녁노을처럼 맥놀이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인은, 

그 소리를 영혼의 수첩에 

음표로 새겨 넣었다.          



6     


시인은 돌아와 다시 바위 앞에 섰다. 

바위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인은 손가락이 없는 손바닥과 

발가락이 없는 발바닥으로 

바위를 끌어안았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의 파도바퀴가 

시인의 등짝 위로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고, 

시간과 바람이 잠시 회전을 멈춘 날에는 

새들이 날아와 똥을 누며 시인의 동공을 쪼았다. 


시인은 동공이 없는 눈으로 바위의 체취를 느끼고, 

문드러진 귀로 바위의 얼굴을 쓰다듬고, 

뭉개져버린 코로 바위의 숨결을 더듬었다. 

녹아버린 혀로 바위의 심장박동을 들었다. 

파도와 바람과 새의 부리에 깎이고 닳고 쪼인 

시인의 몸이 점점 작아졌다. 

납작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시인은 바위를 놓지 않았다

숨조차 쉬지 않고 바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시간의 푸른 광선이 처음 왔던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빛의 마지막 향기가 

갈빗대 없는 시인의 허파 속으로 스며들 때, 


시인은,

따개비가 되었다.          



7     


오늘도,

따개비는 여전히 

바위를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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