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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r 27.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다섯 번째 환상  //  해파리와 두 개의 달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다섯 번째 환상  

해파리와 두 개의 달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 하나가 사는 작은 하얀 별에 새 두 마리가 날아와 짝짓기 하고, 그 암컷이 네 개의 알을 낳고, 그중 세 개의 알에서 암컷이 부화하여 자라 각자 다섯 개의 알을 낳고, 그중 네 개의 알에서 암컷이 부화하여 자라 각자 여섯 개의 알을 낳고, 낳고 부화하고, 또 낳고 부화하여, 각자 열 개의 알을 낳았을 때, 

    

새들의 날개에 덮인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가 뿌리로 빛을 토하면서 죽었다.  

    

하얀 별은 빛을 품지 못했다. 

화산지대의 수많은 분화구가 동시에 분출하는 것처럼 

별은 뿌리가 토해내는 빛의 섬광에 깨어져  

어두운 우주공간으로 조각조각 흩어졌다.   

   

앉을 곳을 잃은 새들은 새로운 별을 찾아 

까만 진공의 하늘을 날았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새들이 지친 날개를 접고 

우주의 미아가 되려는 찰나  

멀리 파란 별 하나가 보였다. 

     

새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날았다. 

별이 빠르게 다가왔다. 

새들의 눈에 파란빛이 스쳤다. 

새들은 별의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친 날개로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새들은 모두 바다에 떨어졌다. 

새들이 떨어진 바다에 물방울은 튀지 않았다. 

     

무수한 해파리들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     


나는 간유리처럼 뿌연 해파리 렌즈 망원경으로 그 파란 별을 바라본다.

이때 내 판단은 흐리고 의식은 불분명하다.      


*     


파란 별에는 키 작은 풀들 사이에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들이 살고 있고, 

키 큰 나무들 사이에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들이 동굴에서 살고 있다. 

키 큰 나무의 우듬지 위에는 두 개의 발과 두 개의 날개를 가진 새들의 둥지가 있다. 

이 새들의 날개는 포근한 깃털로 덮여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다리와 깃털이 모두 뽑혀 버린 두 개의 퇴화한 날개를 가진 신생고등동물(新生高等動物)이 직립으로 걷고 있다. 이들은 이마 중앙에 단 하나의 눈만을 가지고 있다. 퇴화한 날개의 끝은 다섯 개의 가지로 갈라져 손가락으로 진화하였다.      


신생동물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키 큰 나무의 우듬지보다 더 높게 솟은 

차갑고 단단한 수정 궁궐에 살고 있다. 

수정 궁궐의 지붕은 첨탑처럼 날카롭고 

성벽은 별의 투명한 껍질을 벗겨 쌓은 것이다. 

그러나 궁궐의 모든 유리창은 말린 해파리처럼 탁하다.

어두운 밤을 지나 수정 궁궐 해파리 유리창에서 해가 뜬다.      


신생동물들이 별의 투명한 퇴적층 피부를 뚫고 혈관에 꽂은 대롱에서 별의 검은 체액이 솟아오른다. 궁궐 밖 검은 도로에는 신생동물들이 네 개의 둥근 기형(奇形)의 다리를 가진 괴물을 타고 다닌다. 이 괴물은 별의 검은 체액을 마시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린다.     


신생동물들은 모두 손잡이가 달린 작은 대롱을 우산처럼 들고 다닌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괴물의 등에는 이보다 더 큰 깔때기가 실려 있다.

작은 대롱에서 총성이 울리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큰 깔때기에서 포성이 울리며 핏빛 노을이 강물을 타고 흐른다.     


강물은 신생동물들의 정관을 타고 흘러 정낭 속 바다에 고인다. 

바다에서 태초의 아메바처럼 정충이 태어난다. 

정충들은 정낭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서로 부딪혀 싸운다.      


푸른 멍으로 짙은 화장을 하고 태어난 

신생동물 태아의 어깨에 날개가 돋아난다. 

태아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태아들이 도미노처럼 핏빛 노을 속에 쓰러진다. 


노을은 수정 궁궐 해파리 유리창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궁궐 안 파티장에서 나체로 춤을 추던 신생동물들이 

독한 술에 핏빛 노을을 타서 마시고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수정 궁궐에 차가운 싸락눈이 내리고 

파란 별이 마지막 오줌 방울을 흘리고 바스러진다. 

바스러진 별똥별 조각에 길고 무거운 새들이 내려앉는다.      


수정 궁궐에서 살아남은 신생동물들이 

새들의 가슴과 배 속으로 줄달음친다. 

새들이 파란 마그마를 뿜으며 날아오른다. 

이륙하는 새들의 항문에서 

파란 별의 마지막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진공의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멀리 또 다른 파란 별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새들의 망막 위에 내려앉는다. 

새들의 동공에 파란빛이 부딪힌다. 

새들이 날개로 빛을 털다가 별의 바다에 추락한다. 

바다에 물방울은 튀지 않는다.      


무수한 해파리들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     


부유하는 해파리 바다에 뜨거운 햇빛이 쏟아진다. 

무수한 해파리들이 햇빛에 점액질로 녹아내리고

바다에는 반죽처럼 엉겨 붙은 거대한 해파리 거울 하나가 떠 있다.      


*     


나는 간유리처럼 뿌연 해파리 렌즈 망원경으로 그 거울을 바라본다.     


*     


거울 속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하나는 크고 밝고 희다. 

북쪽에서 떠서 남쪽으로 지는 상현달이다. 

이 하얀 달에는 등이 하얀 거북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또 하나는 작고 어둡고 검다. 

남쪽에서 떠서 북쪽으로 지는 하현달이다. 

이 검은 달에는 검정 도마뱀 한 마리가 살고 있다.      


*     


거울 속 보이지 않는 

북극성의 자오선에서 

두 달이 만나 서로 겹친다. 

북극성의 별 그림자가 달을 가린다.      


검은 달에 하얀 비가 내린다. 

하얀 달에 검은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검정 도마뱀이 

하얀 거북의 등껍질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도마뱀이 거북의 자궁에 소낙비처럼 

정액을 뿌리고 다시 기어 나온다.      


비가 그친다. 

북극성의 별 그림자가 걷힌다.

희고 검은 두 개의 달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쳐 지나간다.      


*     


거울 속에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거울 바깥에서 거울을 바라보는 

직선의 눈빛 두 개만 있을 뿐이다.

희거나 또 검거나

거북이거나 또 도마뱀이거나

별빛으로도 달빛으로도 서로 겹칠 수 없는  

두 개의 시선을 서로 녹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태양은 

거울 뒤에 숨어 나타나지 않는다.     


*     


나는 물구나무로 서서 해파리 거울을 거꾸로 바라본다.      


*     


바스러진 파란 별이 다시 뭉쳐 바다에서 떠오른다.

하얀 거북의 등에 푸른 말미잘이 올라탄다.

검정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자르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파란 별의 땅과 바다에 투명한 비가 내린다.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키 작은 풀과 

키 큰 나무 하나가 비를 맞고 있다.      


해파리 거울이 비에 젖어 녹아내리고

희고 검은 두 개의 달도 사라진다.

내 해파리 렌즈 망원경도 녹아내린다.     


*     


나는 환상 속 무의식의 잠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이때 내 판단은 뚜렷하고 의식은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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