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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Apr 21. 2023

모자이크 환상

여섯 번째 환상 // 산티아고  ·  언어의 바다(1)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여섯 번째 환상 

산티아고 · 언어의 바다(1)


          


 


#1. 노인의 바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찾아가고 싶은 사람은 

이 사람을 보라.


그의 이름은 티아고(Santiago)*

멕시코 만류(灣流)에 조각배를 띄우고 

홀로 낚시질을 하며 살아가는 늙은 어부이다.


무려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85일째에 드디어 낚시에 걸린 대어(大魚)와 사흘 밤낮 홀로 사투를 벌여 

결국 그 대어를 잡는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용기와 투혼.

그러나 그 대어의 살코기는 상어 떼에게 모두 뜯겨버리고 

대어의 앙상한 뼈다귀만 가지고 돌아오는 허망함.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사자의 꿈을 꾸는 순수하고 낙천적인 사람이다.     

    



나는 언어의 바다에 종이배를 띄우고 

홀로 글낚시를 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작가이다. 




나는 20여 년 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꽤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크게 주목받은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은 요즘 인터넷 세대의 취향에 맞춰 나름 베스트셀러를 꿈꾸며 쓴 회심의 역작이었다. 소위 메타버스(metaverse)라고 불리는 가상현실과 현실세계를 오가는 SF 소설로 오랫동안 근속하던 직장까지 사직하고 꼬박 2년 동안 매달려 쓴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냉혹했다. 

독자들의 시선도 전혀 끌지 못했다. 

이제까지 내가 추구해 온 문학세계와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오직 글을 써서 그나마 밥벌이라도 해야 하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자마자, 

소설의 나라에서 바로 추방당해 버린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처럼, 

나는 이제 아무 능력도 없는 식충이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다시 시작해 볼 엄두조차 못 내고  

끝없는 자학과 패배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그레고르 잠자처럼 벌레가 되어 비참한 운명을 맞기 전에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언어의 바다를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섬광처럼 산티아고 노인이 떠올랐다. 

노인이 지금의 내 처지라면 어떻게 할까? 

어두운 절망의 동굴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었다. 

나는 노인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나는 서가의 구석자리에 꽂혀있는 아주 오래된 문고판 소설 한 권을 빼들었다. 

그 소설 속의 길을 따라 내 신작소설 속의 메타버스로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과 차원을 초월하여 노인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소설 속의 길을 따라 노인이 사는 멕시코 만류의 그 바닷가로 갔다. 


      




노인의 조각배는 자갈돌이 섞인 바닷가 모래둑에 올려져 있었다. 새벽달도 저버려 어스름한 별빛 속에 저만치 바닷가 기슭에 노인이 잡은 대어의 긴 등뼈가 쓰레기처럼 바닷물에 반쯤 잠겨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어깨에 돛대를 멘 노인과 손에 등불을 든 소년이 나타났다. 나는 그 소년이 노인을 깊이 존경하고 따르는 마놀린이라고 직감했다. 


― 네가 바로 마놀린이구나. 

― 작가 선생, 저 큰 놈을 잡고 나서 며칠 동안 태풍이 불었지요. 오늘 처음으로 고기 낚시를 나가려던 참인데 선생도 함께 갑시다. 


내가 먼저 소년에게 인사하자, 산티아고 노인이 돛대를 멘 채로 턱을 들어 대어의 등뼈를 가리키며 오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친숙하게 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두 사람은 나를 알고, 내가 올 줄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노인은 배로 다가가 돛대를 꽂아 세우고는 소년과 함께 배를 밀어 바닷물에 띄웠다. 


― 자, 갑시다. 


노인이 먼저 배에 올라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그래요. 선생님, 함께 다녀오세요. 


소년도 등을 떠밀 듯 말했다. 나는 무슨 마법에 홀린 것처럼 노인의 손에 이끌려 배에 올랐다. 


― 할아버지, 다음부턴 제가 같이 갈게요. 오늘은 제 행운을 가져가세요. 


소년이 물가에 서서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노인은 물속에 노를 첨벙 담그면서 몸을 앞으로 구부려 아직 어둠에 잠겨있는 항구 밖으로 배를 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노가 물살을 헤치는 철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바다는 고요했다. 노인은 숙련된 솜씨로 노를 저어 이른 아침의 신선한 바다냄새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 먼바다로 나왔는데도 바다는 잔잔했다. 


― 날이 새기 전에 미끼를 드리워 놓아야지. 


노인은 노를 거둬들이고 뱃머리 쪽 판자 아래에서 다랑어 새끼와 정어리 묶음 미끼를 꺼냈다. 노인은 지난번 대어를 잡을 때처럼 그 미끼들을 네 개의 낚싯바늘에 꿰어 서로 다른 수심에 층을 두어 드리웠다. 


바다에 드리운 어두운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수평선에서 피어오른 서광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고,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처럼 검붉은 태양이 장엄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아침노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 해는 생명의 빛을 바다에 내리고, 바다는 그 빛을 잉태하여 낳은 생명을 품에 안고 키우지. 그래서 바다는 어머니인 거야. 


노인이 왼손으로 돛대를 잡고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뛰노는 아이들처럼 날치 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면 위로 뛰어올라 쉿쉿쉿,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가 떠오른 지 너더댓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낚싯줄에는 어떤 기미조차 없었다. 이제 노인은 더 이상 노를 젓지 않고 흐르는 조류에 그냥 배를 맡겨두고 있었다. 아침노을이 사라진 바다 수면은 푸른 주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푸르고, 바다의 반사경처럼 파랗게 물든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때 북쪽 바다로부터 작은 새 두 마리가 배를 향해 날아와 뱃머리에 감아놓은 정박용 밧줄 위에 나란히 앉았다. 작은 휘파람새 한 쌍이었다. 


― 그래, 너희들도 내게 인사를 하러 왔구나. 오늘은 둘 다 지쳐 보이지는 않구나. 


노인은 지난번 대어를 잡던 날 아주 지친 모습으로 날아와 뱃머리 낚싯줄에 앉아 쉬던 그 새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육지 쪽 바다에서 발동선 한 척이 빠르게 다가오고, 배의 모터소리에 놀란 새는 날아가 버렸다. 가까이 다가온 발동선은 노인의 조각배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보였고, 배꼬리 아래 모터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물보라에 노인의 조각배는 여지없이 일렁일렁 흔들렸다. 


― 불쌍한 늙은이군. 오늘도 상어 떼 먹이 주러 나왔나 보군. 


높은 뱃머리에 선 구레나룻 남자가 노인을 내려다보며 조롱 섞인 어조로 말하자 와하하, 함께 있는 두 남자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발동선은 일부러 노인의 조각배를 두 번이나 빙빙 돌며 프로펠러 물보라를 일으키고는 먼바다 쪽으로 멀어져 갔다. 


― 저놈들은 어머니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부르지. 저놈들은 고귀한 <라 마르(la mar)>***인 어머니 바다를 갈보로 취급하는 놈들이야. 저놈들에게 어머니 바다는 오직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지. 촘촘한 그물로 새끼까지 싹쓸이를 해버리는 어머니 바다의 약탈자들이야. 


발동선의 모터프로펠러가 일으킨 물보라가 가라앉을 때까지 혼자 큰소리로 투덜대면서도, 노인은 바다를 말할 때는 그 앞에 꼭 ‘어머니’라는 말을 접두어처럼 붙여 말했다. 나는 발동선 어부들의 횡포와 조롱에 화가 나면서도 바다를 대하는 노인의 깊은 경외심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저자 역주> 


이 글 <산티아고 · 언어의 바다(1)(2)(3)>에서 굵은 표시 부분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문장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일부 변용한 문장이다. 이 작품은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 11>(1978년 8월 31일 20판 발행)에 수록된 헤밍웨이의 소설『노인과 바다』를 텍스트로 삼았고, 1958년 개봉된 존 스터지스 감독,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영화 『노인과 바다』의 영상이미지를 참고하였다.   


*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 노인의 이름.


**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이름.


*** <라마르(la mar)>에 대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문장을 그대로 소개한다. “그는 항상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할 때 쓰는 스페인 말인 것이다. 때때로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다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일도 있으나, 그럴 때에도 바다를 여성으로 불렀다.” 여성으로 부르는 <라 마르>에 대비되는 말이 남성으로 부르는 <엘 마르(el ma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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