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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r 13.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두 번째 환상 // 성게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두 번째 환상 

성게 


        



  

구속이다나를바라보는누군가의시선하나라도있다면

그시선하나마저도철저히배격하는처절한자유의고독          



1     


완전하고 완벽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구속이었다. 

그가 속한 나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도, 

스스로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일터와 가정도, 

심지어 그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과 사랑조차 구속이었다. 

사나이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면서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2     


그 사나이가 섬 하나를 발견했다. 

그 섬에는 아무도 없어 남을 의식하거나 다툴 이유도 없었고, 

온갖 곡물과 과일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일하거나 

심지어 생존을 위해 일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섬에는 간섭하고 구속하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 지상에서 낙원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낙원이었다. 

사나이는 그 섬에 가서 살기로 작정했다. 

사나이는 가족 몰래 전 재산을 정리하여 배 한 척을 샀다. 

그리고 혼자 그 섬으로 갔다.      


섬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타고 온 배를 불태워버렸다. 

낙원인 그곳에서 왔던 곳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었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3     


일주일이 지났다. 

사나이는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숲과 해변의 모래톱을 스치는 상큼한 바람이 

닫혀 있던 허파 속으로 감미롭게 스며들고, 

해안 바위의 귓불에 속삭이는 파도의 속삭임이 

짓눌려 있던 심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밤이면 무수한 별빛이 축복처럼 쏟아져 

굳어버린 어깨 근육을 하얀 별빛으로 녹여주었다. 

사나이는 온몸을 적시는 자유와 해방감에 

가슴이 벅차올라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사나이는 이제 꿈꾸는 갈매기가 되어 

낙원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런 낙원을 발견한 것은 그에게만 베풀어준

창조주의 특별한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나이는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했다. 

가족조차 버리고 왔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4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자유로웠지만, 

사나이는 문득 가슴 한쪽이 허전했다. 

그러나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타고 온 배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허전하여 바람과 얘기를 했다. 

바람과의 얘기도 이내 시들해졌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의미 없이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소리와 얘기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허전함을 달래 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향해 손짓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갈매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나이의 가슴속 구멍은 더욱 크게 자랐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사나이는 

섬에 있는 모든 사물과 대상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해변의 조약돌, 바닷가에 우뚝 선 바위, 울창한 나무와 숲, 싱그러운 풀, 푸르게 빛나는 달빛, 팔 벌려 흔들기만 하면 우수수 쏟아지는 무수한 별, 등등,

   

그러나 아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5   

  

일 년이 지났다. 

이제 사나이의 가슴에는 

동굴 같은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어느 날 저녁, 

사나이는 해변의 물결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모래사장의 반쯤을 걸어왔을 때, 

사나이는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발자국이 줄을 이어 뒤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뒷모습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반가웠다. 

그는 따라오고 있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면서 남은 모래사장의 반을 걸었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해변에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 바위 위에 올라 먼 시선으로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내딛는 발자국과 

뒷걸음질을 친 발자국이 

모래사장의 중간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때 노을에 물든 나무 그림자 두 개가 그곳에서 겹쳤다. 

그 형상은 마주 보고 달려간 두 사람이  

두 팔을 안고 포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파도가 밀려와 발자국을 지워 버렸다. 

노을이 비켜나며 그림자도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노을이 질 무렵, 

사나이는 다시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반은 앞으로, 반은 뒷걸음질로, 

사나이가 새긴 발자국을 물결이 지우고, 

노을이 물들고, 

나무 그림자 두 개가 포옹하고,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스러지고,   

   

그러나 사나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흔적 없는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6  

   

그곳에 낙원이 있었다.      

그 낙원에서 한 사나이가 

노을 속에서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바람도, 그 바람에 칭얼대는 파도소리도, 그 파도소리를 달래듯이 얼싸안는 바위도, 그 바위 뒤의 숲도, 그 숲속 나무도, 풀도, 꽃도, 그 숲에서 알을 낳고 지저귀는 새도, 하늘도, 그 하늘에서 피고 지는 노을도, 그 노을커튼 뒤에 수줍게 숨어 있는 별도, 섬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점차 변해갔다. 

얼굴에는 성긴 파래 같은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얗게 변했다. 

이빨도 듬성듬성 빠졌다. 

그러나 사나이는 여전히 모래사장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어가고 있었다.  

    

흔적 없는 사나이의 발자국처럼 

시간도 아무 흔적이 흘러갔다. 

이제 노인이 된 사나이가 지팡이를 짚고 

힘든 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유난히도 붉게 물든 노을이 바람에 실려 

북쪽 하늘가로 스며들고 있었다.      

두 개의 긴 나무 그림자가 모래사장에 드리웠다. 

사나이는 긴 노을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모래사장에 스러졌다. 

파도가 일렁이며 다가와 몸을 흔들었지만, 

사나이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숲에서 깨어난 새들과 해변 바위에서 이른 새벽을 맞은 갈매기들이 날아와 서로 싸우며 사나이의 동공을 부리로 파내고 몸을 쪼고 찢었다. 바위와 돌과 모래 틈새에서 게들이 무리를 지어 기어 나와 사나이의 뼈에 붙은 살을 날카로운 집게로 오려내었다. 넘나드는 물결이 사나이의 뼈에 묻은 피를 씻어 내렸다.    

  

시간의 푸른 물결이 쉼 없이 모래사장을 넘나들고, 사나이의 전신 해골이 태양의 흑점이 토해 낸 투명한 햇빛을 받아 하얗게 드러났다. 파도가 밀려와 사나이의 작은 뼈를 실어 갔다. 바람이 큰 뼈를 모래사장에 묻었다. 

     

이제 모래사장 위에는 사나이의 머리 해골 하나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동공이 사라진 동굴 같은 사나이의 해골 눈구멍으로 검은 이슬을 머금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해골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배어 나왔다.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해골에서 새싹처럼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나이가 모래사장에 새겨간 흔적 없는 발자국처럼 울음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울음이 바람에 실려 낙원의 하늘에 퍼지고, 비가 내리고, 그때마다 해골에서는 점점 더 많은 머리카락이 돋아나 자라기 시작했다.   

       

8     


시간의 물결은 계속 이어지고, 울음소리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해골에서 자란 머리카락은 모두 빳빳하게 서서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갈매기가 멋모르고 해골을 채어보려다가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 날아갔다. 갈매기의 갈퀴 발에 차인 가시가 발 없는 막대다리가 되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시 돋은 해골이 발바닥 없는 가시발로 모래사장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골은 사나이가 그랬던 것처럼,

모래사장에 흔적 없는 가시발자국을 남기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해골은 수면 아래 바닷길을 

막대다리 가시발로 걷고 또 걸었다. 


자유를 찾아 섬으로 들어간 것처럼

자유를 찾아 섬을 벗어나기 위해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흐르는 시간의 물결선을 거슬러 헤치며

걷고, 걷고 또 걸어,   

 

가시 돋은 그 해골은 

드디어 섬을 벗어났다.  


        

9   

  

훗날 사람들은 그 낙원의 섬에서 건너온 가시가 돋은 해골을 <섬게> 또는 <성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이름은 자유를 찾아 그 섬에 들어간 사나이가 노인이 되어 지팡이를 짚고 모래사장의 반은 앞으로 반은 또 뒤로 걷는 모습이 게걸음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물론 이 말이 진실인가의 여부는 생물학적으로나 어원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어느 시인의 가설(假說)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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