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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Oct 20. 2023

나는 시를 본다

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Story Poem

빨간 리본

               



                                                          

1  

   

두 줄로 땋은 그 소녀의 뒷머리 끝에는 

항상 빨간 리본이 묶여 있었다.


그 소녀네가 사는 길모퉁이 외딴 돌담집 

그곳 담벼락에 세워진 대나무 장대 가지 끝에는 

그 빨간 리본처럼 항상 붉은 헝겊이 묶여 있었다.     


그 소녀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2     


전교생이 참가하는 포스터 그리기 미술대회

선생님이 빨간 분필로 포스트에 넣을 표어를 칠판에 썼다.      


미신 타파! 무당을 없애자      


시인이신 교감 선생님이 직접 지은 표어라고 했다.


그 순간 무당은 우리가 반드시 섬멸해야 할

반공 포스터의 간첩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각자 상력을 동원하여 무당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뾰족한 바늘 털옷을 입은 징그러운 송충이처럼 

또 어떤 아이는 오색치마저고리에 검정 깃털 모자 쓴 저승사자처럼 

또 어떤 아이는 검은 망토를 걸친 송곳니 튀어나온 흡혈귀처럼 그렸다.

작두날에 무당의 목을 끼운 공포만화 같은 그림도 있었다.


나는 동화 속 마귀할멈처럼 무당의 얼굴을 그리고

엉덩이에 꼬리 아홉 개가 달린 여우처럼 몸을 그렸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낄낄거리며 포스터를 그렸다. 

         


3     


그 소녀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포스터를 그리지 않았다.


“넌 왜 그리지 않아!” 


선생님은 그 소녀의 손바닥을 대나무 회초리로 때렸다.

그 소녀는 말없이 어깨만 들썩거렸다.

우리는 그 소녀의 눈물은 보지 못했다.

 

방과 후, 그 소녀가 울면서 길모퉁이 집으로 뛰어갈 때 

뒷머리 끝 빨간 리본이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렸다.

담벼락 대나무 장대 끝 붉은 헝겊도 덩달아 바람에 펄럭거렸다.



4     


다음 날 아침, 전교 조례에서 우수포스터 시상식이 있었다.

입상작은 무당을 없애는 부적처럼 학교 게시판에 붙었다.      


그날 오후, 그 소녀의 눈물 같은 비가 내렸다. 

입상작 포스터가 붙은 게시판 앞에서   

나비 한 마리가 젖은 날개로 날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소녀는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한 달쯤 후, 그 소녀네는 마을을 떠났다.      


그해 겨울, 그 소녀네 폐가 담벼락에 세워진 

대나무 장대 끝 붉은 헝겊이 홀로 펄럭거리며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배웅하고 있었다.           



5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고추잠자리의 날개 같은 반투명 유년의 기억

그 속에 그 소녀의 얼굴은 없다. 

이름도 없다.

다만,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리던 

그 소녀의 빨간 리본만 살아있다.     


지금도 그 나비의 날개는 

눈물 같은 비에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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