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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Mar 30. 2022

book_섬에 있는 서점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지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J선배에게


선배! (선배라고 불러도 되죠? 10년도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대리님이라 부를 수는 없으니...)

선배의 페북에서 본 '섬에 있는 서점'을 방금 다 읽었어요. 제가 책방에서 일하게 된 시점에 신기하게 선배의 페북에 이 책 리뷰가 올라왔어요. 그래서 '책방 주인(?)'을 앞두고 업무지침서를 숙지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지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 P119


저는 선배를 통해 이 책이 나를 찾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물 같은 표현들이 무척 많았는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을 그을 수도, 지하철 안에서 문장을 베껴 적을 수도 없어 수시로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읽었어요.


"고. 대. 한. 다. 는 게 좋아요." - P122


아주 오랜 기간 고대한다는 표현을 잊고 있었어요. 바란다, 희망한다, 꿈꾼다 같은 표현은 자주 사용해 왔는데 말이죠.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은 오랫동안 천천히 고. 대. 해. 온. 일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뜻밖의 순간 그 일이 실현되자 겁이 나기 시작했죠. 

'준비가 덜 된 건 아닐까? 이렇게 해도 될까?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겠다고 한 것들(이를 테면 책방 시작과 함께 그 과정을 글로 기록하는 것)을 하나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대니얼은 우리가 결혼한 날 당일부터 바람을 피웠고, 십중팔구 그전부터 그랬을 거야. 그래도 난 그의 책을, 적어도 첫 작품은 좋아했어. 그의 속 깊은 어딘가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만 같았어." - P107


책 속 이즈메이의 말에서 '속 깊은 어딘가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만 같았어'라는 저 표현에서 또 한 번 마음이 덜컹. 낯을 가리는 제가 페북이나 블로그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어요. '나, 익명성을 좋아하는 걸까?'. 그런데 이즈메이의 말에서 답을 찾았어요. 글도 사람처럼 꾸며지고 치장될 수 있긴 하지만, 저는 여전히 글 안에 담긴 생각과 마음은 그 글을 쓴 사람에게서 나온다 믿거든요.


그 외에도 선배 '섬에 있는 서점'에서 저는 많은 것들을 얻었어요. 이를테면 '제가 마음먹은 대로 그냥 밀고 나가라는 응원' '우리의 삶에 대한 꽤 흡족한 표현' '책방과 이웃하며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생생한 묘사' '내가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 같은 것 말이에요.


'아일랜드 서점'에 대한 어밀리아의 거래처 보고서를 읽을 때에는 기어이 눈물이 핑 돌았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엔, 너무 아쉬워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각인하듯 읽어 내려갔어요. 고마워요, 선배. 멋진 책을 꼭 필요한 순간 소개해 주어서. 


책을 읽는 내내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을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어요. 좋은 책을 알려주신 답으로 저는 '건지아일랜드...'를 추천합니다. 섬을 배경으로 책을 주제로 오가는 편지가 중심인 소설인데 '섬에 있는 서점'을 좋아한다면 분명 '건지아일랜드...'도 좋아하실 거예요.


선배가 추천해 준 책 덕분에 큰 용기 얻었어요. 매주 화요일 4시간, 제가 여는 저만의 책방 이야기는 곧 글로 사진으로 전할게요. 책방이 정리되면 초대할 테니 꼭 와주세요 선배~


2018년 11월 15일

선영.



오늘은 2021년 11월 16일

어느새 3년이 흘렀다. 잠시 책방 주인이 될 뻔했지만, 오늘의 나는 그저 책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한 사람일 뿐. 길가다 우연히 만난 반가운 얼굴처럼 몇 해 전 써 둔 나의 글이 과거 속에서 걸어 나와 날 향해 웃는다. 오늘은 '섬에 있는 서점'을 다시 읽어봐야지.


오늘은 2022년 03월 30일

바로 앞의 오늘(2021년 11월 16일)로 부터 4개월 하고도 열 닷새 정도가 다시 흘렀다. 2021년 11월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창업 준비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브런치라는 공간에 바로 나, 박선영을 위한 쇼룸을 열겠다는 꿈을 안고 이곳저곳 흩어진 글들을 정리하고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의 쇼룸에 진열할 주된 상품은 내가 쓴 글들. 


<글을 진열하지만 글을 팔지는 않아요> 박선영 쇼룸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글이 아닌 무엇을 팔 건데? 저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해 오늘도 나는 창업 준비 중이다. 그럼에도 신난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신날 때나, 흥분될 때나 쓰고 쓰고 또 쓴 덕에 '오늘은 어떤 글을 진열장에 내놓을까?' 선택지가 풍성하다.


"그의 속 깊은 어딘가에는 그 책을 쓴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만 같았어"라는 이즈메이의 말처럼, 나는 내가 쓴 글 어딘가에 반드시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의 쇼룸에 내가 쓴 글을 진열하는 가장 큰 이유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을 알아채고 발견하는 어떤 이가 꼭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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