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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pr 14. 2022

살아남은 자의 응원

2022 백상예술대상 후보 <미싱타는 여자들>의 수상을 기원하며

지난 3월 홀로 <미싱타는 여자들>을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아 마스크가 흠뻑 젖었다. 길고 긴 엔딩크레딧의 마지막 줄 까지 지켜본 후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머릿속에 채운 말은 딱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



01.

대학 2학년이 되던 겨울이었던 듯. 신입생 환영회 장소로 사전답사를 갔던 대학생들이 탄 차량이 전복되었다는 사고 소식이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익숙한 학교명. 뒤를 잇는 사망자 명단. 친구의 학과가 포함돼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삐삐를 쳤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희는? 희도 안 갔어? 희도 괜찮아?"

문과대 건물 앞에서 윤이를 만나 윤이의 안녕을 희의 안녕도 확인했다.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윤이와 함께 듣는 교양수업이 있는 문과대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윤이가 흠칫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잡아끄는 내 손을 떼어내며 윤이는 말했다.


"못 들어가겠어. 저기... 친구들이랑 선배들이 있어."


윤이의 시선 끝에는 분향소가 있었다. 나의 친구들은 괜찮았지만 내 친구의 친구들은 괜찮지 않았다.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내가 어이없었고, 울고 있는 윤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머리 속이 멍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분향소가 있는 문과대 건물을 들어설 때 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건물로 들어섰다. 검은 리본이 둘러진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날 보니 분향소도, 사진들도, 하얀 국화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시 분향소가 있던 그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MT나 소개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낄낄 거리며 장난을 쳤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나 역시 그런 무리 중 하나였지만, 가끔은 너무 이상하다 못해 울컥울컥 화가 났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는데 여전히 세상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02.

<희곡의 이해> 강의에서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문장을 듣고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왜 한결같은 세상에 나는 멀쩡히 잘 있다가도 왈칵왈칵 화가 나는 건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 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나만 무사해서, 나만 괜찮아서, 나만 살아남아서 나는 내가 미웠던 거였다. '강하지도 않은데 살아남았네' 허탈한 마음으로 웅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03.

미싱 타는 여자들은 외면할 수 있었던 순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다. 비겁해도 괜찮았는데 비겁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래서 그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너무 큰 궤적으로 달라졌으리라. 평생 감옥 근처엔 가 보지 않아도 되었을 소녀가 감옥을 경험했고, (영화엔 나오지 않았지만) 감옥 그 이상의 험한 말과 험한 순간을 듣고 보았겠지. 그리고 사는 내내 잊지 못해 괴로웠겠지.


'만약 그때 그 순간 비겁할 수 있었더라면...' 너무도 앳된 소녀의 사진들을 보며 나는 자꾸 저런 가정을 하며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내용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장면을 꼽는다면 내겐 이 장면이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소녀 조합원이었던 임미경 씨가 그 시절 자신과 함께 경찰서에 잡혀갔던, 그리고 그 후 연락이 끊긴 친구를 향해 이야기하는 장면. 


괜찮다고. 아마 형사가 겁을 주어 네가 (주동자를 추궁하는 형사의 말에) 내 이름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되어 내가 감옥에 있을 때도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다 이해한다고, 나는 정말 괜찮다고.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 꼭 연락을 달라고. 나는 너를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고.  


내겐 그 말이 삶의 순간순간 비겁했고,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평온이 걸린 문제 앞에서만 목소리를 높였던 내게 건네는 면죄부 같았다. 미안했고 눈물이 났다.


04.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가치는 아무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잊혀 버렸을 <비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도록 한 것에 있다. 누군가는 나처럼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을 느꼈을 테고, 누군가는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합창곡 가사처럼 <흔들리지 않게 단결하고> <함께 모여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진 않았을까?  


시대가 외면했던 그분들의 지난날을 의미 있었다고, 용감했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살아남은 모두를 대신해 위로를 건네는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  


나는 <미싱타는 여자들>이 2022년 백상영화예술제 수상작이 되기를 바란다. 응원한다.


#백상예술대상 #미싱타는여자들


https://tv.naver.com/v/24846186

 



이것은 광고인가 홍보인가.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문구 '본 포스팅은...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와 관련 있는 글일까 아닐까.


정답!

콘텐츠의 힘을 믿습니다. 좋은 콘텐츠가 잘 팔리는 순간 짜릿함을 느낍니다. 필리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 제 일이지만, 의뢰받고 만드는 콘텐츠 만큼 내가 좋아서 내가 빠져서 만드는 글(콘텐츠)도 좋아합니다. 만든 이들의 정성이 보이는 미싱타는 여자들이 널리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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