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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07. 2022

가늠해 볼까? 욕심의 크기

01

멀리서 파주까지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왔다 갔다.     

왠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이 들어, 사라지는 친구 차 꽁무니를 눈으로 좇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자신의 경험을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콕콕 집어 알려준 친구. “너무 팍 익어버린 것 같은데” 했던 열무김치를 맛있다며 먹어준 친구. (친구야, 정말 맛... 괜찮았던 거지?)

     

02

계획은 원대했다.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김밥 재료들을 착착착 손질해, 미리 스텐 밧드에 담아둔다. 친구가 도착하면 따끈한 밥을 스텐볼에 담는다. 대화를 하며 능숙하게 김밥을 말아, 미리 만들어둔 오이냉국과 함께 낸다.    


03

하. 지. 만. 아침 먹은 것 정리하고 집안 곳곳 청소하고 나니 약속 시간. 결국 친구에겐 ‘예쁜 척(나 말고 음식)’ 하기 좋은 ‘딜로 장식한 참외 샐러드’도 ‘에그 미모사’도 대접하지 못했다.      

점심 식사 역시 평소 평소 먹는 반찬에 밥만 새로 지어 냈다.

헤어질 때 건네려 했던 주문해 둔 잔기지 떡 역시 가지러 가지 못했다.      

돌아가야 하는 친구에게 “떡집 좀 들렀다 가자” 했다.    


04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날. 그럼에도 모든 것이 참 괜찮았던 날. 떡 상자를 받아 든 친구는 “울 엄마 떡 좋아하시는데.” 하며 웃었다.      

 

개인사업 8년 차(?) 친구의 속앓이가, 내겐 유용한 정보가 되었던 시간.      

“너 사업할 거라며. 돈 벌거라며. 그럼 악착같은 부분이 있어야 해. 네가 생각하는 ‘큰 욕심 없어’가 정말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해.”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와 ‘악착같다는 건...’ ‘큰 욕심 없다는 건...’이라고 공책에 썼다.


05

왜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읽은 소설 <할머니와 나의 3천엔>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더라도 얼마나 ‘무리’인지 알아야 한다. - p43"

     

나의 욕심의 크기를 알아야겠다. 욕심부리는 대로 다 이룰 순 없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도 얼마나 '무리'인지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친구에게 줄 잔기지 떡값을 생활비 카드가 아닌 나의 업무용 카드(결국 내 카드지만)로 결제하며 혼자 까닭 없이 뿌듯했던 생각이 났다. 

      

그러게. 나 저런 욕심도 있었지. 내 몫의 월급통장이 간절해 본 사람은 아마 알 걸.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내돈내산 할 때의 짜릿함이라니. 


+

일상 속 짜릿함의 순간들을 모아 보면 내가 가진 욕심의 정도가 가늠되진 않을까 싶어, 침대에 누워 빈둥빈둥 짜릿했던 기억들을 모아봤다. 마침 침대 옆에 자기 계발서 한 권이 있어 휘리릭 넘겨보니 대략 '꿈을 생생하게 꿔라' '꿈은 원대하게 가져라' 등의 내용.


꿈을 크게 = 욕심을 크게? 그래서 잔기지 떡 한 상자를 지우고 땅, 집, 차, 별장 등을 넣어보고자 했으나... 아... 어쩌랴. 그런 것들을 내돈내산 해 본 적이 있어야 짜릿함이 가늠이라도 될 텐데, 당최 상상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살짝 욕심의 크기를 가늠하다 뜬금없이 마음이 처량해 졌다는 이상한 엔딩.


그래도 친구는 좋더라. 7년? 8년 만에 만나도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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