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사람의 기차 타고 출장여행기
“차 안 가지고 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은 물었다.
안다. 남편이 왜 저런 반응인지.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면 버스도 지하철도 1시간에 1번꼴로 운영하는 경기도 외곽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건, 자차 1시간 거리를 2~3시간 걸려 가겠다는 의미니까.
그럼에도 지하철과 기차를 택했다. 차는 지하철역 인근 공영 주차장에 주차해 두기로 했다.
파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 수원으로 당일 출장을 다녀오려면 (그것도 정해진 시간까지 귀가하려면) 치밀한 시간 배분과 동선 계획이 필수다.
서울역 행 경의중앙선은 시간 선택의 폭이 좁다. 서울 지하철을 생각하고 오는 것 아무거나 탔다간, 서울역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경험담임. T.T) 5~10분 연착 가능성, 서울역 도착 후 KTX 승강장까지의 이동 거리등을 고려해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도, 서울역 광장을 정신없이 질주한 후 얻은 소중한 지혜다.
돌아오는 기차시간 역시 중요하다. 서울역에서 파주로 오는 경의중앙선 역시 시간대별 1대뿐이라 애매하게 놓치면 타격이 크다.
7시 출발. 클리어.
7시 25분 공영주차장 주차. 클리어.
7시 39분, 서울역 행 경의중앙선 탑승. 클리어.
8시 30분, 서울역 도착. 클리어.
8시 37분, 서울역 스타벅스 도착. 업무 메일 회신. 클리어.
9시 10분, 새마을호 탑승. 클리어.
9시 43분, 수원역 도착. 클리어.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 착착착 바람 되로 술술술
그런데 아뿔싸. 점심시간을 빼고 일정표를 짰다.
14시 20분, 문산행 경의중앙선을 탈 때까지
먹은 거라곤 생수 500ml와 밀크 버블티 1잔이 전부.
서울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할 때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을 화장실과 맞바꿨다.
그렇다. 장시간 기차로 이동하려면 화장실이 먹는 것보다 중하다.
정확하게 14시 20분, 문산발 경의중앙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팽팽했던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어, 썬~ 아니 꽤 근사했지.
기차도 놓치지 않았고, 환승시간 막간을 이용해 업무 처리도 했잖아.
거기에 오고 가는 기차에서 업무에 필요한 책도 절반 이상 읽었으니
이보다 더 괜찮을 수 없어.'
라고 생각한 순간, 보고야 말았네.
눈앞에서 멀어지는 두 글자 <금릉역>.
결국 금촌역에서 하차, 구르듯 계단을 내려와
죽을힘 다해 반대편 플랫폼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하여 나는
기차를 탔을까? 놓쳤을까?
그럼에도 또 기차를 타겠냐 물으면
나의 답은
예스. 예스. 예스.
기차를 타는 시간이 좋다.
일 하러 가는 길이지만, 여행을 떠나는 듯 착각에 휩싸이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오늘 발견한 새로운 사실 하나.
평일 오전 8시 30분 서울역은 신기하게 평일 오전 시카고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 시간대 서울역 스타벅스에서 매장 안 벽 쪽 의자에 앉아 전면 유리 너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근사한 여행지의 낯선 도시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
앞으로 파주에서 지하철 + 기차 조합 출장 동선 짜기는 더욱 난해해 전망이다.
그동안은 경의중앙선 하차 후, KTX 플랫폼까지의 이동시간만 더했다면 이제 고려해야할 것들이 소소하게 늘어났다.
역 광장 가로지르는 시간
두리번두리번 여행자인 줄 착각하며 구경하는 시간
스타벅스에 앉아 여행자인듯 룰루랄라 할 시간 까지.
다시 생각해도 기차는 좋다. 기차 타는 시간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