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사무실 겸 집필실.
‘타닥타닥 탁탁’
조용한 집필실 안에 키보드 소리만 가득하다.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는 돌돌 말아 정수리 위에 얹어두고 말린 머리카락 가운데를 연필 한 자루가 관통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커피잔이 가득 올려져 있고 의자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몇 시간째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다.
집필실 창문 밖으로는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으며 오늘도 설은 꼬박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있다.
해가 떠오르든 말든 비가 오든 말든 세상이 돌아가든 서든 아무런 상관없이 설은 그렇게 글만 써댄 지 벌써 한 달째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집필실 문이 열렸다.
연수가 들어온 것도 모른 채 설은 글쓰기에 몰두해 있고, 그런 설의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듯 연수는 설 책상 위에 있는 커피잔들을 가져와 설거지를 하였다.
물소리에 설이 고개를 든다.
“어? 연수 왔네? 언제 왔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다시 노트북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설거지를 하던 연수가 한숨을 쉬며 매일 하던 잔소리를 오늘도 늘어놓는다.
“작가님. 어제도 집에 안 들어가셨죠?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나요..
무슨 글 쓰는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지금 한 달째 그러고 있는 거는 알고 계세요?”
‘타닥타닥 탁’
연수의 잔소리가 귀에 들리지도 않는지
설은 계속 글만 쓰고 있고 그런 설의 모습에 연수는 다 씻은 커피잔을 선반 위에 ‘탁’ 올리며,
“작가님!”
‘타닥ㅌ...’
“어? 머? 머라 했어?”
“좀 씻으세요! 집에 안 가실 거면 씻기라도 하세요.. 그 머리.. 아휴.. 냄새나요, 진짜!!!”
“냄새나? 안 감은 지 삼일밖에 안 됐는데 냄새나? 진짜?”
“아님 집에라도 좀 갔다 오시든지.. 옷은 언제 갈아입으실 거예요? 제발 거울 좀 보세요.. 하...”
“넌 진짜 갈수록 잔소리가 느는구나.. 글 쓴다는 애가 잔소리가 많아서 소재도 많을 거야.”
연수의 잔소리에 못 이겨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으악!”
의자에서 거의 떨어지며 설은 아파한다.
“작가님! 왜 그러세요?”
설의 모습에 연수는 놀라 설에게 뛰어오고
설은 계속 다리를 만지고 있다.
“아니야.. 그냥 다리가 굳은 것 같아.”
“또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아있었어요? 제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대체 언제부터 그 자세로 있었던 거예요?”
“몰라.. 어제 너 갈 때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아이고 다리에 감각이 없어~~”
연수 앞이라 엄살을 피우며 다리를 주무르는 설.
그런 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연수가 웃었다.
설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았다.
‘아... 사람이 아니 모니다... 어떻게 얼굴이 이러냐... 거의 난민 수준인데?’
“몰골이 어마어마하죠??? 놀랍죠??? 누군가 싶죠?”
화장실 밖에서 연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이 정도일 줄이야. 얼른 씻고 나갈게.”
설이 씻는 동안 연수는 설의 책상 위 귤껍질을 치웠다.
이건 뭐 귤이다. 귤밭이다. 몇 날 며칠 귤만 먹은 거다 생각해도 될 정도로 귤껍질이 한가득이다.
‘귤껍질로 이불을 만들어도 되겠어. 매일 귤만 먹어대니.. 암튼 진짜 이상해.’
연수는 피식 웃으며 책상 위며 의자 밑 찌부러진 슬리퍼에 깔린 귤껍질을 치웠다.
토스트기에 식빵 두 장을 넣고 냉장고 안에 우유를 꺼내어 따뜻하게 데우는 동안 화장실 문을 열고 설이 나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입고 있던 옷은 다용도실 문을 열어 세탁기 안에 집어던졌다.
“아.. 시원하다. 진짜 며칠 만에 씻은 건지 모르겠어.”
수건으로 연신 머리를 터는 설이를 보며 연수가 말했다.
“이리 와서 토스트랑 우유 드세요. 일단 이거 드시고 이따가 밥 먹어요.”
“커피는? 나는 커피가 좋은데...”
“커피 좀 줄이시고요.. 대체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드시는 거예요? 카페인 중독도 심한 중독 중에 하나라고요. 현대인들이 다들 중독되어있는..”
“알았어~ 알았어.. 우유 마실게. 마시면 되잖아..”
테이블 위에 있는 우유 잔을 들어 벌컥 들이마시는데,
“앗 뜨거워!”
“아니 잔을 들면 뜨겁다 차다 안 느껴지세요? 사람 맞아요?”
“뜨거워서 뜨겁다 하는 것도 죄냐!
내가 이거로도 잔소리를 들어야 되냐!”
씩씩거리며 후후거리며 우유를 마시자 연수는 토스트 위에 딸기잼을 가지런히 발라 설이에게 내밀었다.
“씻으니 얼마나 좋아요... 살 것 같죠?”
“응”
토스트를 먹으며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런데 작가님.. 렌즈 안 끼세요? 왜 안경 쓰고 있어요? 오늘 팬사인회 있잖아요.”
“아. 맞다. 깜박했다.”
남은 우유를 다 마신 후 책상 서랍을 열어 렌즈를 꺼내어 꼈다.
“어후.. 오랜만에 끼니 잘 안 들어가네.
영 불편하다.”
설은 렌즈를 끼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 토스트를 먹었다.
“아.. 렌즈랑 안경이랑 이렇게 얼굴이 달라지는 사람은 작가님뿐 일 거예요.
다들 좀 그렇다고는 하지만 작가님은 차이가 진짜 많이 나요. 알고 있죠?”
“그러니까 나 안경 끼고 있으면 등신, 천치처럼 보인다는 거잖아. 지금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지?”
“하... 아니요. 이쁘다고요. 작가님 아주 많이 이쁘다고요.
저 뱅글이 안경 좀 버리세요. 이런 얼굴을 왜 이렇게 쓰는지.. 그렇게 쓰실 거면 그 얼굴 저나 주세요.”
“하하하... 내가 이쁘나? 그런가?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라 새삼스럽다야.”
남은 토스트를 입안에 다 구겨 넣는 설이를 보며 연수가 말한다.
“제발 어디 가서 그렇게 드시지 마시고요.”
“너는 진짜 잔소리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하구나~
소재 찾기는 참 좋겠어..
잔소리하는 마누라를 주제로 글을 한번 써보라고.
아마 너 따라오는 작가는 없을 거야.”
“네네... 샵에 가셔야죠? 그래도 팬사인회인데 오늘은 좀 이쁘게 해야죠?”
“귀찮아. 샵은 무슨... 내가 알아서 찍어바를게.”
설이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연수는 집필실 정리를 하였다.
단 하루 사이에 집필실이 이렇게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책상과 책상 주변에 널브러진 서류와 휴지 그리고 과자봉지를 정리하였다.
“자. 어때? 이 정도면 그래도 욕은 안 먹겠지?”
설이의 말에 연수는 설이를 쳐다보는데...
역시 설이의 미모에 또 한 번 놀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165센티미터의 키와 조금은 말라 보이는 가느다랗고 여린 몸.
평소 걷기와 달리기가 취미임을 알려주는 탄탄해 보이는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블랙 세미 슈트, 단정하게 늘어뜨린 갈색 긴 머리, 그리고 평소 치장에는 관심이 일도 없는 것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정돈이 된 하얀 얼굴과 복숭아 뺨, 부드러운 딸기 생크림을 연상케 하는 설의 작고 도톰한 입술과 그녀를 동안으로 보이게 하는 동그랗고 선명한 눈망울, 긴 속눈썹에 연수는 다시 놀랐다.
“작가님...”
“왜? 이상해? 화장이 너무 진해? 오랜만에 하는 거라.. 조금 진하지? 지울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진짜 이뻐요... 정말로...”
“또 놀리는 거냐?”
“참... 아니라니까요... 이런 미모를 왜 평소에는 그냥 두세요... 그나저나 남자들이 왜 그냥 둘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남자? 남자는 무슨... 내가 관심이 없는 거야. 그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거라고... 다 그놈이 그놈이야.”
“그러니까요. 작가님이 매번 하는 그 말. 그놈이 그놈이다는 대체 언제부터 그 생각이었던 거예요?”
“나? 나 어릴 때부터 사랑과 전쟁을 너무 봐서 그런가 봐. 하하하. 열 편을 보든 백 편을 보든 다 그놈이 그놈이더라고.”
“그놈이 그놈이면 아무 놈이나 하나 잡아서 연애하면 안 돼요?”
“응. 앙대~ 나를 그렇게 싸게 넘길 수는 없어~”
“하... 무논리에 논리로 반박하는 게 제일 멍청한 짓이라고 했던가요... 제가 지금 그 짓을 하고 있네요.”
“그렇네요. 윤연수 작가님. 장소가 어딘지 어서 앞장이나 서시지요.”
설이의 글이 좋다며 무작정 설이를 찾아와 문하생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게 해 달라며 눌러앉기 시작한 연수는 그때부터 5년을 설이와 같이 지내고 있었다.
재작년에는 그녀의 단편작 ‘이끼’가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서 드디어 작가라는 그럴싸한 명함도 달았다.
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한 그날 그 단단하던 연수는 설이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더랬다.
그런 그녀에게 설이는 자신의 첫 단편집인 「미치지 않기 위한 싸움」의 초판본을 그녀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연수는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더 크게 울어댔고 설이는 그런 연수에게 미안하다며 잘못했다며 연신 사과를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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