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_설(雪)

#14. 연인이 된 지 다섯째 날

by 묘해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방 안에 누워서 책을 읽던 설이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설이 옆에 누워 시나리오를 읽고 있던 지민이 설에게 말했다.

“왜? 책 재미없어? 나갈까?”

“아니야.”

설은 가방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설이 뭘 하는지 지켜보던 지민도 설 옆에 자리를 잡고 가까이에 앉았다.

“뭐 하려고? 글 쓸 거야?”

“아니.”

“그럼?”

“아우트라인만 좀 잡으려고... 잊어버리지 않게.”

“우와... 그럼 다음 작품 구상이 끝난 거야? 언제 생각했대?”

“그냥 틈틈이 생각은 했는데... 순간 떠올라서...”

“역시!!! 이래서 다들 한 작가, 한 작가 하는구나... 천재야 천재.”

“뭐라는 거야...”

말과는 다르게 설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스토리가 다 나온 거야?”

“다는... 아니고.. 대강... 뭐...”

“이번에는 어떤 얘기를 쓸 거야?”

지민이 뒤에서 설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설에게 말했다.

지민의 행동에 얼굴이 조금 붉어진 설이 말했다.

“우리 얘기를 쓸 거야.”

지민이 깜짝 놀라 설을 쳐다봤다.

“우리 얘기?”

“응. 우리 얘기.”

“어떤?”

“사랑 얘기.. 를 쓸 거야... 우리 사랑을 글로 남겨놓을 거야...”

“진짜?”

“저번에 네가 우리 얘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응, 그랬지만... 진짜 쓸지는 몰랐지...”

“뭐야... 그래서 싫어?”

“싫긴! 너무 좋아! 진짜 멋지다... 그럼 빨리 쓰자.”

지민의 밝은 표정에 설이 피식 웃었다.


“뭐라고? 빨리 쓰라고? 야.. 글이 뭐 뚝딱하면 나오냐.. 그냥 아우트라인만 잡을 거라니까. 일단~”

“그래그래. 아우트라인이든 인라인이든 얼른 쓰자... 빨리 우리 얘기 읽고 싶어.”

“나도 빨리 읽고 싶다... 우리 얘기... 사랑 얘기.”

지민은 빗으로 설의 긴 머리카락을 빗어주었고 설은 기분 좋게 다음 소설의 제목을 썼다.


설(雪)..

설의 머리를 빗던 지민이 제목을 보고 설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한 설 작가님. 컴백을 환영합니다.”


‘타닥타닥’

내리는 눈 속에 설의 키보드 소리가 조용하게 방에 울렸다.

설은 조금씩 집중이 되는지 풀고 있던 머리를 말아 가운데 연필을 꽂고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런 설의 모습을 지민은 핸드폰을 꺼내어 조용히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로서의 한 설은 너무나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여자가 되고 난 후 한 설 작가로서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고 몹시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 모습을 남겨두고 싶어 지민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지만 ‘찰칵찰칵’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설은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민도 조용히 앉아 시나리오 읽기에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변은 조금씩 어두워졌고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의 불을 켰다.

주위가 밝아지자 그제야 설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구 구... 허리야... 지금 몇 시야?”

“저녁시간이야, 설아.”

“벌써?”

“응. 너 꽤나 오랫동안 그 자리 그대로 글썼어... 내가 옆에서 커피 놔줘도 모르고 그냥 글 쓰더라.”

“내가 그랬어?”

“응. 완전 한 작가로 돌아왔던데? 내 여인 한 설은 어디 갔나~”

“뭐야... 큭큭.. 혼자 심심했나 봐?”

“아냐... 너 구경도 하고 시나리오도 읽고 그랬어. 그보다 너 배고프지 않아?”

“응? 아... 그러고 보니 배가 좀 고픈 거 같네...”

“그럴 것 같아서... 펜션 주인한테 우리 저녁 달라고 했어... 우동 달라고 했는데... 어때?”

“좋아.”


‘똑똑’

때마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주었다.

펜션 주인이 저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작가님. 다음 작품 시작하셨다고요?”

“네?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지민 씨가 저녁 부탁하시면서 얘기해 주셨어요... 작가님 작품 시작하셨다고...”

“아.. 네...”

“여기 아오모리에서 다음 작품을 시작하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요, 제가 영광입니다.

여기 아오모리에서였기 때문에 바로 다음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아마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작품 구상 중이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우동 말씀하셔서 우동이랑 튀김 조금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짧게 인사를 마친 후 펜션 주인은 방을 나갔다.


“우와! 새우튀김이다!”

“새우 좋아해?”

“응. 좋아해.”

“잘됐다. 어서 많이 먹어.. 먹고 커피 마시자.”

설과 지민은 마주 보고 앉아 우동과 튀김을 먹었고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렸다.

“며칠째 계속 눈이네... 내일도 계속 내리면 밖에는 나가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커피를 내리면서 지민이 말했다.

“왜... 방 안에만 있어서 갑갑해?”
“아니.. 나는 괜찮은데... 설이 네가 혹시나 갑갑할까 봐...”

내려진 커피를 잔에 담아 설이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괜찮아... 눈 내리는 방 안에서 작품 쓰는 걸 상상하면서 여기에 온 거니까... 생각한 대로 된 거야, 나는... 그래서 하나도 안 갑갑해.”

“그렇다면 다행이다. 저녁도 다 먹었는데... 이제 뭐 할 거야?”

“응? 글 써야지.”

“또?”

“또. 한참 생각날 때 써둬야지... 왜 혼자 심심해?”

“아니... 전혀... 너 구경하는 거 재미있어.”

“날 구경해? 구경할 게 있어?”

“나... 한 설 작가 팬이라고 했잖아... 작품 쓰는 걸 옆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는데... 팬으로서 얼마나 신기하고 영광인지 알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보다 너 피곤하지 않아? 한 자세로 몇 시간을 그대로 앉아서 키보드만 치던데... 안 피곤해?”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피곤하기는 하네... 조금만 더 쓰고 일찍 자지 뭐...”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응”


설은 지민이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갔다.

지민은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을 틀었고 스피커로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음악 소리에 설은 고개를 들어 지민을 쳐다보았고 지민은 설에게 ‘찡긋’ 웃어 보였다.

음악과 눈 그리고 지민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설은 행복함을 느끼며 글쓰기에 집중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작품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완성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름답고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먹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우리 사랑 얘기야’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설의 마음처럼 다들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