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_설(雪)

#17. 다시 한국

by 묘해

연수야.”

“네.”

“설이 뭐 하고 있냐.”

“글 쓰세요.”

“언제부터.”

“일주일은 족히 된 것 같아요.”

“밥은 먹고?”

“아니요... 겨우 우유만 먹는 둥 해요.”

“하...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저러다 쓰러지시겠어요...

일본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글만 쓰세요...

무슨 글 쓰는 귀신이 붙었나... 얼굴도 말이 아니에요...”

“알았어... 연수야.. 너는 절대 설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계속 옆에 있어줘... 설이 저러다 무슨 일 날까 걱정이 돼 죽겠어.”

“알았어요...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오늘이죠? 서지민 씨 소속사와 만나기로 한 거.”

“응. 일단 다녀와서 다시 전화할게.”

“네... 끊어요.”


도겸의 전화를 끊고 난 후 연수는 설을 쳐다보았다.

아오모리에서 급하게 돌아온 설은 연수를 껴안고 슬프게 몇 시간을 울고 난 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꼬박 이틀을 잠만 자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거의 일주일째 글만 쓰고 있다.

간간이 연수에게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보는 것 외에 일절 말이 없었다.

아오모리에서 있었던 일들은 연수도 기사를 통해 알았던 터라 그간의 자세한 사정을 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 간신히 견디고 있는 그녀에게 지난 일들을 꺼내면 그녀가 쓰러질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사랑을 한 것이었다.

내 것밖에 모르고 글만 알고 인간관계라고는 도겸과 연수가 다인 그녀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사랑을 한 것이다.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아주 요란한 사랑을...


어쩌면 누구만큼이나 평범할 수도 있고 누구보다 더 단조롭고 지극히 단순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직업이 그리고 그들을 향한 세간의 관심이 그녀의 사랑을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그러한 관심들은 그녀를 힘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 지금 설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있는 힘껏 이겨내고 있는 중일 거라 연수는 생각했다.

설은 가엾게도 점점 말라갔다.

그런 설이 애처로워 연수는 설이 좋아하는 설이표 떡볶이도 해주었지만 그녀는 먹지를 않았다.

먹으면 이내 토해내서 먹는 걸 더 권할 수도 없었다.

간신히 토스트 조각과 따뜻한 우유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하루하루 볼품없이 말라갔다.

그런 설을 가까이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연수는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가득한 집필실 안에서 잠시 소리가 멈췄다.

연수는 설을 쳐다보았다.

설이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자신의 집필실이 너무도 낯선 듯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세요, 작가님... 뭐 드려요?”

“연수야.”

“네.”

“도겸이는? 어디 갔어?”

“아.. 오늘 MG소속사에 회의차 가셨...”

순간 연수는 아차 했다...

MG소속사는 배우 서지민 군이 소속되어있는 회사인데 자신도 모르게 설에게 필터링 없이 그대로 말한 것이었다.

소속사 이름만으로도 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도겸이한테 전화 넣어봐.”

“왜요... 지금 바쁘실 것 같은 데...”

“얼른 연수야...”


한편 도겸은 MG소속사 회의실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데 소속사 조 부장과 서지민의 매니저인 송 과장 그리고 서지민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서지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끌어 오르는 화를 참느라 도겸은 커피잔을 깨뜨릴뻔했다.

MG소속사 조 부장이 먼저 말을 했다.


“김 대표님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직도 언론이 시끄러운 데다가 더는 상황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 모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서배우와 한 작가의 거처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동감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왜 이렇게나 시끄러운 건지...

아마 회사 측에서의 공식 답변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도겸이 대표로서의 대답을 했다.


도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매니저 송 과장이 말을 했다.

“김 대표님... 공식적으로 인정하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송 과장의 말에 도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공식? 인정? 뭘 인정한다는 겁니까.”

도겸의 날카로운 반응에 송 과장은 당황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답답하시고 화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평소 지민이가 한 작가님 팬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상상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배우 관리를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대체 배우 혼자 거기에 왜 두고 간 겁니까!”


얘기를 듣고 있던 조 부장이 도겸이를 달래며 말했다.

“김 대표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시고요... 이렇게 감정적이시면 한 설 작가와 서 배우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원만한 해결방법을 찾고자 모인 자리이고요.”

도겸은 화를 참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생각해 두신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도겸의 질문에 송 과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우리는 반대했지만 지민 군의 뜻이 너무도 확고해서 먼저 지민 군의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뜻??? 참 나... 한번 들어나보죠.”

“지민 군은 한 설 작가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지만 지금 지민 군의 뜻이 너무나도 확고해서... 김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좀 듣고 싶습니다.”


송 과장의 말을 들은 도겸은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인정? 공식? 지금 그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거요!!

지금 설이가 서지민 군의 팬들에게 얼마나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지 잘 알면서 거기다가 기름을 붓자는 거요 뭐요!!!”

소리를 지른 후 도겸은 서지민을 죽일 듯이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서지민!!! 네가 말해봐!!! 설이와의 관계 인정하면 네가 설이를 지켜줄 수 있어!!! 지켜줄 수 있냐고!!!”


도겸이 소리를 지르자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한 말투로 도겸에게 말했다.

“설이는 앞으로 제가 지킵니다. 김 대표님... 설은 제 여자입니다.”

지민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도겸은 지민을 칠 듯한 기세로 말을 했다.

“뭐!!! 니 여자??? 설이가 니 여자라고??? 너는 니 여자한테 그렇게 하냐!

내가 아오모리에 갔을 때 너는 설 혼자 두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났어! 설을 혼자 두고!!!

밖에는 기자들이 득실득실거리는 아오모리에!!! 너는 설을 혼자 두고 갔다고!!!

그런데 뭐? 이제 와서 니 여자??? 네가 지킨다고? 웃기는 소리 그만하라고!”


화를 참지 못한 도겸이 결국 지민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고 지민은 쓰러지면서도 그런 도겸의 주먹질을 묵묵히 받아냈다.

놀란 송 과장은 바닥에 누워있는 지민을 일으켜 세웠고 조 부장은 도겸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 대표... 제발 진정 좀 하세요...

이건 우리 뜻이 아니라.. 지민 군의 뜻이 너무 확고해서 일단 김 대표한테 전한 거고... 자자.. 일단 자리에 앉아서 다시 얘기해봅시다.”

도겸이 씩씩대며 자리에 앉자 송 과장과 지민도 의자에 앉았다.


지민은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살짝 닦으며 도겸에게 말했다.

“그때는 제가 없어지는 게 설에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행여나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설이는 더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니까...

그래서 김 대표님한테 빨리 오시라고 연락드린 거고요.”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라고! 설은 내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조 부장님 잘 들으세요...

우리는 공식 인정 못 합니다. 안 합니다! MG에서 인정을 한다면 그건 MG만의 생각일 뿐인 걸로 우리는 정정기사 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민 군의 꼴이 얼마나 우습게 되는지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요.”

도겸의 확고한 대답에 지민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이 문제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지금 제작 중단된 영화 ‘그녀는 진심이었다’는 열애설이 잠잠해질 때까지 계속 중단된 상태로 둘 겁니다.

그리고 정리가 좀 되고 나면 남자 배우 전격 교체 후 영화 촬영 들어갈 겁니다.

다시 말해서 지민 군과의 계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건 우리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인 만큼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은 지불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지민 군과의 인연도 그리고 MG와의 계약도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합니다.

이 말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도겸의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조 부장과 송 과장은 어쩔 줄을 몰라하고 지민은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니... 김 대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렇게 통보를 하면 우리는 어쩝니까...

이 작품을 지민이가 얼마나 하고 싶어 했는지 김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래서 김 대표가 직접 우리 지민 군 캐스팅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요! 누구보다 잘 아는데 일을 이렇게 만들어요? 왜 우리 설이를 흔들어놓냐고!!! 서지민!”

다시 화가 난 도겸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설에 대한 악플이 계속 달린다면 서지민 군 팬들을 모조리 고소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런 몹쓸 일 일어나기 전에 서지민 군 팬들 단속 잘하세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기사를 내일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표... 악플은 걱정 말아요.. 우리가 최대한 설 작가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회사 차원에서 조치를 할 테니... 그러니.. 영화 얘기는 좀 잠잠해지고 나면 다시 얘기합시다... 이건 위약금 문제가 아니잖소... 이 영화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얼마나 큰데...”

“조 부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그런 관계라서 설이가 지민 군을 영화에 캐스팅했다고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이 넘쳐나는데...

시간이 지나서 소문이 잠잠해진들 지민 군이 다시 촬영을 재개하면 잠잠해졌던 소문도 다시 시끄러워질 게 뻔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그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가야 합니까... 지민 군은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맞습니다.”


이때 도겸의 핸드폰이 울렸다. 연수의 전화였다.

“잠시만요... 전화 좀 받겠습니다.”

“응... 연수야 왜.. 응? 그래 바꿔봐...

(다정하게) 설아?”


도겸의 입에서 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지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도겸을 쳐다보았다.

지금 도겸과 통화를 하는 사람이 설이 인 것을 알자마자 지민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그런 지민의 얼굴을 애써 무시한 채 도겸은 통화를 이어갔다.


“어?... 응... 그것 때문에 MG에 왔어... 어? 안 돼..설아... 안 된다고... 그러다가는 너 여기서 못 벗어나...

평생 괴롭힘 당할 거라고... 설아... 응... 알겠어... 일단 알겠으니까 자세한 건 들어가서 얘기하자...

대신 너 오늘은 일단 밥 먹어라... 뭐든지 먹어.. 안 그럼 나도 네 말 안 들을 거야... 응...우동? 알았어...우동도 사갈게... 응.”


전화를 끊고 나서 고개를 돌리자 지민의 눈가가 빨갛게 변해있었고 그의 두 눈에서 이내 눈물이 떨어졌다.

지민의 아픔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매니저 송 과장은 지민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모습을 보자 도겸도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가 몹시도 미웠다.


잠시 생각을 한 후 도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 부장님 그리고 송 과장님... 영화 얘기는 시간이 좀 지난 후 상황을 보면서 다시 하도록 하시지요.”

조 부장과 송 과장이 깜짝 놀라 도겸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 대표님? 그럼 우리 지민이 그 영화 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송 과장이 도겸에게 물었다.


“일단 그건 차후에 다시 논의해 봅시다...

지금 한 설 작가의 전화였는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한 건지.. 참....

암튼 한 설 작가가 서지민 군이 아니면 영화 자체를 포기하겠다고 하네요...

그 작품은 지민 군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작가의 뜻이 그렇게 완고하니... 저로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네요... 암튼 소문이나 잠재우는 데 일단 노력을 하도록 하죠.”


지민은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도겸의 입에서 나오는 설의 이름만 들렸다.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메어지고 아파올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예상한 것보다도 너무나 아팠다.

가슴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덜 아플 것만 같았지만 지민은 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입을 힘껏 다물며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슬아슬했던 회의가 끝이 나고 도겸은 집필실로 돌아왔다.

손에는 우동이 들려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열흘만에 설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도겸에게 부탁한 우동이었다.

설이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게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먹고 싶다는 건 먹겠다는 건 곧 살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아예 삶을 포기할까 봐 노심초사였던 도겸에게 설의 우동은 살겠다는 의지의 말이었다.

우동이 불세라 한걸음에 도겸은 집필실로 뛰어왔다.


도겸이 들어오자 설은 고개를 들어 도겸에게 웃어 보였다.

계속 먹지도 자지도 않아 그 새 볼품이 없을 만큼 깡말라진 그녀의 말간 웃음에 도겸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도겸도 설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설아... 우동 먹자. 연수와 너도 와.”

셋은 둘러앉아 우동을 먹었다.

“맛있다.”

우동을 먹던 설이 말했다.

“맛있어? 다행이다.”

도겸이 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오모리 우동은 더 맛있는데...”

설이 짧게 말했다. 그러고는 도겸을 쳐다봤다.

“도겸아... 내 뜻은 확고해... 이번만큼은 네가 내 말 들어줘야겠어...

그 영화 지민이가 무조건 해야 돼... 그게 안된다면 영화 자체를 못 찍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어서 먹어... 내가 알았다면 그렇게 하는 거야... 방법을 찾아볼게...”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설은 우동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도겸이 내려준 커피를 받아 들고 설은 창 밖을 쳐다보았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끝나가는 겨울이 설은 아쉬웠다.

다시 겨울이 오기를 채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설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설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설아.”

“응?”

“좀 쉬자...”

미친 듯이 글만 써대는 설이 걱정돼 도겸이 말했다.

“많이 쉬었어...”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쓰는 건데... 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도겸아...”

“어?”

“오늘... 그 사람 봤어?”

“...”

“봤냐고.”

“응.”

설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때 보였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내 걱정 많이 하고 있지?”

“설아...”

“응?”

“너는 너 걱정이나 해... 이게 뭐야... 너 팔봐... 부러질 것 같아... 제발 설아... 그만 정신 차리고 아오모리 가기 전의 너로 돌아오면 안 될까?”

설의 팔을 잡은 도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돼...”

“뭐가... 안돼...”

“도겸아... 나 못 돌아가... 너무 멀리 왔어...”

“설아... 제발...”

“미안해 도겸아... 너 맘 아프게 할 생각은 아닌데... 아프게 해서 미안해.”


도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오모리에 설이 혼자 갔을 때 자신이 설을 따라나서지 않은 것을 죽도록 후회했다.

설이 무슨 난리를 치던 욕을 하던 무조건 따라나서서 그녀 옆에 있었어야 했었다.

그동안 설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자신이 항상 설 옆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자신이 설 옆의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도겸은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때의 자신을 스스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꽃이었던 설은 한순간에 망가진 채 자신의 품으로 돌아왔고 다시 그녀를 꽃피우려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꽃은 스스로 피우기를 포기했다.


“서지민은 잘 지내보였어...”

“그래?”

“응.”

“다행이다. 잘 이겨낼 줄 알았어.”

“그러니 설아... 너도 잘 지내자..”

“응. 나 잘 지내.”

“글은 조금 쉬어가면서 쓰자.”

“그건 안돼.”

“왜?”

“약속했어.”

“지민이랑?”

“응”

“무슨 약속?”

“우리 얘기를 쓰겠다고 약속했어.”


도겸의 가슴이 찢겨버렸다...

“우리 얘기?”

“응. 우리 얘기를 쓰겠다고 지민이랑 약속했어...

그래서 나 빨리 써야 돼... 이걸 다 쓰면 왠지 지민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설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짝거리는 반지가 도겸의 눈에 들어왔다.

도겸은 설의 왼손을 확 낚아채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그 자식과의 사랑 얘기를 쓴다고 너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이러고 있는 거야? 이거는? 그 자식이 준 거야? 무슨 사랑의 정표라도 되는 모양이지?”

옆에서 설거지를 끝낸 연수가 놀라 달려와서 설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이 잡고 있는 도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대표님! 왜 이러세요... 진정하세요... 작가님 손목 부러지겠어요.”

도겸은 연수의 말에 놀라 설의 손목을 놓아주었고 가느다란 설의 손목은 이내 빨갛게 부어올랐다.

“설아 미안해... 많이 아파? 얼음찜질해야겠어.. 연수야 얼음 좀...”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내가 아픈 건.... 여기야...”


설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겸아... 나 여기가 너무 아파... 아파 죽을 것 같아...

다 타들어가고 재만 남은 것 같아... 도겸아... 나 어떡해?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지민이... 지민이... 도겸아... 나 어떡하면 좋아...”

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고 이내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가슴이 부서질세라 콩콩 내리찍는 설의 주먹질을 도겸이 끌어안아 대신 맞았다.

콩콩 내리찍는 주먹질은 어느새 도겸의 등을 내리찍고 있었다.

한참을 도겸의 품에서 설은 울었고 그런 설의 울음에 가슴이 미어진 연수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설은 조금 진정을 한 후에 다시 도겸이에게 말했다.

“나 이거 써야 살아, 도겸아... 글을 쓰는 동안은 내가 아오모리에 있는 것만 같아서... 다시 그 시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아프지가 않아... 행복해... 그러니 나 그냥 글 쓰게 해 줘, 도겸아...”

“응. 알았어. 네가 쓰고 싶은 만큼 써... 대신 하루에 한 끼만 꼭 먹자... 이건 해줄 수 있지? 나를 위해서...”

“응.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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