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 그것도 잘 쓰고 싶다. 그리고 아직 채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이의 이런 글을 읽는 것에는 무척이나 인색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평가받는 것에도 두려움이 있다. 특히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나의 모자람에 자괴감을 느끼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따라 하게 될까 봐, 내 기준이 없어질까 봐를 염려한다.
내 글을 나쁘게 평가할까 피드백받는 건 겁내하면서, 다른 글에는 안 그런 척 평가질을 한다.
이런 나의 행태들을 늘어놓고 보니, 어느 것 하나도 내가 작가가 되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나답다'는 것을 부여잡고, 그것이 훼손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 어쩌면 내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정말 좋은 엄마, 아이들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헌신하는 엄마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엄마는 어떤 엄마인지,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로서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나아지면 좋을지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아이들이 '엄마는 우리를 위한다고 하시지만, 저는 결국 엄마가 엄마 마음대로 하신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섭섭하고, 화가 나고, 서럽기도 할 것이다. 억울함에 원망의 말들을 잔뜩 쏟아 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 나는 이제 신경 안 쓸 테니, 너희들끼리 잘 되나 보자.' 하고 복수심을 발동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요동칠 나 자신이 미리부터 두렵다.
그런데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눈에 띄는 문제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나는 분명 나의 모자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할 것이고, 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깨어 있게 될 것이다. 방송에서 자신의 양육방식을 드러내 놓고 코칭받는 부모들이 있다. 남의 일 보듯이 혀를 끌끌차며 보다가도 문득 경외감이 드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아이들이 잘 크는 것이 정말 중요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과 '나다움, 어쩌면 실체가 뭐인지도 모를 그 자존심을 지키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가를 두고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키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