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진정한 리더는 '버릇' 뒤에 숨겨진 '재능'을 본다.

by 심 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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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린 시절 형성된 습관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조직에서는 종종 사람을 단정 짓는 무서운 ‘낙인’으로 쓰이곤 합니다.

“저 친구는 원래 그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


인사팀에서 일하다 보면 한 번의 실수가 정체성이 되고, 그 사람이 ‘변화 불능 자원’으로 분류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 속담은 그렇게 누군가를 포기하는 게으른 리더들에게 가장 편리한 변명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십이 넘어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고, 때론 다시 살려보며 저는 이 속담을 다른 시각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세 살 버릇도 ‘새로운 시스템’을 만나면 바뀐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변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버릇은 본성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입니다

인사부장으로 수십 년간 현장을 지키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질적인 버릇’은 그 사람의 본성이 아닙니다. 과거 어느 조직, 어느 상사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선택했던 최적화된 생존 방식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문제는 그 버릇 자체가 아니라, 그 버릇 말고는 다른 선택지를 한 번도 제시받지 못한 조직과 리더에게 있습니다. 사람은 여든까지 버릇을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여든이 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버릇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회의 킬러’로 불리던 박 차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회의실에 나타나면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죠. 말수는 적은데 질문은 송곳 같았고, 동료들이 열정적으로 발표할 때 “그건 현실성이 없습니다”라며 찬물을 끼얹는 게 그의 주특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는 “사회성 부족”, “팀워크 저해자”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사람”이라며 다들 그를 피했죠.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대형 프로젝트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뜯어보니 리스크가 가득한 위험한 사업이었습니다. 모두가 분위기에 휩쓸려 “가즈아”를 외칠 때, 저는 박 차장을 ‘프로젝트 리스크 리뷰 담당’으로 공식 지명했습니다.


회의 첫날, 저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오늘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박 차장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망가뜨릴 수 있는 모든 이유를 가감 없이 찾아내 주십시오.”

그날 박 차장은 처음으로 눈치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끊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일정, 법무 검토가 빠졌습니다.”
“이 KPI는 현장에서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빈틈을 혼자서 묵묵히 걱정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한 팀원이 말했습니다. “차장님, 예전엔 무서웠는데 이젠 없으면 불안해요.”

박 차장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네요.”

세 살 버릇이라던 그의 태도는, 단 3개월 만에 조직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습관’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사람은 늦게 변하는 게 아니라, 늦게 믿어줄 뿐입니다


오십 대 인사부장에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이 속담은, 이제 사람을 쉽게 포기하려는 리더의 비겁한 변명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제 이 속담을 이렇게 다시 씁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면, 그 여든까지 아무도 그 사람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리더로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납니다. 오십이 되어 보니 인생도, 조직도 늘 업데이트 중인 ‘베타 버전’이더군요.


세 살 버릇을 탓하기 전에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새로 배울 수 있는 자리를 한 번이라도 내어주었는지, 그가 가진 날카로움이 칼날이 아니라 방패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지 말입니다. 사람은 늦게 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를 늦게 믿어줄 뿐입니다.


낙인은 리더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가장 쉬운 도구입니다. 버릇 뒤에 숨겨진 '이유'를 먼저 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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