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알 수 없는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법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사람 마음의 깊이와 변화무쌍함은 겉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조직에서는 주로 '경계와 불신'의 서로간의 거리두기의 근거로 인용되어, 믿었던 동료에게 발등을 찍히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사와 부하의 행동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 속담을 전표처럼 꺼내 들곤 하죠.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 돼", "속을 알 수 없으니 늘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해"라며, 타인을 단정 짓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논리로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십대 인사부장에게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사람 속을 다 알 수 없기에 인생은 탐험할 가치가 있고, 그 깊은 속을 다 알 필요가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상대의 마음을 현미경 보듯 전수 조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타인을 내 방식대로 재단하는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억지로 꿰 맞추려 하기보다 모르는 영역을 인정하고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뢰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몇 년 전, 평소 성실하지만 과묵하기로 유명했던 차 대리가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갑자기 일주일간의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팀 전체가 신경이 곤두서 예민해있었고, 고객사의 압박도 거셌던 바로 그 시기에요. 당연히 팀장인 김차장은 펄쩍 뒤었습니다.
"차 대리,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몰라? 이 중요한 시기에 무책임하게 뭐 하는 짓이야. 일 끝나면 휴가 줄 테니, 휴가신청 반려 해"
동료들 사이에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의 기류가 흘렀습니다.
저는 그를 따로 불렀습니다. 마주 앉은 그는 평소처럼 담담했습니다.
"휴가 신청한 이유, 말해줄 수 있나?"
잠시 침묵하던 그는 짧게 답했습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저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대리 속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습으로 보아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알았으니 잘 다녀오게."
그가 자리를 비운 일주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업무는 분산됐고, 팀원들의 불만 섞인 시선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팀장은 계속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부장님, 너무 믿으신 거 아닙니까.”그 말에도 저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 차 대리가 돌아왔고, 그는 달라진 건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여전히 없었지만 일하는 속도와 집중력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회의에서는 먼저 입을 열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이슈를 정리했으며, 늦은 밤까지 남아 빠진 일들을 스스로 메워갔습니다. 누가 시키지 아도 그는 이미 자기 자리를 넘어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프로젝트는 결국 예정보다 빠르게 안정됐고, 고객사 대응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마친 며칠 후, 그가 조용히 찾아와 고백했습니다.
“부장님, 그때…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때 위독하셨습니다. 혼자 계셨는데… 마지막 시간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고, 다시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다들 정신없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제 일로 지장을 끼치는게 아닐까 싶어서요.. 그래서 말씀 못 드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 속을 믿어주신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그의 속내를 억지로 파헤치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상처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르는 영역'을 '비난'이 아닌 '믿음'으로 채워주자, 그는 자신의 진심을 성과와 책임감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나중에 직원들이 말하더군요. "그 사람, 원래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네.""나는 그럴 줄 알았다니깐.. 아무렴."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그를 그렇게 믿어준 적이 없었을 뿐이지 않았을까?’ 라고요.
오십대 인사부장에게 이제 이 속담은 '존중의 언어'입니다.
동료의 마음을 다 읽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당신은 '꼰대'가 됩니다. 가장 편안한 관계는 서로의 비밀스러운 한 길 속을 굳이 들추지 않고도 기꺼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그걸 끝까지 캐묻기보다 조용히 남겨두는 것, 그 '여백'이 관계를 오랫동안 숨 쉬게 합니다.
다 알지 못해도 믿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가장 높은 단계인 '신뢰'의 본질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