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들에게 보내는 가을편지
11월의 어느 월요일, 퇴근길 오후 6시. 해가 짧아진 탓에 하루가 조금 일찍 접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퇴근 시간엔 눈이 부시도록 밝은 탓에 햇빛을 막아가며 운전했었는데,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조금 일찍 내려앉아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맘 때 즈음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함과 공허함이 마음 한켠을 건드린다.
왜 우리는 유독 가을이면 이런 감정을 느낄까?
자연은 ‘가을’이라는 계절로 우리에게 비움의 시간을 건넨다.
해가 짧아질수록 세상을 비추는 일조량은 당연히 감소하게 된다. 때문에 하루의 에너지가 일찍 닫히고, 나무들은 서서히 잎을 놓을 준비를 한다.
산을 곱게 물들이는 단풍은 사실 ‘끝’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 붉은빛이 아름다운 이유는, 떠남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자연은 여전히 자기 방식으로 완결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은 조용히 우리에게 ‘이제는 조금 덜어도 된다’, ‘그럼에도 너는 아름답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가을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한 해의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 우리는 성과와 결과를 채우라는 끝없는 요구 속에 놓인다.
자연은 비우라 하지만, 사회는 더 채우라 말한다.
내 몸 안의 에너지는 줄어드는데, 밖에서는 더 높은 효율과 성취를 외친다. 그 엇박이 마음의 진동을 만든다. 마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공허함은 때때로 외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찾아오기도 한다.
그 불안은 어쩌면 자연의 ‘비움’과 사회의 ‘채움’이 한 몸 안에서 부딪히며 생긴 잔향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이 모순의 계절 속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를 비로소 들려준다.
봄이 주는 생명력과 설렘, 여름의 뜨거움이 주는 활동성과 열정은 우리의 깊은 내면을 잠시 가려준다. 회사에서, 또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역할에 세상이 전해주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힘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면 가을은 에너지의 방향이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잠시 덮어두었던, 보지 못했던 깊은 내면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가을이 유독 외롭고 공허한 까닭은, 이 계절이 우리의 내면을 또렷하게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찬바람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부족함의 신호가 아니라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내 노력과 시간의 크기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지금의 우리는 단지, 계절의 속도에 맞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나’라는 물든 잎이 오늘 떨어질지, 내일 떨어지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또 한 번의 혹독한 겨울이 지난 후에는 더 강하고 푸른 새순이 돋듯 우리의 삶도 더 힘차게 빛날 것이다.
내일의 날씨는 몰라도, 다가올 계절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의 혼란이, 마치 끝에 다다르기 전 마주하는 잠깐의 단풍 같은 아름다움임을 인지하고, 그 순간조차 소중히 여기도록 하자.
그렇게 이 계절을 즐기고 사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