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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너에게, 그 시절의 나에게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어보아요.

by 루체

예고 없이 주기도 없이, 원인 모를 답답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고민에 대한 답이 무엇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답이 문제가 아니라 고민 자체가 적절했는지부터 원론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그저 혼란 속에 매몰되곤 한다.


훌륭한 해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문장이 나에게 울림을 줬던 이유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잘 돕기 위한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과 잠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년 2월에 졸업을 앞두어 취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했다.

휴학 한번 없이 성실히 학교를 다닌 탓에 나이가 굉장히 어렸음에도,

주변으로부터의 압박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다소 폭력적인 질문을 했었다.

우려가 무색하도록, 본인은 패션계열 회사의 마케팅 업무를 하고 싶다며

왜 그 일이 좋은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소개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특하고, 또 괜히 안쓰러웠다.


과거의 내가 투영되었던 탓일까.

하고 싶은 일을 소개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맞는지조차 불안하던 시절.

그 어떤 것에 대한 확신도 없고 때로는 자존감도 떨어지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에게 라떼(?) 얘기를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꼰대 같아도 이해해 달라 밑밥을 잔뜩 깔고 감히 한 마디를 전했다.



먼저 질문했다.

경영학도라면, 주변에 본인처럼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한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아마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과 같은, 직무가 아닌 회사 중심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역시 그랬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되고 싶은 일을 품고 지내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취준생이 가지는 그런 막연한 기대와 환상은

막상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게 됐을 때 제법 쉽고 빠르게 붕괴된다.

도리어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낀 성취감과는 비교가 안될 크기의 공허함을 맛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되고 나서의 목적지는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무엇보다 소중한 질문과 대답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설령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일이 다른 것으로 변할지라도,

나에게 던지는 질문의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그 이후의 안정과 또 다른 발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전했다.

뭘 해도 좋으니 하는 일에 진심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대외활동이든 인턴 경험이든, 최선을 다해봤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밀도이니,

그 경험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그저 진심으로 대하라고 전했다.


그 시절 나를 힘들게 하는 이유가 참 많았지만, 유난히 기억나는 아쉬웠던 점 하나가 있다면

내 고민의 방향과 결이 맞는 생각을 했던 인생 선배나 선생님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취업에 대한 조언을 구할 때면 찾아오는 답변은 늘 내 마음속에 와닿지 못했다.

"저건 저 사람이 잘하는 거잖아.", "내 고민은 저런 지점은 아닌데..."


몇 차례 그런 경험 이후에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내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질문의 뉘앙스나 대화의 온도가 나와 너무나도 닮았던 그 친구가 너무 반가웠다.

처음 들어보는 생각과 답변이라고,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 모습에 나 또한 큰 행복을 느꼈다.



살다 보면, 세월이 쌓이다 보면,

불안해하고 예민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제법 무뎌지고 모호해진다.

생각보다 세상에 맞고 틀린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문득 좋은 일이 쌓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동그라미가 되어간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과 고난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을 겪곤 한다.

요즈음의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믿어보려고 한다.


잠깐 시간 내어 10분, 20분 산책하며 짧은 통화를 건네고

그저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전환'이 찾아온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그 통화의 이유를 아는 사람이기에

내 두 발이 땅 위에 잘 붙어있음을,

오늘의 날씨가 화창함을,

하루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기회이자 소중한 선물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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