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렬 중인 마음
사는 일이란 무엇인가. 왜 나에게 매일의 시간이 주어지는지, 요즘 계속 떠올린다. 하나의 질문을 겨우 보류하면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지금의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 가깝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사건을 앞당길 수도,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을 조용한 시간 속에서 체감하고 있다.
나방의 날갯짓은 무언가에 취한 듯 휘청거린다. 그러나 우리는 불길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굵직한 직선처럼 화려한 용기를 읽어낸다. 그 날갯짓은 비장하기도 하고, 어쩌면 무모하기도 하다.
우리는 왜 일렁이는 불길로 시선이 움직일까. 타오르는 형태는 마치 제대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열기에 닿고 싶어 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워버린 자리에는 잿가루만이 남을 뿐이다. 설령 불길을 걷더라도, “이 순간이 영원할까”라는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매일 해야 할 일들을 해내고 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미 경험한 구조를 다시 반복하는 일에 대해 회색빛과 같은 필터가 드리워져 있다. 새로운 의미가 내게 주어질까 하는 질문에 나 홀로 결론을 서둘러 내려버리려는 단계에 서 있다. 의미는 내 안에서 정렬되는 걸까, 아니면 세상이 부여하는 것일까. 시간이 필요한 문제인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내 사유와 시선을 깊이 나눌 사람을 아직 가까이에서 만나지 못했다. 일부러 거절한 것은 아니다. 다만 비슷한 결의 사람이 근처에 없었다. 그렇게 작년부터 써 내려간 글을 수신자 없는 편지처럼 흘려보내며 공유하게 되었다.
지인들과의 자리에서는 대부분 들어주고 격려하는 쪽에 서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30대가 되자, 낯선 땅에 내딛는 서투른 마음들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더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작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 마음들에 공감하는 역할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이 일상이 내게 주어진 몫의 전부인가 하는 질문이 점점 잦아진다. 낮의 큰 파도를 견디고 나면, 밤에는 물결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 또 어렵다.
나는 오래전부터 전문 기술을 가지고 힘든 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직업이 나의 전부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떤 결의 사람으로, 또 누구와 함께 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고민들은 종교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나의 본질적인 성향이 가장 큰 바탕이라 생각한다. 이 시간이 정체가 아니라 정렬의 시간이길 바란다.
그동안은 변함없이 매일 뜨는 태양의 눈부심을 맞고,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취약함의 이면에 강함이 있음을 잊지 않으며, 천 번의 파도의 흐름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은 직선의 굵직함도, 화려하게 타버린 불의 미래처럼 잿가루로 남은 장면도 없다. 잠시 어두운 의심이 찾아올 때는, 다른 파도의 결로 시간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시간은 내 감정과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흘러간다. 침체된 생각으로 오래 누워 있을수록 물은 고인다. 그래서 글을 쓰며 막힌 생각을 언어화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써 내려간 문장들은 흔들리는 나 자신과 시선을 맞추기 위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직한 부딪힘 뒤, 늦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의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