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못 써도 괜찮아: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4강_#1】
4강 첫강입니다. 앞선 3강까지 우리는 ‘책 만들기’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었습니다.
제가 앞선 강의에서 1000자 이상의 꼭지를 대략 40개 만들면 책 한 권 만들기에 알맞은 분량이 된다고 말씀드린 적 있죠?
제 강의를 쫓아오면서 실제로 꼭지를 완성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꼭지당 1000자는 말 그대로 최소치입니다. 적어도 3000자 정도는 가실 거예요. 200자 원고지 15매입니다. (많다고요? 써보세요. 절대 안 많습니다)
이 기준으로 한 꼭지를 평균 15매로 보겠습니다. 그럼 40꼭지 총 600매 나오겠네요.
어려운 말 다 걷어두고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한 번 상상해봅시다.
교보문고나 알라딘, 예스24 같은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살 수 있는 말 그대로 그냥 ‘책’입니다.
<태백산맥>이나 <소년이 온다> 같은 흔히 파는 소설책 떠올리시면 됩니다.
이런 책의 사이즈를 보통 신국판(152×225mm)이라고 합니다.
편집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대략 원고지 800매면 신국판 300쪽이 나옵니다.
600매면 몇 쪽이 나올까요? 여기에 원고 말고 다른 요소, 이를테면 ‘사진’ 같은 게 들어간다면요?
자서전 같은 개인 출판물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주는 곳들이 많습니다.
보통 ‘자비출판’이라고 합니다.
그런 곳에 가면(검색엔진에 ‘자비출판’ 처넣으시면 많이 나옵니다) 패키지를 만들어 가격을 매깁니다.
얼마를 받든 사이즈(판형)는 거의 신국판이고요, 부수 고정해놓고 쪽 단위로 얼마 하는 식으로 표를 그려놓죠. 조금 얇은 책이다 싶은 패키지가 200쪽부터 시작합니다. 600매면 그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죠.
물론 그보다 얇아도 책이고, 두꺼워도 책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책의 ‘꼴’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여기서 딱 아래처럼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책’을 목표로 한다면,
1. 일단 40꼭지 정도는 가져야 한다.
2. 20꼭지 했으면 50%한 거고, 2꼭지 했으면 5%한 거다
이렇게 진척도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일단 이게 안 되면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책꼴’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단 그게 아까 말씀드린 대로 ‘통념 속에 같힌 책’일 경우 그렇다는 건 따로 기억해두셔야 합니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 드실 거예요. 책을 만들려면 편집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인쇄, 제본도 하는데 원고(소스)만 갖고 어떻게 100%가 됐다고 하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서전을 만들다가 이 단계서 포기하는 분들이 제일 많습니다.
둘째, 그러니까 원고만 들고 있으면 어떻게든 책은 나옵니다.
셋째, ‘책’을 뭐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가운데 셋째 ‘책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책은 텍스트 플랫폼입니다. 쉽게 말해 글자를 담는 그릇이란 뜻입니다.
종이를 발견하기 전, 중국인들은 대나무를 엮은 죽간에 글을 썼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인들은 나무판에,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에 글을 담았습니다. 형태는 달라도 다 똑같은 겁니다. 글을 담는 그릇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당연히 글입니다. 그릇이 아니라 담긴 것이 중요합니다.
기차역에 왜 갈까요? 기차 타러 갑니다. 플랫폼 타러 가는 게 아닙니다.
‘내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간다’ 그러면 기차 역할을 하는 것처럼,
‘내 글을 싣고 누군가에게로 간다’ 그러면 텍스트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꼭 내 글을 책이라는 플랫폼에만 태우려고 하는 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굳이’ 찾자면 꽤 많습니다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만 보죠.
1)익숙합니다.
종이 발명 후 컴퓨터나 휴대폰이 나타나기 전까지 5000년을 썼으니까요.
2)물리적 존재감이 있습니다.
새로운 ‘글 플랫폼’은 부피가 없는데 책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줄 때 좋습니다.
3)문화적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나 권력의 냄새가 나죠. 한 마디로 책을 냈다고 하면 ‘있어’ 보입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한 번 냉정하게 따져볼까요?
저 중에서 여러분의 자서전이 꼭 책이어야 할 이유가 몇 개나 있나요?
오히려 책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가 더 많지 않나요?
저는 지금 책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시고,
이유가 있을 때 책이라는 플랫폼 앞에 서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판단에 참고하실 수 있도록 다시 정리해드립니다.
1)익숙합니다
고정관념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현재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2)물리적 존재감이 있습니다
고정관념입니다. 그래서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꽤나 많습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짐’입니다.
3)문화적 권위가 있습니다
고정관념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권위를 갖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모든 가방이 명품이 아니듯 모든 책에 권위가 실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4)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겁니다.
단지 책을 내고 싶어 자서전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감당 가능하며, 만족감을 준다면
언제나 그것은 옳은 선택입니다.
그래서,
관련내용은 다음 강의부터 다루겠습니다.
책의 제작 단계를 단계별로 잘라서
어디까지가 최소선이고
필요에 따라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그러려면 어느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확실한 선을 그어 드리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1. 이 강의는 주 2회(매주 월/목요일)을 기본으로 진행합니다. 1강당 평균 3회 분량입니다.
2. 댓글로 질문 받습니다. 짧게 즉답이 가능한 답변은 댓글로 드리고, 중요한 내용은 모아서 마지막 강의에서 Q&A로 진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