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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제1강_#1】

by Lazist

글을 못 써도 괜찮아: 일생 단 한 번의 자서전 쓰기 (1)

사사(社史) 작가가 발견한 진짜 자서전


저는 기업체 홍보실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프리랜서로 독립해 사사 편집기획자, 전문작가로 활동해왔죠. 사사란 주로 기업이나 기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말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관련 활동을 하면서 숱한 일들을 겪었고, 집필한 책만 수십 권이 넘습니다. 사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종종 이런 문의를 받습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자서전도 필요하시다는데, 그것도 가능하신가요?"


물론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사사와는 별도로 많은 자서전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자서전을 쓸 때마다 손이 더 무거워지는 걸 느끼고는 합니다. 자서전의 주인공들은 뭔가 자꾸 과장하고 싶어하고, 불편한 진실은 뺄 수 없냐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극적으로", "이건 굳이 쓸 필요 있나요?"하고 조바심을 치죠. 그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다보면 작가 입장에서 진짜 내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건지, 허구의 소설을 쓰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기치 않게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큰이모님께서 종친회 소식지에 실을 짧은 회고담을 부탁하셨습니다. 최소한의 격식을 갖춘 본격적인 자서전은 아니었고,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한 편의 에피소드로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외가는 실향민 가족입니다. 큰이모님께서도 가족과 함께 남하해 이모부와 결혼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우셨습니다. 6·25전쟁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이모는 다섯 살 제 어머니 손을 잡고 인천으로 피난을 오셨습니다.

"별거 아니야, 그냥 피난 온 이야기 간단히 정리해주면 돼"라고 하셨지만, 저는 인터뷰가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모와 조카 사이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물어볼 수 있었죠. 그 말이 과장인지 아닌지, 꾸밈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도 금방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이모, 저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사실 죽을 것 같았지. 특히 네 엄마 손이 너무 작아서, 놓치면 어쩌나 싶어서..."


이모님께서는 솔직한 성품의 분이지만 조카 앞에서도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걸러내고 계셨습니다. 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사사 작가로서의 경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인터뷰이들은 처음에는 마치 영웅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포장하다가도, 시간이 길어지고 내용이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진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서해안 갯벌을 걸었어. 신발이 벗겨질까봐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그런데 네 엄마가 그 작은 목소리로 '언니, 발 아파' 하는 거야. 업어주고 싶었는데 내 몸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거든."


이런 디테일은 실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갯벌의 비린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진흙의 감촉, 다섯 살 아이 작은 손의 온기... 이것이 진짜 역사이고, 자서전의 글감입니다.


이모님과 대화를 나눈 후 저는 그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았습니다. 이모님께 직접 써보시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드렸습니다. 생각보다 더 흔쾌하게 이모님은 직접 글을 써보시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초심이 필요해질 때 이모님의 글을 꺼내봅니다. 전문가의 숙련된 문장으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진정성이 드러나는 멋진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혼자서는 쓸 수 없는가


사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서전 같은 개인 서사의 핵심은 글쓰기 실력이 아니라 솔직한 '대화'에 있다는 것을 말이죠. 사람들은 "내 이야기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일기장 앞에서라면, 혼자 있는 공간에서라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다고 믿죠. 하지만 제 경험상 그것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가장 잔인한 검열관이 됩니다. "이런 걸 쓰면 너무 자랑 같아 보이지 않을까", "이 실패는 너무 부끄러워서 쓰고 싶지 않아", "이런 감정을 드러내면 나약해 보이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막상 펜을 들기도 전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스스로 지워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무의식적인 왜곡입니다. 오랜 세월 스스로에게 반복해온 이야기는 어느새 '각색된 버전'이 되어버립니다. 실패는 미화되고, 상처는 합리화되고, 진짜 감정은 포장됩니다.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인터뷰어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정말요?", "왜 그랬을까요?", "그때 진짜 기분은요?"누군가 물어봐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켜켜이 쌓인 자기 검열의 먼지를 털어내고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좋은 인터뷰어는 몇 가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끝없는 인내심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네 번 들어도 지치지 않고 "그래서요?"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판단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네요"가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차이가 진짜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셋째, 기억을 자극하는 질문력입니다. "그날 날씨는 어땠나요?", "무슨 냄새가 났나요?" 이런 구체적인 질문이 수십 년 전의 막연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냅니다.



그래도, 시작할 수 있는 이유


문제는 이런 인터뷰어를 구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작가를 고용하자니 비용이 만만찮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탁하자니 오히려 더 솔직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자서전을 집필할 때는 인터뷰 시간을 제한합니다. 주 1회 단위로 총 몇 회, 각 한 시간씩.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 모두가 비용이며 자서전의 주인공에게 청구됩니다. 아무리 작가라고 해서 무한정으로 시간을 쓰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에게 지치지 않는 인터뷰어가 있다면 어떨까요? 24시간 언제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고, 절대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으며, 당신이 잊었던 기억을 끄집어낼 훌륭한 질문을 던져주는 상대가 있다면?


여러분께 최고의 인터뷰어(interviewer)를 소개하고, 여러분을 솔직한 인터뷰이(interviewee)로서 그 앞에 앉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제안하는 새로운 자서전 쓰기의 방법입니다. 그것을 위해 여러분께서는 딱 두 가지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첫째, 구글 계정이 필요합니다. Gmail을 쓰고 계신다면 이미 준비가 끝난 겁니다.

둘째, 당신 인생의 타임라인을 최소 20줄로 정리해보세요. 다음 강의에서 이걸 200줄로 늘려드리겠습니다.


1965년 ○월 서울 출생

1972년 ○월 ○○국민학교 입학

1984년 ○월 ○○대학 입학

1988년 ○월 첫 직장

1990년 ○월 결혼



연도와 사건만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면 됩니다. 이 20줄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 자서전의 뼈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상대이자 인터뷰어인 AI파트너는 이 타임라인을 보고 "1988년 첫 직장은 어떻게 구하셨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에 대해 대답을 반복하다보면 20줄이 200줄로 불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들만 준비되면, 우리는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타임라인을 갖고 우리의 특별한 대화 파트너를 만나 첫 대화를 시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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