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을 받았다. 색종이를 접어 만든 손편지와 함께 거실 책꽂이에 보란 듯이 세워져 있었다.
‘위 사람은 우리 가족을 이끌어 주었고 내가 부탁을 하면 시원하게 들어주었고 가끔은 내가 상상을 할 때 현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잘 맞는다. 뭐가 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사람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기에 상장을 수여한다.’
하얀 종이 위에 붓 펜으로 시원스레 써 내려간 딸아이의 글에서 새삼스레 나를 보았다. 몇몇 표현이 눈에 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여튼 훌륭한 사람’이라고 글 마무리를 한 것으로 보아 아이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저 기쁜 마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상장을 안고 한걸음에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겼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그 물건이 엄마 얼굴에 있는 주름을 활짝 펴주는 신기한 경험을 한 어느 날부터 나는 상장을 받으면 엄마에게 뛰어갔다.
상장받기를 기다리기보다 상장 만들 생각을 한 딸아이에게서 한 수 배웠다. 나도 상장을 만들고 싶었다. 아이처럼 종이 위에 막힘없이 써보는 것이다. 상장 주인의 얼굴을 환하게 펴 줄 큰 힘을 기대하면서.
하얀 종이 한 장을 마주하고 앉았다. 술술 써질 줄 알았는데 첫 문장부터 막혔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뒤엉키더니 어떤 말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펜을 쥔 내 손은 종위 위에서 길을 잃었다. ‘위 사람은….’ 도무지 그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딸아이가 만든 상장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우리 가족을 이끌어 주었다니 어디 나에게만 쓸 말이겠는가. 아빠를 위한 상장에도 써먹을 것이 분명했다. 부탁을 시원하게 들어주었다는 말은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는 무언의 압력이고…. 상상을 할 때 현실을 알려주는 엄마는 아이의 동화 같은 세상에 찬물을 끼얹는 못된 어른 아닌가. 엄마와 맞긴 맞는데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니 말장난 같은 글이다. 그런데도 결론은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어쨌든 상장의 주인은 좋은 사람이라고 끝을 맺으니 받는 사람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아이는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일 터이지만 상장을 받은 엄마는 그 의미를 곱씹는다. 내 생각을 은연중에 전달하면서도 받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는 방법으로 상장만 한 것이 있으랴. 목적이 뚜렷하면 일이 단순해지는 법.
다시 하얀 종이를 마주했다.
‘위 사람은 …… (중략) 하여튼 훌륭한 사람이기에 이 상장을 수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