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정희 Sep 22. 2022

네 꿈을 펼쳐라

 한 소녀가 그날도 거울 앞에 섰다. 소형 카세트에서 나오는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불렀다. 사실 아이는 노랫말의 의미도 잘 몰랐다. 아직 배우지도 않은 영어로 된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따라 적어 외웠을 뿐이었다. 


 형제들과 나이 차가 커서 어린 시절을 혼자 보내야 했던 나는 주말마다 집에 오는 대학생 오빠를 손꼽아 기다렸다. 오빠가 하는 말, 오빠가 읽는 책, 오빠가 듣는 음악. 모든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오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눈뜨자마자 오빠 방으로 달려갔다. 심술궂게도 오빠는 늘 나를 다락방으로 보냈다. 다락방은 우리 집의 간식 창고였으며 동시에 온갖 잡동사니의 집합체라 한나절을 휘젓고 놀아도 질리지 않는 놀이터였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동생이 귀찮았는지 아니면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오빠는 매번 뭔가를 찾아오라며 나를 그곳으로 보내곤 했다.


 그날도 나는 다락방으로 갔다. 오빠가 오려면 며칠이 남았고 딱히 놀거리도 없어 심심하던 차였다. 낯선 상자 하나가 보였다. 귀한 물건이라 몰래 두셨나 싶어서 선뜻 열어보지 못하고 궁금증만 더했는데 자세히 보니 상자 한쪽에 ‘팝송 전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팝송은 무엇이고 전집은 무엇인가. 슬쩍 열어보고 얼른 닫아 놓기로 했다. 상자 안에는 두툼한 책과 여러 개의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오빠 방에 있는 카세트로 테이프를 들었다. 책 속엔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씨들이 빽빽한데 음악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도 좋았다. 흥얼흥얼 그렇게 따라 부르다가 들리는 대로 노랫말을 받아 적고 외웠다. 가사를 넣어 부르니 제법 노래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어서 거울 앞에 섰다. 테이프 속 가수의 목소리는 떨림이 있어 듣기 좋았다. 내 목소리에도 떨림을 입히고 싶어서 선풍기를 틀고 그 앞에서 노래했다. 누가 들을까 봐  발소리만 나도 끊기던 노래였다. 


 아들이 내 어릴 적 모습을 닮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히 노래 연습을 하는 아들을 보았다. ‘대성당의 시대’, ‘꿈속에서’ 등 대표적인 뮤지컬 곡들을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에서 아들의 재능을 보았다. 나와는 세대가 달라서 아들은 스마트 폰으로 노래를 검색하고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니 내가 직접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마도 그날 아들은 내 발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중저음의 다소 굵은 목소리를 가진 아들은 말이 많은 편도 아니어서 점잖은 아이로만 알았다. 친구들이 자신의 유머를 좋아한다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저 아들이 가진 장점 정도로 생각했다. 아들은 아마도 넌지시 엄마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놓은 것 같은데 둔한 엄마는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감을 잡았으면서도 애써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아들은 시치미를 떼고 있는 엄마에게 선전포고를 하듯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집으로 오시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깨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너 시간 만에 돌아온 아들은 자신이 아주 좋아하는 수업을 받고 왔다고 했다. 학원을 바꿔달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뮤지컬 수업을 받고 왔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진지하게 수업을 받으니 선생님이 자기만 바라보며 수업을 하셨다는 둥, 눈빛이 살아있다고 하셨다는 둥, 노래와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하셨다는 둥…. 아이의 말이 자꾸 내 귓가에서 흩어졌다.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시절, 나의 꿈은 ‘대학 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웠고 즐거운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순전히 그뿐이었다. 누구에게 따로 지도를 받은 적도 없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대학교에 가면 기회가 올 줄 알았다. 지도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에서 한 학년이 지난 후였다.  

 

 ‘꿈을 가진 젊은이를 구한다.’는 포스터를 좇아 간 스튜디오에서 나와 목표가 같은 서너 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처음으로 받아 본 전문 수업. 호흡 하나로 소리가 달라지고 발성하는 자세에 따라 목소리의 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내가 곧 가수가 될 것처럼 들떴다. 처음 녹음실에서 내 목소리를 담던 날은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내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소중하게 품고 나서던 그날 밤엔 손톱만 한 초승달이 웃고 있었다.

 

 아들에게 꿈이 연기자인지 물었다. 방송 진행자가 최종 목표라고 했다. 그 시작을 연기로 할지 뮤지컬로 할지 아니면 개그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아들의 답변이 구체적인 것에 적잖이 놀랐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는 것에 신뢰가 갔다. 막연히 길이 있겠지 했던 내 학창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설계를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지도해 주실 선생님도 찾아놓은 모양이었다. 부모의 허락 없이도 이미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대담함에 놀랐다.

 

 “엄마 꿈이 가수였던 거 알지? 왜 포기했는지 알아?”

 “글쎄…. 왜?”

 나는 그 대담함이 없어서 꿈을 포기했다. 혼자서 키워온 꿈이기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그저 학교생활에 충실한 아이로만 알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떨어져 지낸 부모님으로서는 딸의 꿈이 일탈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 숨 막히는 대결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우겨보면 이길 수도 있는 싸움이었으나 나는 도전장을 내밀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어버렸다. 이미 나는 지고 만 것이었다. 

 

 “학원 등록해. 응원해 줄게.”

 “…….”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다. 부모의 반대를 각오하고 있었을 테니. 오래 전의 나처럼 혼자 뒷걸음치지 않는 아들이 예뻤다. 꿈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들아, 넓은 세상을 향해 네 꿈을 펼쳐라!  


이전 03화 종이 한 장의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