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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공무원이었다. 보고서, 기획서, 보도자료 같은 문서가 일상이었다.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실수 없이. 그런 글을 수없이 썼고, 수정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할 땐 청와대 지시가 밤중에 떨어지기도 했고, 그에 맞춰 문서를 작성하며 새벽을 맞곤 했다. 보고서를 잘 쓰는 직원은 인정받았고, 못 쓰는 직원은 낙오했다. 글이 사람을 살리기도, 누르기도 했다. 나는 그 안에서 버텼고, 승진도 했고, 결국은 퇴직을 했다.
퇴직 후, 가장 먼저 느낀 해방은 ‘글쓰기에서의 자유’였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글, 결재선도, 형식도 없는 글. 그러자 오랜 친구가 말했다. “이제 네 이야기 써봐. 네 안에도 분명 무언가 있을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은 무슨, 그냥 편하게 살래.” 솔직히 말하면, 좋은 글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호기심이 자라났고 그렇게 글쓰기 수업에 발을 들였다. 글쓰기 강사님은 문학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분인데, 그날그날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흔들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생각을 얹고 다시 써보게 만든다. ‘아, 글이란 이렇게도 내 속을 파고드는구나.’
대구에서 근무할 때 존경하던 청장님이 있었다. 늘 말했다. “공무원도 어깨를 내려놓아야 해. 나도 그거 푸는 데만 30년 걸렸어.” 어느 날, 구미의 한 중소기업에 함께 갔을 때 일이었다. 마중 나온 대표가 청장을 지나쳐 다른 직원을 향해 인사했다. 당시 청장을 수행했던 분이 풍채와 나이도 지긋해 청장인 줄 착각한 것이었다. 대표는 당황했지만 청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편한 사람으로 보였다면 그걸로 된 거야.” 사실 언 듯 보면 시골 농부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공무원의 틀을 내려놓기 위해 몸과 표정까지 교정을 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격식을 내려놓는다는 것, 단단하게 굳은 틀에서 벗어나는 일의 가치.
이제 나는, 글을 통해 그걸 다시 배우고 있다. ‘잘 쓴 글’이 아니라 ‘나다운 글’에 대해 생각한다. 테니스를 오래 쳤다고 공을 잘 치는 게 아니듯, 오래 글을 썼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익숙했던 형식을 깨고, 나의 감정과 기억을 솔직하게 꺼내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다.
말보다 글이 앞서는 시대다. 대통령도 보고를 전자문서로 받는다. 나도 이제,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 하나의 감정,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인물, 하나의 공간. 그것들에 천천히, 깊게 다가가고 싶다. 전문가의 말처럼 “디테일이 글의 온도”라면, 나는 이제야 내 체온을 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다산 정약용은 말했다. 둔필승총鈍筆勝聰 ‘서툰 글이라도 기억보다 낫다.’ 내 마음도 그렇다. ‘적자생존’ 적지 않으면 내 삶도 점점 희미해질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내가 살아 있던 순간들을 또렷이 기억하기 위해, 내 안의 말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