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SBS "최백호 낭만시대"방송
물 줬어?”
아내가 물었다. 거실 한 켠, 창가에 조용히 서 있는 고무나무 옆에서. 나는 그때, 소파에 기대어 느슨하게 아침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출근 전 짧은 여유, 반쯤 감긴 눈으로 되물었다.
“무슨 물?”
“이 나무 말이야.”
“무슨 나무?”
“이. 나. 무!”
아내의 말투에 점점 얹히는 짜증이 들렸다. 나는 그때 그 감정의 결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실은 고무나무 앞을 가로막고 선 실내 자전거 때문에 어떤 나무를 말하는 건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궁금함 하나가 화근이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심하게 다투었다. 물을 줬느냐 안 줬느냐, 화분 받침대에 물이 넘쳤느냐 아니냐. 대수롭지 않은 말씨름이 엉뚱하게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생각해 보면, 그런 감정의 부딪힘은 서로의 성향 탓이기도 하다.
아내는 직설적인 사람이고, 나는 조심스러운 편이다. 말보다 마음을 먼저 읽으려 하고, 감정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는 성격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그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서로 바빴고, 부대끼며 살아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떠나고, 둘만 남은 지금. 넉넉한 시간이 오히려 우리를 민감하게 만든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서로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다. 우리는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 연애까지 합하면 마흔 해 가까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늙어온 우리가, 아직도 사소한 일에 마음을 다치는 걸 보면 가끔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문득 마음속에 조용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 물을 줬던가?’
가끔 헷갈린다. 집안 곳곳에 나무가 많다. 거실에도, 베란다에도, 안방에도. 둘이서 나누긴 했다. 안방 베란다는 내 몫, 거실 쪽은 아내 몫. 하지만 가끔씩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 어쩌면 그날도 내가 무심코 물을 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내가 물을 준 후 넘친 걸 나 때문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고. 그러나 무엇보다 더 아리송한 건, 왜 그토록 사소한 일에 우리 둘이 그렇게 큰 소리를 냈는지다.
이제는 싸우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기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게 정말 싸울 일이었을까” 하는 후회다. 그 뒤따라오는 감정은 언제나 같다. 미안함, 서글픔, 그리고 마음 어딘가에 남는 묵직한 여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여백은 좁아지고, 기억은 흐려진다. 하지만 함께 지나온 시간만은 흐려지지 않는다. 사소한 말에 다투고, 물 넘친 화분 하나에 마음이 다치는 날도 있지만, 그런 하루하루가 결국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아내는, 내가 물을 줬는지를 알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 지금 여기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 말 한마디로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 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내가 안 줬다니까.”
그렇게 툭 내뱉었던 말.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말 대신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왜? 물 넘쳤어? 미안해, 내가 줬던가? 잘 기억이 안 나네.”
그 한마디였더라면, 싸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기는 오래도록 남아 있었고, 말의 온도는 훨씬 더 늦게 식었다. 그러고도 나무는 묵묵히 햇살을 받으며 자란다. 우리가 다투든 말든.
그 고무나무처럼, 나도 좀 더 묵묵해져야겠다. 그리고, 조금은 더 따뜻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