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MBC '지금은 라디오시대' 방송

by 글이로

아! 내 방은 언제 생길까?’‘독수리 오 형제’로 자랄 때부터 간직했던 간절한 소망이었다. 단칸방에 살았던 시절. 인생 최고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했다. 형편이 좀 나아질 때도 형제가 같은 방에 기거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어렵게 결혼했다.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고 부모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아들, 딸은 별 탈 없이 자라 각자도생을 해줬다. 그리고 각각 자신을 삶을 위해 떠났다. “애들 방 당신이 쓸래?” 생애 처음 나만의 공간을 아이들이 선물로 주고 갔다.

초등학교 시절 책가방을 던지고 나면 동네 친구들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왔던 날. 별달리 갈 곳도 없어 볏단을 쌓아놓은 구석에 빛바랜 우산을 펼쳤다. 모두 쭈그려 앉아 동그랗게 우산을 모았다. 그 안은 참으로 포근했다. 우리만의 공간에 있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꿈꿔왔던 나만의 방.

햇살이 스며드는 조용한 방. 벽에는 예술작품이 걸리고 창문 너머로는 사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보이는 정원이 있다. 책장은 아끼는 책들로 가득 차 있어 손을 뻗으면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빠질 수도 있다. 방 한편에는 푹신한 소파, 커다란 쿠션도 있다. 휴식과 명상을 하고 테이블 위에는 향긋한 차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을 늘 꿈꾸며 일했다. “문 간 방 당신이 써”

물론 꿈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들이 사용했던 문간방이 결국 내 차지가 되었다. 아직 현업에서 일한다. 보고서를 만들고 사업계획서도 틈틈이 작성한다. 방안에 책상과 노트북 책장, 프린터를 비치한 이유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방이 생겼다는 것만 해도 소스라치게 행복했다. 부족한 노력을 핑계로 돌리고 감읍하며 지낼 것이다.

아내도 의도하지 않게 본인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늦게까지 일하다 보면 자주 문간방에서 잠들곤 했기 때문이다. 우린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서 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휴! 같이 자면 서로 부스럭 소리에 깨고 선잠 잤는데 혼자 자니 편하네” 동감이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나고 있으니 이런 게 다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한편, 나이가 들면서 내심의 욕구는 더 심해진다. 세상사 흥미가 없어지고 정처 없는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바닷가 근처에 세를 얻어 ‘한 달 살기’나 해볼까? 철저히 혼자로 살며 생각 없이 지내면 좋겠다. 인생 후반전 또 다른 노욕인가. 잠시 지나가는 장맛비인가. 아니면 오춘기일지도 모른다. “아이고! 이제 먹고살 만 해지니 그런 잡념이 들곤 하지 아저씨 ”아내가 무섭게 한마디 한다. 갑자기 꿈에서 깬다. 맞는 말이다.

달무리 진 여름밤. 턱을 괴어 하늘을 본다. 별빛 조각들이 내 방으로 떨어진다. 오랜 비밀도 그리움도 숨길 수 있는 작은 내 방. 편안한 행복에 두 팔 벌려 꼭 안아 본다. 어떻게 얻은 독방인데 풀옵션이고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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