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으로 저정하기)
나는 보름달보다 초승달이 더 좋다.
초승달은 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직 다 차오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다.
완전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밤하늘에 나와서 조용히 빛난다.
그 모습이 내겐 어떤 달보다도 용감하게 느껴진다.
“괜찮아, 아직 다 안 찬 달도 이렇게 빛나잖아.”
오늘 밤, 말간 초승달이 내 방 창가에 조용히 걸려 있다.
고요한 밤,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이지, 누군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복잡한데, 저 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없이 떠 있다.
밤은 원래 조용하지만, 유난히 더 고요한 밤이 있다.
그런 밤엔 눈을 감아도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풀지 못한 일들, 하지 못한 말들,
잊고 지냈던 얼굴들이 불쑥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 틈에서 문득 고개를 돌리면, 창문 너머의 초승달이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아직 미완성이라며 조급해하는 나에게,
초승달은 말없이 속삭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직 길이 남아 있어.”
그래서 초승달은 위로다.
쉴 틈 없이 달리다 지쳐버린 밤, 불안이 조용히 찾아오는 그 틈에, 말간 빛 하나로
마음을 데워주는 존재.
초승달은 기다림이기도 하다.
달이 차고 기울듯, 그리움도 차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오늘 같은 밤, 조용히 걸린 초승달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건드릴지도 모른다.
어릴 적, 잠 못 들던 여름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자장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그 멜로디가 어딘가에서 다시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같은 달을 보고 있지 않을까.
오늘도 참 잘 살았다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창가에 걸린 달빛으로 하나 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어떤 날은 용기를 주고, 어떤 날은 위로를 건네며, 어떤 날은 그리움을 꺼내주는 초승달.
그 달이 내 방을 비추고 있다는 건,
내 마음도 이제 조금은 맑아졌다는 뜻일지 모른다.
밤은, 초승달 하나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