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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를 복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각하는 방식까지 똑같이 복사해서 맞은편 의자에 앉혀 보고 싶다. 그리고는 그 복사된 ‘나’를 마주 보며 묻고 싶다.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거야?"
그럴 때면 웃기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상상이 펼쳐진다.
복사된 나는 분명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똑같이 바라보겠지.
둘 다 우물쭈물할 것이고,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를 것이다. 결국 둘 다 똑같은 생각에 갇혀 있어서,
새로운 말 한마디 내놓지 못하고 말이다.
나는 종종 내가 얼마나 단순한 사람인지 놀랄 때가 있다.
조금만 까다로운 말이 나오면 이해가 느려지고, 뭔가 색다른 시도를 하려 하면 머릿속이 금세 복잡해진다.
남들은 잘만 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자꾸 길을 잃는다.
내가 글을 쓸 때도 그렇다. 늘 비슷한 방식, 똑같은 문장 구조, 예상 가능한 결말.
"왜 이렇게 글이 뻔하지?" 쓰고 나서 스스로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복사하고 싶다. 그 복사본에게 다른 생각을 맡기고 싶다.
"너는 조금 다르게 써 봐 줘.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하겠어."
그렇게 부탁해 보고 싶은 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복사본도 결국 나다.
나의 우매함, 나의 단순함, 내가 평생 품고 살아온 고착된 생각까지도 고스란히 복사될 것이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복사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는 건,
아마 지금의 나와 잠시 떨어져 보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 발짝 멀리서 나를 바라보면, 내가 못 보던 나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어쩌면 창의성이란 것도 그렇게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떠오르는 게 아닐까.
물론 화려한 어휘가 언뜻 좋아 보이기는 하다. 마치 진한 화장을 마친 유흥업소 아가씨처럼
그래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단순함 담백한 단어가 나는 왠지 모르게 끌린다.
평론가의 글을 보면 나는 참 복잡하게 나열된 잡화점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금방 이해가 어려운 단어로 빼곡하다.
그 분들의 생각의 깊이를 탓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요즘 ‘새로움’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주 주춤거린다. 참신하고 싶고, 좀 특별해지고 싶고,
창의적이고도 싶다. 그러나 그런 욕심이 지나쳐버리면, 지금 내가 가진 ‘단순함’조차 깎아내리게 된다.
사실 내가 쓰는 단어들, 내가 품고 있는 감정들, 나만의 느린 사고 방식도 나만의 색깔인데 말이다.
꼭 복잡해야만 훌륭한 건 아닐 것이다. 꼭 튀어야만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오늘은 나를 복사하는 상상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단순한 나를 있는 그대로 껴안아 보기로 한다. 비록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 나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분명 누군가는 공감해줄 것이다.
"참 별 거 없는 얘긴데,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하네."
그런 말을 듣는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가끔은 나를 복사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