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일까
어느 날 상담사가 말했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에게 주어버렸다'라고.
"네에?"
"엄마가 할머니께 입양 보내버린 거예요."
"뭐라고요. 그럴 리가요."
나는 이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가끔 할머닌 내가 태어났을 때 내게 푹 빠졌다고 했다.
내가 첫정이라고 하면서.
스무다섯 살 때쯤이다. 약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할머니께 "할매,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라고 물어봤다. 할머니는 "좋았지"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무조건 좋았지."라고 덧붙였다. "ㅇㅇ이가 태어나서, 더 좋았지. " 이 말은 내 밑에 남동생이 태어나서 내가 더 좋았다는 것이다. 터를 잘 팔았다고.
할머니는 육이오 때 작은 아들을 잃었다. 금화지구에서 전사를 했고 국립묘지 금화지구 전사자 구역에 안치되어있다. 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마음을 난 짐작 못한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시동생 잡아먹었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엄마는 참다 참다 말을 했다고 한다. "시집올 때 죽고 없었는데.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냐."라고. 그 후 할머니는 이 말을 다시는 안 했다고 한다.
아들을 잃고 아픈 마음에 엄마에게 억지까지 부린 할머니에게 갓난아기는 새로운 기쁨이었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태어났을 때 내게 푹 빠졌다고 한 할머니 말이 이해가 간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날 밤. 할머니가 거주하시는 안방으로 보내졌다. 내가 울 때면 할머니는 빈 젖을 물렸다고 한다. 아직도 할머니 등에 업혀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법 클 때까지 업혀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외출하셨던 할머니가 나를 업고 집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다 큰 애를 업고 다니면 허리 아픕니다. 그만 업고 다니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얼른 할머니 등에서 내렸다. 할머니에게 말을 끝낸 엄마가 내게 말했다. "할머니 허리 아프니까. 다 큰 애가 업혀 다니면 안 된다."라고.
엄마가 나를 못 업게 했지만. 할머니는 집 밖에 나가면 길바닥에 엉거주춤 앉아 내게 등을 내밀었다. 얼른 할머니 등에 업혀서 할머니 옆구리와 팔 사이에 끼여있는 두 다리를 까닥 까딱 흔들었다. 집에 돌아올 때도 물론 할머니 등에 업혀서 다리를 까닥 댔다. 할머니도 몸을 흔들며 장단을 맞췄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할머니 등에서 내리려고 버둥거렸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근데 할머니는 내 다리를 꽉 잡고 내려주지 않았다.
할머니께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라고 물었던 그즈음일 것이다. 할머니의 담뱃재떨이를 발로 차 버렸다. 할머니는 댓 담배를 피웠는데 그 재떨이가 날아가 엎어진 것이다. 담뱃재가 방바닥에 흩뿌려졌다. 할머니는 흩어진 담뱃재를 쓸어 모으시면서 "얼마나 바빴으면." 딱 이 한마디만 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보니, 매일매일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스타킹을 아무 데나 벗어두기 일쑤였다. 할머니가 스타킹을 빨아놓았다. 올이 나가서 신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께 올이 빠져서 못 신는다고 빨지 말라고 해도, 할머니는 손녀가 힘들까 봐 날마다 빨아놓으셨다. 얼마 전에 할머니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을 때. 병원에서 잘못하여 뼈가 약간 어긋나게 붙어버렸다. 이 후유증으로 할머니의 팔이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큰 남동생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갔다. 사모제가 지난 며칠 뒤였다. 아침을 먹고 개수대에 그릇을 넣는데, 오래전에 상담사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께 주어버렸다던 그 말. 할머니 사랑이 엄마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던 그 말.
'그 말 맞네.'
내 맘이 맞장구친다.
순간,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텅 빈다. 공중에 떠 있던 내 발이 스르르 내려가 주방 바닥에 닿는다. 안도의 숨이 내쉬어진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다는 말, 이런 거구나. 가라앉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렸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가 어린 내게 작은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할머니가 "얼라가 우째 하노. 내가 하께."라고 하는 바람에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전혀 시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엄마가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곧 할머니에게 시키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심부름 하나 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줄줄 태어났지만. 동생들을 돌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큰 남동생이 1학년에 입학했는데.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간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나 아버지나 할머니가 내게 동생 데리고 학교에 가란 말을 했을 법도 한데. 왜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간 기억이 전혀 없을까.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어른들도 30분이 넘게 걸리는데.
막내처럼 자랐다.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는데도. 고삼 때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전까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오빠와 언니가 많은 집의 막내딸인 줄 알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밖에 몰랐다. 나밖에 몰랐다는 글을 쓰는데 왜 모니터 화면이 뿌옇게 변할까. 왜 심장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릴까.
생생한 기억이 더 있다. 다섯 살쯤인 것 같다. 어느 날 할머니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당연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는 줄 알고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할머니가 안 된다며 나를 떼어놓았다. 나는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며불며 발버둥 쳤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고, 엄마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ㅇㅇㅇ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가는데 어떻게 데리고 간단 말이고."라고 말하면서.
엄마가 집 밖에 나갈 때 따라가려고 한 적이 없다. 그냥 볼 일 보러 나가나 보다 생각한 내가. 왜 할머니를 따라가려고 발버둥 치며 울었을까. 왜 할머니와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을까. 집에 엄마가 있는데도 말이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징징거려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떼를 쓰거나 화를 낸 기억도 없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 시절에도. 성인이 된 후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왜 엄마에게 짜증도 못 내고 불평도 못하는 것일까.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기 때문일까.
엄마가 내게 동생 기저귀나 숟가락 하나라도 가져오라고 종종 시켰으면 내가 그것을 엄마에게 갖다 주는 사이 엄마와 딸의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인데. 할머니의 권위에 눌린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엄마와 나의 거리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내가 아기를 낳아 키울 때, 그냥 안고 싶고 얼굴 비비고 싶었다. 아기의 피부와 내 피부가 맞닿을 때의 그 느낌. 엄마도 느꼈을 것인데. 아기가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는 모습조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주던데. 엄마도 그걸 느꼈을 것인데. 잠시라도 아기와 떨어지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던데. 엄마가 정말 나를 할머니에게 줘버린 걸까.
할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울고 불며 떼를 쓰던 나를 회초리로 때리던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떼를 쓰는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시어머니가 딸을 빼앗아 갔다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컸을 것 같다. 그보다 내가 엄만데. 엄마가 집에 있는데 말이다. 할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다니!라는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더욱 컸을 것 같다.
할머닌 할머니대로 아들을 잃은 슬픈 마음을 잊게 해주는 나를 독차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얼라가 우째하노. 내가 하께." 란 말의 속뜻은 '심부름 같은 거 시키지 마라. 이 애 내 거니까.'란 뜻이 아니겠는가. 이 말은 엄마와 나의 관계를 차단하는 말이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서로 나를 차지하려던 싸움 아닌 싸움을 종결짓는 말이었다.
엄마도 알았을 것이다.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면 나와의 관계가 멀어진다는 것을.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 못했다. 할머니의 권력에 진 것이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 밤, 나도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울었을 것이다. 그때 할머니가 빈 젖을 물린 것일 테고. 자연스레 엄마와 나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내 마음속의 엄마 자리에 할머니가 들어앉은 것이다. 이 일은 벽하나 사이로, 엄마와 딸이 생이별을 한 사건이고. 딸이 엄마를 잃고 엄마는 딸을 빼앗긴 사건이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께 줘버렸다던 상담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사람이 개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개가 사람을 선택해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할머니는 갑이었고 엄마는 을이었다. 36개월짜리 어린 나도 할머니와 엄마의 서열관계를 알았을 것이다. 권력이 더 센 갑인 할머니와 사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께 줘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할머니를 선택한 것이다. 엄마 바라기를 계속하다간 할머니의 권력 앞에서 버림받을 수 있으니까. 엄마를 잊어야 했던 것이다.
개가 인간을 선택하여 살면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야생을 뛰어다니던 자유로운 삶일 것이다. 자유롭게 숲 속이나 벌판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날 때마다 개는 고개를 쳐들고 아우 우~ 길게 우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할머니를 엄마로 선택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뭘까? 그건 엄마의 심장소리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도 안겨도 내가 듣는 소리는 할머니의 심장소리였지 엄마의 심장소리가 아니었다.
조금 전에 심장이 시큰거리며 눈물을 쏟아낸 이유를 알겠다. 개가 자유로운 삶이 그리워서 아우 우~ 하울링 하듯 내 심장의 하울링 소리인 것이다. 할머니의 심장소리로는 대체 불가한 엄마의 심장소리. 그리운 내 심장의 하울링 소리인 것이다. 아우 우~ 아우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