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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 나무꾼이 착해서 선녀와 결혼했다면

그럼 선녀는.

by 할수 최정희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라고 물어보면. '착하게 살아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무꾼이 착해서 선녀와 결혼했다면. 선녀는 무슨 잘못을 해서 나무꾼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줬더니 사슴이 은혜를 갚는다면서. 연못에 선녀가 목욕할 때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면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해서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선녀들이 사슴에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나. 이야기 속에는 없다. 사슴이 원수를 갚고 싶을 만큼 깊은 원한 없다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냥꾼에게 쫓기는 신세를 한탄하던 사슴. 평화롭게 사는 선녀들을 질투해서 벌인 질투극일까.


나무꾼은 연못으로 간다. 남의 물건을 감춰도 되는지, 사실상 훔치는 건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녀의 날개옷을 하나 집어 든다. 결혼하기 위해서.


어릴 적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는 것과 선녀와 결혼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아이를 둘 낳은 선녀에게 나무꾼이 날개옷을 보여줄 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아이 둘을 안고 하늘로 가버릴 때, 나무꾼이 불쌍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남의 물건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착한 나무꾼이란 말 때문에 모든 것을 용납하고, 선녀의 억울함은 배재시키다니.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본다. 선녀가 나무꾼과 결혼하고 싶었을까. 결혼 후 행복했을까. 집안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게 선녀가 바라는 삶이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한 결혼. 행복할 수가 없다. 언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하늘로 돌아가는 날만 기다렸을 것이다.


날개옷을 한 번만 입어보겠다고 하고선 날개옷을 입자마자 아이 둘을 안고 하늘로 날아간 선녀. 거짓말을 한 것이 잘못일까. 나무꾼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했더라면 날개옷을 찢어버리고 하늘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로 돌아갔더라도, 나무꾼을 하늘로 불러들였거나 다시 나무꾼의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뒤 선녀와 아이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나무꾼. 사슴의 말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나무꾼이 선녀와 아이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 결말. 말이 되냐 말이다.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나무꾼이 나타나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고마웠을 것이다. 날개옷을 훔쳐간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으니까.


나무꾼이 자신의 날개옷을 훔쳐간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 때도 선녀는 여전히 나무꾼이 고마웠을까. 나무꾼과의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싶었을까.


나무꾼이 날개옷만 훔쳐 간 게 아니잖는가. 자신의 삶을 엉뚱한 곳으로 굴려버린 사람인데. 그냥 용서가 됐을까.


나무꾼은 자신이 결혼하기 위해서 한 것이니까 사슴의 감사한 마음이 담긴 거니까 날개옷을 감춘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선녀가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고 겪었을 고통을 생각조차 못한다.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고 선녀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나무꾼을 남편이라고 선녀가 반갑게 맞이한다는 것 말이 되는가.


하늘에서 아버지를 만난 아이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엄마의 날개옷을 훔친 도둑이라는 것과 엄마의 삶을 짓밟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버지인 나무꾼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등장한 시대라고 하더라고 문제가 있고 이 시대 기준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더 많다.


그 시대에도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을 것인데. 나무꾼은 남의 것을 훔친 도둑인데 벌을 받지도 않고 행복하게 산다. 사기결혼을 했는데도 행복하게 산다. 이 이야기는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부장적 제도가 낳은 이야기지.


하늘에서 선녀를 찾으러 왔다는 이야기가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도 없는 선녀였을까. 누군가는 선녀를 찾아왔다고 믿고 싶다. 선녀가 너무 안됐으니까. 하늘에서 선녀를 찾으러 왔다가 선녀가 외간 남자와 사는 것을 발견하고 집안 망신이라며 그냥 돌아갔다고 믿고 싶다. 하늘에도 가부장적 시대였을 테니까.

한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줬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다면서 다른 사람의 귀중한 것을 훔치라고 하고. 훔친 물건의 주인을 곤궁에 몰아넣고. 곤경에 빠진 그 사람을 구해주면서 결혼을 하라고 시킨다고 해서 그대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겠는가.


나는 나무꾼이 착한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내 속에 있는 나무꾼이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사고체계를 도려내야 한다. 생선회를 만들 때 생선의 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포로 뜨듯, 나를 해체하고 잘못된 의식이나 가치를 발라내야 한다.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근데 나무꾼이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내가 착한 사람일 수 있겠나. 정신 나간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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