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8] 되돌아오는 길

불안

by 할수 최정희

늦깎이 대학생이다. 2학기 기말시험 준비를 위해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간다. 잠깐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드니 버스가 도서관 앞 정류장을 지나쳐간다.


버스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되돌아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어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스토리텔링 생태공예 프로그램 교육을 하기로 했다. 이력서를 보냈는데. 내게 학위가 없어서 내 이름으로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학위가 없으면 강의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그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숲해설가 교육과정에서 스토리텔링 생태공예교육을 몇 년째 해오고 있는데.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학위가 없어서 내 이름으로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는 작년 12월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방송대 교육학과 3학년에 편입학 지원서류를 냈다.


82년 생 김지영 중의 한 사람인 나. 몇 년 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2년을 수료하고 그만두었다.


편입학 서류를 내고 난 며칠 후였다. 책장에서 우연히 방송대 교육학과 교재를 발견했다. 번갯불처럼 한 생각이 떠올랐다.


몇 달 전 책장에서 방송대 교육학과 교재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 책들이 여기 꽂혀있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 후 여러 번 이 교재들이 왜 여기 있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방송대 교육학과 교재가 왜 여기 꽂혀있지?" 남편이 말했다. "작년에 편입해놓곤 못하겠다며 그만뒀잖아."


'아, 그랬네. 작년에 편입했다가 그만두었네.'


방송대 교양학과 2년을 수료한 다음엔 농학과에 편입했다가 그만두고 사이버대에 편입학했다가 그만두었다. 작년에 또 방송대 교육학과에 편입했다가 그만두었다.


올해 등록하면 되는데.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교육학과에 다시 편입학 서류를 낸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대학에 편입하고 그만두고를 반복할까. 그리고 교육학과에 편입학한 사실이 기억에서 사라졌을까.


생각해보았다.


3월 학기가 시작되면. 매일매일 정체를 모를 뭔가가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정체를 모를 뭔가가 등 뒤에서 몰려온다면 앞으로 도망을 칠 수 있을 것이고. 앞에서 불안이 몰아쳐 온다면 뒤로 돌아서 도망갈 수 있을 텐데.


이 불안은 사방에서 몰려들어 휩싸일 수밖에 없는 불안이다.


내가 이 불안을 견뎌내지 못하고 공부를 포기하는 것인데. 내가 공부를 포기하는 순간. 이 불안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내가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정체 모를 뭔가에게 사로잡힐 것 같은 불안에서 놓여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대학교 공부를 포기하면 스르르 사라지는 불안. 정체가 뭘까.


고삼 때로 돌아간다. 폐결핵에 걸린 아버지. 돌아가시면 우리 가족 어떻게 살아갈까. 불안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꿈을 포기했던 고삼 때의 내 불안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올 3월 학기 초에도 그랬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중간 과제를 해야 하는데. 또 정체 모를 불안에 휩싸였다. 거의 포기할 뻔했는데.


그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그것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대학교가 고삼 때 내 안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던 것이다.


열아홉 살의 내가 느꼈던 내 안의 불안과 싸우면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중간 과제를 하고 기말시험을 쳤다.


열아홉 살의 내가 느꼈던 불안과 싸워 이겨내야만 예순 후반의 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2학기가 시작될 때 대학교라는 존재가 주는 내 안의 불안과 맞붙어 싸울 각오를 했더니. 불안이 꼬리를 보이며 내게서 물러가기 시작했다.


도서관 앞 정류장을 지나쳐갔다가 버스를 떠나보내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듯


정체를 알아차리고 맞붙어 싸우려고 덤비니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는 내 안의 불안.


버스처럼 떠나보내면서 열아홉 살의 나에게서 예순 후반 내게로 돌아오는 중이다.


생태공예힐링핼퍼 1호/ 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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