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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Feb 14. 2023

극사실화 같은 풍경

그럴 수도 있지

몇 년 전에 명상심리전문가 과정을  수강할 때였다. 첫날 첫 수업 때 교수님의 인도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갑자기 팔공산 수태골 풍경이 내 얼굴 양옆으로 휙휙 지나쳐갔다. 눈을 감고 있는데 수태골을 걸어서 올라갈 때의 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수업이 끝날 때도 명상을 했다. 이때는 잘 익은 노란 군고구마가 눈앞에 둥실 떠올랐다. 눈을  감고 있는데 극사실화처럼 현실보다 더 생생한 풍경과 군고구마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교수님께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질문을 했다. 교수님이 집중을 잘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집중을 잘한다고 해서 산을 걸어 올라가는 것 같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질까.  군고구마가 눈앞에 둥실 떠오를까.


시간이 흐른 후 뇌과학에 관한 강의를 듣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눈을 감으면 뇌는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매우 답답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 답답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상을 조합해 낸다는 것이다.


이 기적 같은 일이 커다란 영적 경험이라도 되기를 바랐는데. 집중을 잘해서란  교수님의 대답이 사실이었다. 


내 뇌만 놀란 것이 아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영상으로 인해 마음도 놀랐다. 또  내가 뇌에게 조금의 빛도 전달되지 않을 만큼 눈을 꽉 감았다니 그것도 놀랍다.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멍청이라더니. 명상을 한다고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새를 못 참고 호들갑이라니." 라며 뇌를 타박한다.


근데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당황해서 우리도 간단한 일조차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걸 나무랄 수 없지 않은가.


수 십 년 살아오면서  눈을 이렇게 꽉 감은 적이 없으니까. "처음 겪는 일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뇌에게 말해준다. 이젠  눈을 꽉  감아도 뇌가 수태골 풍경이나 군고구마 같은 영상을 만들지 않겠지.


우리가  무엇인가에 놀라고 당황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해치는 일이거나  풀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것이어서 아니라, 낯설어서다.  


 낯선 일을 많이 경험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만큼 새로운 상황에서도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일부러  낯선 상황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매일 가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낯설어서 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외출할 때 혹은 시장에 갈  때라도  다른 길로 조금 돌아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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