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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Sep 19. 2023

햇밤과 자연물공예 양 만들기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일까?

남편이 햇밤을 사 왔다. 나는 햇밤을 삼분의 일 쯤 덜어내 씻었다. 밤 껍데기 칼로 조금 잘라냈다. 껍데기를 자른 밤을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구웠다. 군밥 껍데기를 까서 입에 넣었다. 남편은 너무 맛있다고 했다. 내 입에는 밤이 퍽퍽했다. 다음날 나머지 밤의 절반을 냄비에 물을 넣고 삶았다. 도마 위에 삶은 밤을 얹어놓고 칼로 가운데를 잘랐다.

숟가락으로 밤 속을 퍼먹기 위해서였다. 반으로 가른 밤을 보자마자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밤을 다 먹고 난 후에 밤 껍데기 속에 남은 찌꺼기를 숟가락으로 긁어내고 물로 씻었다.


며칠 뒤 마른 밤껍데기와 마른  안개꽃을 꺼냈다. 밤껍데기는 양의 얼굴, 마른 안개꽃은 양털이 되었다. 밤껍데기를 꺼낼 때 양을 만들 계획을 하진 않다. 밤껍데기와 마른 안개꽃을 꺼내놓고 보니 양이 떠올랐다.


자연물공예를 할 때 미리 뭔가를 구상한 다음 만들지 않는다. 그냥 재료를 꺼내서 자르고 붙이다 보면 양이되고 개가 된다. 개는 고등 껍데기와 호두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나는 잘 잊어 비린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냈다. 방금 만든 양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조명기구를 사용하려고 조명기구를 씌워놓았던 검정비닐을 벗겨냈다. 조명기구와 카메라를 연결하는 블루투스 기기는 있는데, 카메라에 장착하는 블루투스 기기가 안 보였다.


카메라와 관련 있는 것들을 넣어두는 장식장 안을 샅샅이 뒤졌다. 분명히 넣어두었는데 안 보인다. 여기저기 있을만한 곳을 다 뒤져도 안 보인다.


카메라에 장착하는 조명 블루투스기기는 자연물 만들기 할 때 사용하는  바구니 안에 들어있었다. 조명 블루투스기기를 찾고 나니 이번엔 카메라 모니터가 말썽을 부린다. 몇 번이나 전원을 켜봐도 모니터 화면이  새까맣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사용설명서를 찾아 읽어보았다. 뷰파인더 옆에 있는 모니터 설정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한다.


며칠 후 대충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젠 카메라의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길 차례다. '앗!' 카메라와 노트북을 연결하는 선이 안 보인다. 분명히 카메라를 넣어두는  장식장 안에 넣어둔 기억이 나는데. 책상서랍을 뒤진 후에 겨우 찾아냈다.


조명 블루투스기기와 카메라와 노트북 연결선을 장식장 안에 넣어두었는데. 왜 다른 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내가 그것들을 놓아두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장소와 실제로 그것들이 있는 장소가 다를까? 그것들을  옮겨 놓을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억울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 심지어 행복했던 일까지 전부. 어쩌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내 기억을 믿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썩 좋은 일이 아니다. 


*"나에게 진정한 순간은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자미상) 이 글을 읽고 난 후에 나는 내 기억을 믿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일들, 즉 억울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 행복했던 일들 모두 나에게 진정한 순간이었다고 말이다. 내가 앞으로도 잊지 않고 이 일들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에게 진정한 순간은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내가 나의 진정한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바꿔 말하면, 조명 블루투스기기와 카메라와 노트북 연결선을 놓아두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지 나의 진정한 순간이 아니다. 일상적인 모든 일을 기억하면서 살 수 없는 일이다. 이 일은 내가 물건을 아무 데나 두는 버릇이 만들어낸 일뿐인데.  내 모든 기억을 믿지 못하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출처] 기억에 대한 명언 30개 모음|작성자 땅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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