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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y 29. 2022

 깨진 유리공

   나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

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고 그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 했다. 나는 이 말을 살짝 바꿔본다. 내가 나를 다시 바라보고 내가 나에 대해 글을 쓰고 내가 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고.


나는 이 세 가지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기로 한다. 먼저 나는 나를 만드는 제작자로서 나를 다시 바라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김 교수의 '세 가지' 유튜브 동영상에서 회복탄력성에 대한 강의를 듣는데 내가 보였다.                                                  


나는 ‘깨진 유리공’이다. 열아홉 살 때 깨진. 회복탄력성이란 어떤 충격이나 좌절을 극복하고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힘을 말한다. 고무공은 세차게 내리칠수록 더 빨리 더 높이 튀어 오른다. 만약 유리공을 떨어뜨리거나  내리친다면 튀어 오르기는커녕, 땅에 닿는 즉시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만다.*  


고삼 때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셨다. 폐결핵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아버지가 기침할 때 피를 토하는 에 걸린 것이 무서웠다. 폐결핵에 걸린 사람은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휴양해야 한다는데. 아버지는 계속 일을 하셔야 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국도변 면사무소 바로 건너편이었는데, 아버지의 일터이기도 했다. 그긴 면소재지이지만 인근 대도시의 시내버스까지 오가는 곳이라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었다. 폐결핵에 걸린 아버지가 공기가 좋지 않은 곳에서 계속 일하다가 병이 깊어져 돌아가실까 불안했다. 편찮으신 아버지가 내 등록금 마련하는 스트레스까지 받다가 병에서 회복 못하실까 염려가 되었다.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면서 꿈까지 내려놓고 말았다. 이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꿈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유리공처럼. 깨진 유리 파편이 내 몸 구석구석에 박힌 듯 아팠다. 난 아픈 나를 방치했다. 나를 직시하는 걸 회피했다. 아픈 나를 마주 대하는 것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학을 못 간 것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제일 난감해하는 질문을 종종 했다. 그 말은 "뭘 전공했어요?"란 말이었다. 나는 "가방끈 짧아요."라고 얼버무렸다. 내가 이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순 살이 넘어서였다.


어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갈 거라면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나는 다르게 살기로 결정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르게 살려면 변해야 하는 데. 며칠 만에 내가 어찌 변하겠는가. 나를 두려움과 불안과 낙담과 수치심에서 꺼내는 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바람이 빠진 고무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을 넣기만 하면 튀어 오를 테니까. 나는 산산이 깨진 유리공. 먼저 깨진 조각을 찾아 맞추고 붙여야 한다. 유리공은 깨진 조각을 아무리 잘 맞춰 붙여도 튀어 오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깨진 조각을 모두 찾아내더라도 제대로 이어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수십 년 살아오는 동안 내 속의  깨진 유리 조각, 저들끼리 부딪쳐 깨진 것도 있을 것이고. 이 사람과 저 사람, 이런저런 상황에서 부대끼며 살아왔는데, 마모되지 않은 조각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닳아버린 조각들을 서로 이어 붙이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깨진 조각을 모두 찾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유리공을 깨지기 전의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행히 유리공의 가장 뾰족한 조각은 찾기 쉽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불안에 떤 이유는 엄마의 능력으로는 할머니와 나와 동생 다섯 명을 먹여 살릴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열아홉 살의 내가 가족 모두 떠맡아야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꿈을 포기하고 절망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받은 월급을 봉투째 아버지께 갖다 드리면서 낙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탈출구가 없어 보였다.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꿈을 향해 나가고픈 욕구를 꾹꾹 눌렀다. 이 일이 있는 후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로 한다.


나는 나를 만들어가는 제작자로서, 깨진 유리공 내게 다음 것들을 요구한다. 제일 뾰족하게 보이는 유리 조각 한두 개만 고를 것. 그 조각의 전후좌우 맥락을 살펴볼 것.


유리공 조각에서 가장 뾰족한 그 조각을 집어 들고 다시 살펴본다. 유리공 깨진 조각에 ‘불안과 두려움, 좌절과 낙담’이란 이름을 붙인다. ‘불안과 두려움, 좌절과 낙담’의 조각은 나를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게 할 힘이 없지만. 딛고 지나갈 징검다리의 역할은 할 것 같다. 깨진 유리공의 뾰족한 조각들을 모아 내가 건너갈 징검다리를 만드는 일. 이것이 내가 나로 사는 길이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세바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행동하는 철학자 최진석, 스타강사 김창옥의 강의를 들었다. 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심리상담가 박상미 등 심리 관련 강의와 진화학, 뇌과학, 우주의 탄생 강의를 시청했다. 오랜 기간 동안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꿔줄 만한 유튜브 강의를 온종일 듣기도 하고 관련된 책을 읽었다.


대학 진학과 꿈을 포기한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런 선택한 것은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를 받아들였다. 대학을 못 간 것은 나를 불편하게 할 수는 있어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란 것을 받아들였다.


나를 만드는 제작자가  내게  말한다. "깨진 유리공아, 깨진 조각 찾으려 애쓰지 말고, 좀 더 깨지는 건 어때?"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펄쩍 뛰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나를 만드는 제작자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이대로 살아?" "도전하지 않고 어떻게 나로 살 수 있겠어."라고.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더 깨질 게. 산산조각 나면 더 좋겠지? 그러면 더 반짝이겠지."

나는 깨진 나를 깨치기 위해 글을 쓴다. 산산조각으로 깨질 각오를 하고.


*김 교수의 세 가지 유튜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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