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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pr 10. 2024

[100-37] 노든, 코끼리에서 코뿔소로 건너가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읽고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읽고, 별점 5점 만점을 주었다.  이 책은 나로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긴긴밤의 화자는 이름 없는 펭귄이다. 이 펭귄에겐 세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코뿔소 노든은 이들 아버지 중 한 명이다. 코뿔소가 펭귄의 아버지라니! 어떻게 하여 코뿔소가 펭귄의 아버지가 되었을까? 


노든은 코끼리 동물원에서 살아온 코뿔소다. 그러니 펭귄에 대해 아는 것이 있겠는가! 근데 이름 없는 펭귄은 말한다. 노든은 " 한 존재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존재 즉 자신에게 주었다."라고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동물원에서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화롭고도 안락하게 살았다. 그런 그가 코끼리동물원을 나와 자신과 닮은 코뿔소를 만나 행복과 슬픔과 고통을 겪었다. 또 펭귄 치쿠를 만나고, 치쿠를 만나 알을 바다로 데려가면서 기쁨과 우정 그리고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인간에게 가족을 잃은 노든. 인간을 향한 원한과 복수심을 불태운다. 그렇지만 노든은 복수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면서 살아낸다. 윔보와 치쿠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알을 바다로 데려가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노든이 코끼리동물원에서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고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해 보라. 코뿔소로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긴긴밤에 별점 5점 만점을 준 이유는 이렇다. 이름 없는 펭귄의 아버지, 세 명이 긴긴밤을 살아내는 모습에서 우리가 왜 평안함과 안정적인 삶에서 탈출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든이 코끼리동물원을 나온 뒤,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슬픈 일을 겪었지만 그것이 코뿔소 노든을 코뿔소로 살게 하는, 진정한 행복한 삶이었다.


이 이야기는 코뿔소 노든이 코끼리동물원을 나오기 전과 나온 후로 나눌 수 있다. 노든은 코끼리동물원을 나온 것이 자신의 삶 중에서 몇 가지 후회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노든은 여자 코뿔소를 만나 사랑하고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아내와 자녀를 잃는 슬픔을 겪었고 인간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인간에게 복수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코끼리동물원에 살 때 노든은 자신이 어려서 코와 귀가 덜 자란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도 코와 귀는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란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코끼리로 살았다. 


노든이 코끼리동물원에서 살아갈지 바깥세상으로 돌아가야 할지 결정해야 할 날이 다가왔다. 노든은 코끼리동물원에서 어린 코끼리를 돌보면서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꾸 머뭇거려졌다.  왜냐하면 자신에겐 긴 코 대신 왜 뿔이 있는지 궁금했다. 또 코끼리처럼 생각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이 코끼리가 아닌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노든이 자신이 코끼리가 아닌 것을 깨달았지만, 코끼리동물원에서 인간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안하게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노든은 코끼리동물원에서 살지 않고 바깥세상으로 나왔을까? 코끼리동물원에서 나온 것을 왜 후회하지 않을까에 대한 답을 행동하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말에서 찾아본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단 하나의 나오 존재하는 것"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우리에겐 정해진 대답이 아닌, 꾸준하고 성실한 질문이 필요하다. 대답은 나아가기를 멈추는 소극적인 활동이고,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다."


노든은 자신에게 왜 긴 코 대신 뿔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코끼리에서 코뿔소로 건너갔다. 노든이 코뿔소로 살아낸 것은 코끼리동물원을 나온 이후다. 당신은 나로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 당신은 코끼리동물원을 박차고 나왔는가? 아니면 아직 갇혀있으면서 머뭇거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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