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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글썽였다.

한글교실에서

by 할수 최정희

담당 사회복지사가

"연말 보고서 작성에 필요해서요. 어르신들이 수업 참여한 소감을 짧게 써주면 좋겠어요. "

라며 말을 시작했다. 나는

“좋네요. 교육생들과 글쓰기를 허고 싶었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이 사회복지사는 얼마 전에 인사 이동할 때 새로 한글반을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 이 일을 하게 되어 소감문을 받아야 하는 걸 몰랐다며 늦게 말해 죄송하다고 했다. 나 역시 올해 이 일을 시작해서 몰랐다.


노인 교육생들은 지나온 삶 혹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삶에 관한 이야기나 편지를 쓰면 첨삭해 주겠다고 했지만 쓰는 사람이 없었다. 글자를 쓰는 것이 힘든데 글을 쓰기는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그런데도 연말 보고서에 필요하다고 하니 몇 분이 쓰겠다고 했다.


한분 한분과 대화를 하면서 수업할 때 있었던 일 중에서 쓰도 되고 과거의 경험을 쓰도 좋다고 했다. 한분은 온갖 약초를 이고 팔러 다녔다고 했다. 한분은 아버지가 여자는 길쌈을 배워 시집가면 된다며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한분은 시집살이가 너무 고됬다고 했다.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씻기는 일까지 했고 결혼도 시켰다고 했다. 집안일이 힘들었지만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한분은 부모님이 다른 형제자매는 학교에 보내주고, 장녀인 자신만 집안일을 시키며 학교에 안 보냈다고 했다. 이분은 어느 날 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학교에 보내달 라고 했다. 어머니가

“이 가시나가.”

하면서 혼냈다고 했다. 울면서 시집가면 친정에 절대로 안 온다며 소리쳤다고 했다. 그때 어머니께 화를 내 미안하다고 했다.

“잘하신 거예요. 잘못한 게 아니에요. “

라고 한 뒤 이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생들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분은 국민학교 입학을 했는데 너무 멀어서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소아마비로 다라를 저는 분은 아이들이 병신이라고 놀려서 학교에 안 갔다고 했다. 부모님이 가라고 가라고 했지만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분은 “가난해서 못 갔지. 밥을 못 먹고 굶었으니까.”라고 말하는데 눈에 눈물이 글썽거려 말을 잇지 못했다. 울컥해진 마음이 가라앉히려고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마음이 진정되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나는 이분을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분은 글을 못 쓰겠다고 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중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나간 삶에 대해 글을 쓰려면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을 마주쳐야 하기 때문인 걸. 혼자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다 보면 그 사람에게 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란 걸.


한글을 배운 뒤 간판을 읽을 수 있어서 어디 가는 버스인지 알 수 있어서 은행에 갔을 때 이름을 쓸 수 있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생각해 본다. 간판을 못 읽는 버스정류장에서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모르는 은행에서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삶이 얼마나 막막했을까를. 어린 자녀에게 글을 깨우쳐야 할 때 글자 하나 가르쳐 줄 수 없는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수업 중에 담당사회복지사님이 내년에 글을 쓰면 책을 만들겠다고 하더란 말을 전했다. 자신이 쓴 글이 책이 되어 나온다니 대부분 기뻐했다. 나도 기뻤다. 내년 수업 목표는 이분들이 자신의 삶을 글로 쓰도록 돕고 그 글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책이 되어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어서 내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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