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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창창했다.

딸과 함께

by 할수 최정희

딸과 둘이서 바닷가를 걷는다. 햇빛은 쨍쨍하고 바람은 쌀쌀맞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하고 나온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얀 파도가 휘몰아쳐온다. 풀쩍 위로 솟구친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와 하늘로 뛰어오른다. 한참을 서서 파도를 바라본다. 파도는 숨이 차지 않나. 지치지 않나. 저렇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높이 뛰어오르기를 하고 또 하는 걸까?


파도가 아까보다 더 높이 펄쩍 뛰어오른다. 이번에도 바닷물이 파도의 발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파도의 무릎이 스스로 꺾이고 만다. 파도는 또 휘몰아쳐온다. 바닷물이 더 세게 발을 붙잡고 늘어지는지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다. "삼세판이야." 하듯 파도는 으르렁 소리치며 다시 달려온다. 바닷물은 왜 파도의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걸까? 아무리 애를 써서 뛰어올라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데도, 파도는 뛰어오르기를 계속한다.


몽돌해변에 도착했다. 까만 몽돌을 밟으며 걸었다. 좀 떨어진 곳에 갈매기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있다.


"저기 갈매기들이 회의하고 있나 봐."

갈매기들이 놀라 날아갈까 봐 멀치감치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어떤 사람 둘이 갈매기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갈매기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갈매기가 날아오르자 이 사람들은 뒤로 돌아갔다. 딸이 말했다.


"갈매기들이 불쌍하다. 쓸데없이 고생하네. 쉬지도 못하고."

"그래 그런 것 같네. 그래도 저렇게 소소한 고생은 도움이 되기도 해. 만약에 천적이 다가온다고 해 봐. 갑자기 날아오른 경험이 없다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어떻게 재빨리 도망갈 수 있겠어?"


몽돌의 얼굴은 까맣고 동글동글한데 귀엽기까지 하다. 커다란 돌이 파도에 닳고 닳아 귀여운 몽돌이 되기까지 피부가 얼마나 벗겨져 나갔을까? 벗겨진 피부에 파도가 쓸고 가고 쓸고 가고 아팠던 세월 얼마나 길었을까?


"그건 옛날 일이야. 옛날 같이 아프지 않아. 옛날엔 내게 모가 있었어."


몽돌이 이어 말한다.


"차르르 차르르르 내 노랫소리 들어 봐,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 아냐. 아참, 요즘 말로 하면 공기반소리반이지. 파도의 철썩 소리와 화음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나."


몽돌이 계속 말했다. 이때까지 삶 중에서 파도와 이중창을 하면서 지내는 요즘이 가장 좋다고. 지금도 점점 피부가 닳아가고 있고 여전히 아프다고. 언젠가는 모래알갱이가 될 거라고. 모래알갱이의 삶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삶이 원래 그런 거 아냐?"


하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다는 날마다 톤이 다른 푸른색의 옷을 입고 우리를 맞았다. 하늘도 구름무늬가 있는 파란 옷을 날마다 갈아입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둘의 색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모습이 아름다웠다.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이 의상을 맞춰 입는 것처럼 하늘과 바다도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의논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날 딸과 둘이서 몽돌해변을 지나 몇 개의 어촌마을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하늘은 창창했고 바람은 쌀쌀맞았다. 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파도와 몽돌과 하던 이야기만 기억난다. 그래도 딸과 함께 바닷가를 걸었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울산집에서 딸과 둘이서 보낸 4박 5일, 평화로웠다. 아침이면 유리창을 통해 들이치는 눈부시게 밝은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일어났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 딸은 설거지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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