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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Sep 04. 2021

당신 변했어

그 옛날의 꿈과 희망을 그리워하는 여인

결혼 적령기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이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을 지어다. 그들 가운데서도 학교 캠퍼스에서 동아리 활동 중에 나에게 유별나게 친절을 베풀어  관심을 가졌던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철민이, 무더운 어느 여름  지하철에서 나에게 치근거린 아저씨에게 “젊잖은 분이  그러세요?” 하고 나를 보호해 주려고 기사도를 발휘한 건장한 사내 동훈이, 술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데 나를  집어 같이  한잔 하고 싶다고  순간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준 K대학에 제비 같은 꽃미남 재승이.


어찌하여 그녀는 외모도 출중하지 않고 내노라는 인류대학 출신도 아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줬을까? 그녀는 자신도 잘 모르겠단다. 말로 설명이 안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게 “인연”이라는 큐피드에 꽂혀 출발한  우리는 어느덧 두 자녀를 낳아서 키워냈고 이젠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돼 버렸기에


“여보 나를 어떻게 생각해? “


청승맞게도 아내에게 똑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번째는 결혼 10년 차, 그녀의 대답은

 “당신 괜찮은 남자야”.

30여 년이 지난 오늘은

 “당신 변했어”.

그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변했다는 것일까?  그녀는 그 시절 어떻게 살았기에 그녀의 남자를 괜찮은 남자라고 했을까?


경제적으로도 궁핍했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눈코   없이 종일  허둥댔고, 취미생활 같은 것은 엄두도  냈던 시절이었는데. 그러나 돌이켜 보면  해가 다르게 생활환경도 조금씩 좋아지고 하루하루가  새롭기만 했던  같다. 예건데 단칸방 셋방에서     저축하여 13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하던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짓누르기 어려울 정도의 행복감은 부모  만나 30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기분을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돈으로도 계산이  되는 것이다.


기어 다니던 어린애가 일어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손뼉을 치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 이 여인은 마치 조그마한 기적이라도 보는 듯이 기뻐했고, 친정에라도 가면 동생들이 조카가 귀엽다면서 훔치듯이 안고 나가 이웃집, 동네 시장을 돌면서 “우리 조카 참으로 귀엽지 않나요?” 이를 옆에서 지켜본 내 여인은 부러울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사내아이 둘을 앞세우고 길거리를 걷노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만 같아 어깨마저 으쓱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애가 공부라도 잘하여 상장을 받으러 연단에 올라서는 아들을 쳐다보는 여인의 가슴은 콩닥 거려 기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던 그 시간 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닌 남편과 함께한 삶이었기에 어찌 내 남편이 괜찮은 남자가 아니련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내 남자인데 회사에서 승진도 하여 말단 사원 딱지를 떼고 과장으로 직급이 상승하니 금방이라도 간부급으로 승진돼 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줄 날도 꿈꿔본다. 기대와 희망이 분명 내 여자를 이토록 행복하게 했을 것이리라.


자식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남편은 미국으로 이주 후 사업기반도 잡고 이제는 제법 살만 했는지 어느 날은 잠자리에서 그 여인이 내손을 꼭 잡더니

“여보 나 행복해요”  

라고 했던 그 말이 간밤에 있었던 같은데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늦잠 자고 일어난 애들이 “엄마 나 학교 시간에 늦었어, 도시락은? 운동복은? 운동화는? “ 시끌벅적했던 아침은 온데간데없고 남편이 켜놓은 클래식 음악만이 큰 집안을 은은하게 채워주고 있다.


한때는 꿈을 먹고살았던 여인이 거울 앞에 서서 턱밑 목주름에 짜증을 내며 그중 하나는 당신이 나를 고생시켜서 생긴 훈장이란다. 부농의 장남인데도 대학 졸업 후 부모로부터 10원 한 장 도움 없이 자립해보겠다고 고집부리며 오랜 시간 단칸방에서 어린애 둘을 기르게 했다고 옛것을 들춰낸다.


"여보 그래도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아요?"

 자식들도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더 잘해 주려고

* 먹고 싶은 게 없느냐고,

*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 소형 중고차 달구지를 고급 신차로 바꿔주고….

주말이면 손자들이 찾아와 당신 앞에서 재롱도 부리잖아요. 큰 손자가 당신 품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면 나를 괜찮은 남자라고 했던 그때와도 같이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있어요. 잊었나요? 파란 눈의 둘째 손자가 당신이 사준 장난감을 받아 들고 기뻐서 펄쩍펄쩍 뛰면서 “Halmi, you are the best in the world 할머니 당신은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라고 했던 말. 어린애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비록 가슴은 옛날처럼 뜨겁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다시 괜찮은 남자가 되고 싶다.  근사한 식당으로 데리고 가 그녀의 입을 호강시켜 준다고 될성십지도 않고, 세계 명소를 찾아 관광을 한들 이제는 모든 게 그저 그렇단다. 이 여인은 옛날과 같이 기대와 희망으로 행복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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