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성당 미사가 끝나면 성당 앞 벤치에 앉아 교우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오늘은 새로운 교우가 찾아왔다. 미국에 온 지 삼 개월 됐단다. 이민 선배들에게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 미국 언제 오셨어요?
- 무슨 일을 하고 계셔요?
- 어디에 살고 계셔요?
좋겠습니다. 일찍 와서 자리 잡고 잘 사시니. 저는 한국에서 간호사를 하다 왔어요. 우리 남편은 안경점을 운영했고요. 걱정이에요.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빨리 따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영어 때문에 다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계신 이민 선배님들은 오랫동안 미국에 사셔서 모두들 영어에는 문제가 없으시겠네요.
- 영어요? 말해서 무엇해요. 한국 영어 미국 와서 고생 많이 했지요
@ 무슨 말씀 이세요?
- 사연이 많았다는 얘기 입니다.
@ 그게 뭔데요?
한 번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에 있는 거래선을 방문했는데 남부지방의 독특한 억양 때문에 대화 내용을 20-30% 정도 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거의 알아듣지 못한 거지요. 회의를 마치고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 식당을 갔지요. 메인 메뉴에 앞서 에피타이저로 샐러드가 나왔는데 pepper mill (후추를 갈아주는 밀대)) 과 소금을 들고 와서 나에게 필요하냐고 묻기에
“yes 후추를 쳐 주세요” 했지요. 그랬더니
“ say when 됐다고 생각하시면 말씀하세요” 하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이 말을 못 알아 들었어요. 종업원이 생각해도 후추를 너무 많이 친다 싶으니까
“it’s okay? or more? 됐나요? 아니면 더 드릴까요?” 묻기에
“please stop 됐어요”
후추를 너무 많이 뿌려버려 먹을 수가 없어요. 시금치 상추에 뿌려진 후추를 털어가며 먹기는 하지만 등에는 진땀이 나더라고요. 후추가 맵기도 하려니와
거래선이 “아이고 촌놈이 출장 다닌다고” 속으로 비웃기라도 한 것 같고, 종업원은 “작달막한 아세안이 후추를 되게도 좋아하네”라고 중얼거리면서 뒤돌아서서 가는 것만 같아서요. 지금도 식당에서 후추를 들고 나온 종업원을 보면 그때가 생각나요. 혼잣말로
“ 당신
tell me stop 이라 안 하고
tell me when. 이라고 할 거지?”
해프닝이 또 있어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사람 찾는 방송, 항공편 취소, 비행기 도착 내지 출발 지연, 게이트 변경내용 등으로 단 일초도 조용하지가 않아요. 한국어로 방송을 하면 크게 신경을 안 써도, 책을 읽다가도 방송 내용이 내 귀 안테나에 곧바로 잡히지만 영어 히어링이 짧다 보니 당나귀 귀를 하고 집중하고 있어야 해요. 지금이야 게이트 앞에 설치돼 있는 스크린으로 메시지 전달을 하니까 터미널 방송도 거의 없어 매우 조용하고, 영어를 읽을 수만 있으면 여행길이 크게 불편하지 않지요. 그런데 게이트 앞에서 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는 안내방송을 놓친 거지요. 어느 손님을 붙잡고
“you are moving? 당신 다른 곳으로 가시는 거예요?
“you did not hear? gate was changed to #15 A 못 들었어요? 게이트가 15A로 바뀌었잖아요.”
화장실 에라도 갔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영어가 짧은 놈은 대책 없이 게이트 앞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야만 했어요.
영어 히어링이 짧아 고생도 했지만 영어 발음이 안 좋아서 그에 못지않게 어려움도 많았어요.
비즈니스 하면서 손님들이 주소를 물으면 Texas St라고 답 하는데 많은 손님들이 못 알아 들어요. 두 번, 세 번 을퍼도 못 알아들으면 T.E.X.A.S.라고 또박또박 스펠링을 해주면 오! 텍사스. 하면서 앞에다 강하게 악센트를 넣더라고요. 속으로 그 발음이나 내 발음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참으로 별나구먼 했지요.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아들 녀석 집을 찾아 Texas 발음 교정을 받았어요. 그랬더니 성공률이 100%. 자식들도 가르쳐 놓으니 다 써먹을 때가 있더라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 Cypress인데 누가 집주소를 물으면 “사이프레스”라고 하니까 이 또한 못 알아듣더라고요. 스펠링이 어떻게 되냐고 묻기에 C.Y.P.R.E.S.S 하니까 오! “싸이프레스”라고 발음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한국분들은 그렇게 발음 안찮아요. 거의 90% 가 “사이프레스”라고 하지요. 지난번에는 성당에서 교우분이 집이 어디세요? 묻기에 “싸이프레스”라고 대답하니까 아! “사이프레스” 에서 사시는구나. 이렇다니까요.
악센트가 있는 곳은 확실하게 악센트를 주세요. 굳이 혀를 구부려 가면서 까지 미국애들처럼 영어 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된장국으로 굳어진 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발음만 정확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러나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은 없어요. 영어가 서툴러도 미국 사람들 앞에서 삐쭉거리지 말고 나오는 대로 얘기해봐요. 못 알아들으면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고 다른 표현으로도 시도해보고, 딱히 안되면 스펠링을 해주면 돼요.
나는 그러지를 못해서 영어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우리 동네 이웃집에 사는 미국인 윌리암과 한국인 1.5세 John과 셋이서 얘기를 하는데 얘기 도중에 둘이서 껄껄대고 크게 웃더라고요. 그런데 히어링이 짧아 나는 왜 웃는지를 몰랐지요. 그러나 둘이서 웃으니까 나도 하얀 이빨을 드러 내면서 웃는 시늉을 했던 참으로 소심했던 적도 있어요.
우리 성당에 헬렌 할머니 보세요. 처음 미국 왔을 때 영어라고는 딱 두 마디밖에 못했다잖아요. Hello, How are you? 지금은 곧잘 하시잖아요. 이 할머니의 영어 이민역사를 들으면 밤새는 줄 몰라요.
출산하고 나서 동네 마켓에 가 갓난아기 우유병을 사야 하는데 baby bottle 이라는 말을 몰라 점원을 찾아가
“베이비 쭈쭈” 했더니 우유병을 가져다주더래요.. 그래서
“ this is called what? 이라고 해야 하는데
"what this" 하니까
“baby bottle” 이라고 했대요.
그 이후로는 자기보다 뒤늦게 이민 온 사람이 있으면 마켓에 가서 우유병을 찾을 때는 baby bottle 찾는다고 하라지요. 한 가지 더 있어요. 모기약이 필요했는데 mosquito killer를 몰라서
“hello! 웽...... 꽥”
하니까 모기약을 갖고 오더래요.
그런 분이 지금은 영어를 나보다 더 잘하셔요.
나중에 기회 있으면 헬렌 할머니 소개해 드릴게요. 할머니 영어 하시는 것 자세히 보세요
@ 서두르지 않고 또박또박 영어를 하시고요
@ 단어 하나하나 악센트 발음이 아주 정확해요
자기 남편도 영어 이름을 제임스라고 지어주고 집에서도 영감, 할멈이 영어를 사용한다나요? 멋쟁이 할머니예요.
요즈음 두 살배기 손자를 주말이면 만나는데 그이의 영어 말하기, 듣기 실력 향상이 가히 놀랄만해요. 내가 이민 초기에 왜 영어를 이 손자처럼 안 배웠을까 하고 반성도 많이 해보지요. 그런데 나는 이제 텄어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단어도 외워 놓으면 그다음 날 잊어버려요.
“손자가 어떻게 하는대요?"
@. 아빠가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종일 내 따라서 해요
@. 혼자서 놀 때는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는데 아마도 T.V에서 봤던 것을 되씹기라도 하는 것 같아요
@. 틀린 영어를 해도 틀린 지를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지요.
@. 어른들끼리 얘기 도중에 “빨리빨리 주세요”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혼잣말로 “빨리빨리 주세요”라고 혼자서 을퍼요.
젊으시고 이제 새로운 출발이니 우리 손자처럼 한번 해보세요?
내친김에 영어 이름도 하나 만들어야지요?
저희들은 한국 이름 그대로 쓸까 해요
불편하실 건데요
왜요?
한국 이름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음할 거예요
“창범”이라 하셨던가요? 두고 보세요.
“창범, 챙범, 챙비엄” 할 거예요
챨스라고 하세요.
자 일어섭시다
see you next sunday, Charles.